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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Feb 09. 2021

사라지지 않을 인터뷰

<책의 주변> 31화

대략 18년 전쯤 나는 친구와 함께 미대와 경영대학을 잇는 외부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사라지지 않을 인터뷰를 하고 싶어.”


당시 들고 있던 영화 잡지의 인터뷰가 워낙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꺼낸 이야기였겠지만, 이후로 이 말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사라지지 않는 것. 영원한 것. 무한히 존재하는 것. 결국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언젠가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날 대화를 나누었던 절친했던 벗도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고 열심히 읽던 그 잡지도 이제는 폐간이 되었다. 문득 뱉었던 단 한마디에 대한 기억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져 이제 나만 사라지면 이 이야기는 없어질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음반을 모았고, 그것들은 지금 방 한구석에 박스채로 잠들어 있다. 언젠가 이사를 위해 박스를 열었을 때 그중 절 반 이상은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음반이란 사실에 웃었던 일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며 중고 매장을 뻔질나게 다니며 모은 것들이었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이제는 CD가 거의 사멸되어 플레이어조차 구하기 힘들어졌으니 우스운 일이다. 테이프처럼 늘어지지 않고 원음 그대로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고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그 장점들이 어느 순간 불멸의 부피를 자랑하는 짐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무한이란 짐을 지고 있다. 불가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골머리를 싸매고 앉아 글을 쓴다. 이 글도 9년 전에 써둔 것을 잊고 있다 우연히 발견해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에서 무한한 것. 저의 생을 넘어 후대까지 우습게 이어지는 것. 몇 백 년 정도는 쉽게 썩지 않는 비닐봉지 같은 글을 써야 한다.


사라지지 않는 인터뷰. 증발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끝없이 흐르는 대화를 보고 싶었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오히려 나는 귀찮으니 남이 해주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냥 대충 살면서 그런 것들을 즐기고 싶었지만 원하던 그것은 도무지 가까워지질 않았다.


동네를 잘못 잡고 살아서, 괜한 멋이 들어서, 인디 잡지를 거의 10년 동안 만들었고 지금은 멈추었다. 아마 이런 미래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머니는 나를 홍대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학과와 미대가 붙어있는 길을 걷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3 때 “그 동네 재미있겠네.”라고 말했던 게 이런 미래를 불러올 줄 알았다면 아니 소설의 인물처럼 막연한 불안감이라도 느꼈다면 어머니는 절대 내가 이 동네로 떠내려 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추론이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언젠가 나에게는 하나의 바람이 있었고 그때부터 7년이 지났을 때, 이리카페에서 하던 어느 싱거운 시 낭송회를 바라보며 <월간 고민과 잡담>이란 제목의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제목은 열흘 만에 a5 사이즈의 텍스트 전용 잡지로 발화했고 1년 반 동안 발간되었다. 당시 <월간 고민과 잡담>에 나는 깊은 사랑과 큰 절망을 고루 느꼈지만 그것을 금세 까먹고 또 잡지를 만들었었다. 눈이 많이 오던 12월의 경복궁 돌담길을 지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월간 이리>라는 제목이 떠오르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또 9년이 지났다.


나는 무한하지 않다. 그리고 <월간 이리>도 무한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사고가 닥치거나 책을 만들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면 99호도 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나 바람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인지에서 벗어나는 것. 애초에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영원히 모르게 사라지는 것. 누군가는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는데 한쪽에선 버둥거리다가 물아래로 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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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다에 서있는 상상을 해보죠.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로 향합니다.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 모르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파도가 들이칠 겁니다. 매일의 파도가 다른 의미와 시간을 지나 당신의 곁을 스치지만 당신은 각각의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파도라는 통칭이 당신과 함께 할 뿐입니다.


우리는 순간을 죄다 끌어 모아 경험으로 뭉뚱그립니다. 그리고 지나간 경험들을 미화시켜 추억으로 포장합니다. 채색된 것과 쓰레기 들을 경계 없이 쓸어 담아 놓고는 빛나는 것을 찾으려 애씁니다. 이런 말장난 같은 것들이 모이고, 남겨지고 또 버려져 언젠가 새로운 시대의 창작으로 피어나고, 새로운 시대의 소문으로 떠돌게 될 겁니다.


파도를 보았다거나 파도를 탔다거나 파도를 만들었다거나 파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우리는 당신이 볼 그 많은 파도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나뿐인 인생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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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월간 안테나의 기고 요청으로 쓴 '월간 이리와 무한에 관한 산문'을 수정.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525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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