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의 주변

겨울의 생명체를 찾아서

<책의 주변> 8화

by 이훈보


간간하게 잎이 다 떨어진 계절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눈에 걸리는 침엽의 정의가 글에 싱거움을 더한다.


맹맹하게 묽어지는 것이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개업은 다른 문제다.


간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싱거운 걸 좋아한다던 사람도 간간한 걸 꺼리지는 않는다. 손님의 말을 마냥 믿을 일이 아니다.


글을 기일게. 아주 길게 까지는 아니어도 젓가락에 국수처럼 어느 정도는 훑어갈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나의 글자들은 죄다 몽땅하다.


학부시절부터 가장 얇은 과제를 내기로 유명했다. 할 얘기도 없고 쓸 것도 없어 접어 날려도 펄럭이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짧은 것을 고수하는 데는 과한 자신감이 필요한데 그런 얕음은 필연적으로 우습기 마련이다. 웃음을 집착의 위에 붙이고 완성의 아래 구멍을 내 마무리를 짓다 보면 결국 지으려던 것과 멀어진다.


겨울의 생명체를 찾아서 뭉치고 그 이야기를 녹든 녹지 않든 아직 멀었다며 팡팡 쌓아가야 하는데 나는 별다른 욕심도 없고 "그런 경우가 있지요." 하고 말았다.


어쩌면 순순히 망하는 지름길을 찾는 것도 아니라 이미 들어서서 "이 지름길의 좌우가 죄 절벽입니다." 하고 설명하는 꼴이다.


열기를 그렇게 잃어가는 겨울의 생명체를 찾아서 영하의 창밖에 입김을 더하고 허공에 글자를 적어본다.


신장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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