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의 주변

도시의 쥐가 걷고 있었다

<책의 주변> 9화

by 이훈보

동네 마트에 들러 평소처럼 식재료를 담는다. 세일 품목을 사러 간 것은 아니지만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은 어쩐 일인지 세일 품목뿐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주머니에서 접어간 비닐을 꺼내 하나씩 옮겨 담는다. 소중한 것들은 맞지만 또 한편으론 이렇게 정성스럽게 쌓아갈 일인가 싶다.


그렇게 다녀오는 길이었다. 골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어 목을 길게 뽑아 걸을 수 없었던 나는 무서운 것을 본 양 눈을 내리 깔고 걷는다.


거리의 왼쪽에는 구획을 담당하는 벽이 하나. 그 옆으로 평소처럼 도시의 쥐가 걷고 있었다. 외투 하나 없이 아주 가벼운 차림이다.


도시에서 쥐를 본 게 얼마만인가. 바퀴와 모기는 그래도 멀리 있지 않던데, 쥐는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도시는 너무 매끈하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크릴과 LED까지 쥐가 들고날 틈이 없다. 얼결에 도시에 나온 쥐가 있다면 우연히 만날 틈을 찾아 쉼 없이 떠돌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도시를 걸어 다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것들의 틈을 메꾸고 번쩍거리게 하는 것일까. 음식도 봉투에 담아 버리고 배달도 봉투에 넣어 받는다. 포장은 영 비좁고 틈이 없다. 애써 여유를 부리려 해도 봉투의 공기는 너무 한정적이다. 세일과 말주변으로 채우고 나면 그마저도 구겨져버린다.


벌써 쥐는 지나가 버렸다. 아마 오늘 보면 또 한동안 못 볼 것이다.


쥐는 평소처럼 걷고 있을 뿐인데 괜히 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도시의 쥐가 집으로 걷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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