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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Dec 31. 2020

추천해 주세요. 그리고 감춰 주세요.



넷플릭스 이용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콘텐츠와 콘텐츠 사이에서 떠도는 것이라고 한다. 넷플릭스가 갖고 있는 각국의 방대한 콘텐츠 량을 생각하면 본인의 취향에 딱 맞는 콘텐츠가 어딘가에서 몰래 숨어 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럼 우리는 그때까지 탐색할 수밖에...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쉽게 고르지 못하는 건 당장 끌리는 것이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비슷한 수준의 재미를 가진 콘텐츠가 많아서 일수도 있다. 한번 시작하면 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재생 버튼을 눌러야 한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일단 시작 한 건 스킵을 하더라도 끝까지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 이외의 사례도 가능하다. 단순히 누르러 가는 과정이 멀 수도 있다.

한번 살펴보자.

넷플릭스는 사용자의 이용 정보를 바탕으로 취향을 분석하고 작품을 추천해주는데, 이것은 아마도 사용자가 '본' 작품과 '좋아요' 한 작품 '싫어요' 한 작품 그리고 앞으로 '보고 싶은' 목록을 정해놓은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일 것이고 이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다.

취향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다양한 국가의 자료들이 존재하고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자국 콘텐츠와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를 중심으로 추천 및 반복 노출이 이루어지는데, 그 목록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은 추천작을 지나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미 본 콘텐츠나 당장 보고 싶지 않은 콘텐츠를 넘기는 횟수가 넷플릭스 사용 경험이 늘어날수록 늘어나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용자가 감상한 작품 C의 성향 분석을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A와 A'를 추천해준다. 사용자는 그 작품에 흥미를 느껴 작품을 감상하면 이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넷플릭스는 A를 독점작이라는 이유로 다시 노출한다.

그다음에는 A 재미있게 봤지? 다시 보기 할래? 하며 A나 A'를 다시 노출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C도 다시 노출한다.

이 구조가 나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본 콘텐츠를 다시 보는 것을 즐기는 유저도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노출하지 않았으면 하는 콘텐츠를 다시 접하게 하는 효과도 낳게 된다.

사용 경험이 늘어날수록 사용자는 이미 본 작품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며 다음 작품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어느 날부턴가가 내가 좋다고 한 작품과 이미 감상한 작품들이 상호 연관 관계 때문에 반복적으로 추천 목록에 노출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것도 알겠고 나를 분석한 것도 알겠지만 이제 그 시리즈와 영화는 다시 볼 마음이 없는데 자꾸 나에게 권하는 것이다.

기왕 다국적 포맷을 이용하는 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싶은데 넷플릭스는 나의 과거를 바탕으로 나에게 불필요한 콘텐츠를 계속 권한다.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이 기능을 필요로 한다.

"좋아하지만 목록에서는 안 보이게!"

이 버튼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가 내 취향을 분석해 쓸 수는 있지만 다른 작품으로 가지 못하고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불편을 해소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독점작인 <스위트홈> 도 <퀸스 갬빗> 도 <아리스 인 보더랜드> 도 <킹덤> 도 너무 재미있게 봤다. 이것 말고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봤는데 자꾸 이것들을 보라고 나에게 권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 불편하다.

추천은 AI가 한다고 하니 누굴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AI를 만든다면 제발 버튼을 하나만 더 만들어 달라.

"노출 목록에서 제외"

나는 열 번이고 백번이고 누를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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