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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유학생 Mar 22. 2020

내겐 너무 가벼운 23kg

일상의 무게가 되어버린 그것

  23kg. 보통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오를 때, 무료 수하물 기준이 되는 숫자이다. 작년 겨울, 엄마와 함께 런던에서 숙소를 옮기기 위해 23kg에 임박하는 캐리어를 들었다. 그리고 1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지하철의 좁은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감 있게 23kg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냥 들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캐리어가 무겁게만 느껴지더니 손에서 힘이 주르르 빠졌다. 그 순간 나는 거기 주저앉았고, 그 순간 내 뒤를 따라 내려오던 외국인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뒤 따라 내려오던 엄마의 당황함이 뒤통수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Do you need help?

   


 그때 선명하게 들려오는 한 마디. 뒤를 따라 내려오던 외국인 아저씨 한 분이 내게 손을 내미시며 캐리어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분도 덩달아 엄마의 작은 캐리어를 함께 들어주시며 무사히 계단을 통과했다. 여행 4일 차에 느껴보지 못한 친절함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사실 내겐 23kg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20대가 되어, 런던에서의 그 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 나는 23kg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23kg는 내게 너무나도 일상적인 무게였으니까. 그 무게의 무거움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버렸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한 달에 한 번, 잦으면 2주에 한 번 내려갔던 본가를 가기 위해서는 난 세 가지의 코스를 거쳐야 했다. 가평의 고등학교 - 서울역 - 동대구역 - 본가였다. 이때 내가 이용해야 했던 교통은 학교 셔틀버스와 KTX,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한 지하철 또는 아빠 엄마의 승용차였다. 

  

   그때마다 내게 걱정거리가 있었다면 "짐을 어떻게 들고 가지?"였다. 특히나 본가가 아닌 주말에 대외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하고자 서울로 나가야 할 때 나는 주말이 오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잘 곳이 없어 '친구 집'이나 사이가 안 좋아 스트레스였던 '언니의 자취방'으로 가야 했고, 그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낯선 서울 지하철을 타고,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해, 어느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대외활동을 하겠다며, '뮤지컬 기자단'을 지원했던 나는 활동을 위해 주말에 기숙사가 아닌 서울로 나가야 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언니의 자취방에 묵기로 했다. 주말 활동을 마무리 짓고,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 그날따라 내 캐리어는 유난히 무거웠다. 뭐가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낑낑 들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이 그 날 따라 유달리 서럽고 힘들었다. 경기도 분당의 끄트머리 쪽에 위치하고 있던 언니의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또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하는데 가는 방법도 어려운 그곳에서, 캐리어라는 또 다른 짐을 들고 옮기려고 하니 유난히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무사히 학교로 돌아왔던 그날 밤, 팔이 조금씩 쑤셔오기 시작했다. 그 날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렸던 나의 일상의 시작이었고, 그 누구도 내 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일상의 무게감도 커져갔던 것 같다.  


 그런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리어 드는 것에는 늘 자신감을 보여왔다. 단체 생활에서 무거운 것을 들을 때마다 무겁지 않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괜찮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캐리어를 많이 옮겨서요"라고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런던에서의 그 날

 그런데 말이다. 런던이라는 그 도시에서 나는 이 무게에 대한 큰 착각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3kg의 무게가 별거 아닌 것에서 내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든 그 순간, 내가 정말 '강한 척'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내게도 내 삶의 그 무게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그걸 '가볍다'라고 합리화 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나의 그 무거움을 부정하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고, 이제는 그 일상의 무게를 조금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18세 고등학생이 왜 그렇게 큰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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