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훈보 Jan 20. 2021

구국의 강철심장 로보캅

로보캅 1 : 감독 폴 버호벤 (토탈리콜, 원초적 본능)

해적판이라고 불리는 불법복제 만화가 흔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본 로보캅은 정확히 말하자면 해적판도 아닌, 영화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누군가 그렸던 '스토리 복제 + 재구성'의 어디쯤 되는 만화였다. 심지어 단행본도 아니었다. 정식 출간되는 만화 잡지의 부록이었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그런 건 잘 모르고 로보캅이라는 세 글자와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변덕이 아니라면 평소 나의 영화 습관(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만 보고 영화를 보는..)상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록키'가 과거의 흥행작은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는 선례를 만들었기에 이번에도 감상을 시작했다.


1987년에 개봉한 <로보캅>의 감독은 '폴 버호벤'이다.


그는 이후 그 <토탈리콜>과 그 <원초적 본능>을 만든다. 그러니까 이미 감독의 빼어난 연출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한번쯤은 볼 필요가 있었다. 다만 <로보캅>이 비디오 테이프 시절의 영화이기에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발해지기 전까지 그 경로가 마땅치 않았다. 한참 비디오를 보던 시절에는 애매한 구작과도 같았고...


아무튼 영화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는 타이틀롤 이후 세상의 여기저기를 비추는 자극적인 뉴스를 나열하고 연이어 세계의 불안한 정세와 인공심장 상품광고를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보캅>은 자신의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로봇 경찰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 영화를 빛내는 요소들은 로봇이 아니라 로보캅이 등장하는 세계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로보캅>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엇나간 자본주의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려간다. 단순히 로보트가 나와 총을 난사하는 정도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저릿한 차가움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관객이 그 온도를 보다 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폭력적인 장면들을 지나치게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런 배경 안에서 자본주의를 통해 태어난 로보캅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부분은 영화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그러니까 로보캅은 로봇 경찰의 이야기지만 이 영화를 빛내는 것은 TV 뉴스와 광고 그리고 엇나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지금 봐도 충분히 흥미롭고 눈부신 영화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오히려 30년 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는 로보캅이 개봉 당시보다 시사해 줄 것이 많지 않을까.


나는 왜 이영화가 아카데미 주요상을 못 받았을 까 싶었지만 1987년의 개봉작이 그 <마지막 황제>와 그 <언터쳐블>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그러려니 했다. 


추신. 로보캅 1의 왼팔 각도는 정말 신경을 쓴 태가 난다. 그 왼팔의 각도가 영화 전반의 폼을 완성시킨다. 


로보캅 2를 이야기하기 위해  1의 리뷰를 씀.


끝.


1987년 12월 로보캅은 극장가를 평정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61

매거진의 이전글 록키 씨는 참 수다쟁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