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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유학생 Aug 22. 2020

곧 내려갈 거야. 흰둥아

16년 친구와의 마지막 이별

 지윤아, 흰둥이 사진 좀 주라~


  새벽 1시 10분, 다음 날을 준비하고 자취방의 불을 끄던 그때, 카톡이 왔다.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각, 엄마의 흰둥이 사진 요청. 분명 찍은 것이 많을 텐데, 느낌이 이상했다. 왜일까? 눈치가 빠른 나는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메시지에 혼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 흰둥이가 아픈 건가? 병원에 갔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 "혹시 흰둥이가 아프냐?"는 질문에 그냥 갑자기 사진이 없길래 물어봤다며 빙빙 둘러대던 엄마는 그렇게 내가 준 흰둥이로 프로필 사진을 바꾸셨다. 그리고 난 잠에 들어버렸다.


 한 마디로 달라진 하늘

 다음 날 아침, 운동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 엄마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살짝 떨리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엄마는 대구로 내려올 수 있냐며 조심스레 묻기 시작했고, 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윤아. 흰둥이가..



 엄마의 짧은 한 문장에 자취방 창밖의 맑았던 서울 하늘은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서는 한 방울 두 방울. 주룩주룩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에 세상이 멈춰버린 순간이었다.


  

   흰둥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어 엄마에게 편지 3통을 써서 품에 안게 된 나의 오랜 친구다. 2003년에 태어났던 말티즈 흰둥이는 속 깊은 친구였다. 시험 성적이 떨어졌을 때 혼자 방에서 울던 내게 얼굴을 핥아 주었고, 장염에 걸리던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곁을 챙겨준 누구보다도 소중한 친구다. 2005년 봄날에 애견 농장에서 처음 만난 흰둥이는 조용했다. 3개월이 된 흰둥이를 차 뒷 좌석에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의 기억,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느꼈던 그때의 감정을 난 잊지 못한다. 학원에 다녀온 언니와 함께 흰둥이의 이름을 고민하였던 그 설렘의 날들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렇게 흰둥이와 우리 가족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했던 흰둥이었지만, 정작 나는 흰둥이의 곁에 함께 있었던 날들은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 밖을 나와 떨어져 살았고, 그 이후로는 줄곧 방학이나 주말에만 얼굴을 드문드문 보여줬던 수준의 주인이었으니. 한 때는 흰둥이가 나를 낯설어하는 기분도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밥 주기, 목욕하기, 산책하기 모든 것들 다 맡아서 하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었지만, 거의 부모님이 키우셨다고 봐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곁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그래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더 신경 써주려고 노력했다. 빨리 취직을 해서 맘 놓고 흰둥이 곁에 함께 있어보려고 했지만, 그 취뽀에 성공하기도 전에 흰둥이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2018년 2월의 어느 설날 아침이 흰둥이를 내 손으로 직접 찍었던 마지막 날이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된 후 난 서울에서 흰둥이와의 이별을 겪게 되었다 다. 비록 그날 자정에 떠나버렸지만, 흰둥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KTX 가는 길 공항 철도에서, KTX에서 눈이 퉁퉁 부울 정도로 울면서 애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만 울라는 아빠의 말도 들리지도 않았고, 당시만 해도 함께 있었던 짱구에게도 미안함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애견 장례식장에 누워있는 흰둥이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흰둥이와의 이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살아있던 흰둥이의 모습

 퉁퉁 부울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던 흰둥이와의 이별. 흰둥이는 마지막까지도 착하고 배려심 깊었다. 마지막 가던 순간마저도 아픈 티 하나 없이, 병원을 가던 찰나 나가던 현관 밖에서 아빠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착했던 그 흰둥이는 그렇게 추운 겨울날 자정,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타지에서 전해 듣는 이별의 아픔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보고 싶은 흰둥이는 여전히 매일매일 생각이 난다. 틈만 나면 사진첩을 열어서 흰둥이를 찾아보고, 그리고 흰둥이와 함께 했던 짱구도 그리워하곤 한다. 흰둥이가 떠난 뒤 얼마 안 지나 내 곁을 떠나버린 짱구도 여전히 그립고, 함께 해주지 못한 세월들이 너무나도 후회가 될 때가 많다. 내 자리 찾겠다고 그렇게 일찍이 나와 버린 탓에 챙겨주지 못했던 많은 것들도 생각이 나고, 슬플 때가 많다. 하지만 하늘에 있을 우리 짱구와 흰둥이를 생각하면서 힘내야지. 버텨야지 하면서 매일 하루를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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