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의 주변

알리오 올리오 수행자

<책의 주변> 13화

by 이훈보

살다 보면 괜히 봤다 싶을 때가 있다.


그게 지나가는 사람이든 무서운 장면이든 어떤 식으로든 머릿속에 자리 잡아 일상에 침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일들 말이다. 나도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셋톱박스의 유튜브 버튼을 눌렀다가. <이탈리아 셰프가 보여주는 정통 알리오 올리오!>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하고 말았다.


파브리는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요리사 이기도 했고 '알리오 올리오는 과연 무슨 맛으로 먹는 것인가?'에 대해 주기적으로 고민을 했었으니 나로서는 눌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알리오 올리오의 정체를 밝혀야 했다.


마늘을 많이 넣는 것, 기름을 많이 넣는 것은 먹어본 일이 있었고 마늘의 개수나 면수의 양과 찹찹 소리가 나게 조리해야 하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눈으로 본다고 다 깨달아지던가.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마침 오래된 마늘과 파스타가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스탠 팬에 불을 올린다.


그게 3일 전이다. 페퍼론치노는 없어서 고춧가루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삼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고 있다. 맛을 보고 열두 시간을 고민하며 다음날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고춧가루를 넣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목표는 알리오 올리오가 어느 지점에서 완성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고춧가루는 중요 변수가 아니다. 어느 부분을 세밀하게 깎거나 붙여야 내가 줄곳 정체불명이라고 느낀 음식이 흡족할 만한 하나의 문화로 완성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그 지점에 갈 수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리오 올리오는 계속 발전 중이다. 어제는 조금이라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은 욕심에 모둠 해산물을 넣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느라 고생했다. 이렇게 날을 세울 때는 다른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맛있어지려고 노력해선 안될 일이다.


면과 물, 소금과 후추, 그리고 고춧가루와 올리브유로 나는 오늘도 탑을 쌓는다. 최대한 많이 특정 재료를 과하게 쓰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다.


이렇게 실컷 만들다 보면 사실은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알리오 올리오 수행자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는 왼손에 1200원짜리 파스타를 쥐고 12개의 마늘을 담은 주머니와 함께 간다.


그 유튜브

https://youtu.be/uhJpo8si6-4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525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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