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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Mar 02. 2021

두 다리로 달리는 소금쟁이처럼

<책의 주변> 35화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긴 했지만 다이어트 때문은 아니고 위가 약해지고 소화능력이 조금 떨어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위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커피로스터가 커피를 안 마실 수는 없고, 나는 하루에 커피를 2잔 이하로 마시니 커피를 줄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위를 건강하게 할 방법을 택했다. 옛말에 먹고 누우면 소가 된다고 했으니 먹고 뛰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고백하자면 오래전부터 달리기는 나의 약한 부분이었다. 초중고 시절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는 동안 한 번도 마음에 들게 땅을 디뎌본 일이 없었다. 발의 어디로 땅을 디뎌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연습을 하기 전에 시험은 끝나곤 했다. 내 차례의 앞뒤로 아이들이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할 뿐이었다. 부모님의 고향이 충청도여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태생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달리기는 나와 맞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나이도 들고 또 위에 적어놓은 대로 위의 건강을 되찾아야 하니 나는 달려야 하는 것이다. 폼이나 열등감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세월의 등 뒤로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고 나는 달려야만 한다.


그래서 시작했다. 주변에 달리기를 하는 지인이 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1km에 6분 30초 정도는 누구나 뛸 수 있다는데 뛰어보니 1km가 아니라 100m 단위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씁씁후후' 해야 한다던 호흡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호흡법으로 그냥 살기 위해 턱턱 숨을 쉴 뿐이었다.


그게 이 주정도 전의 일이다.


나는 덜그럭 거리며 걷다 뛰다 했다. 달리기를 하는 친구가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리는 소리가 나지 않고 무릎에 충격을 줄이며 달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천천히 뛰어도 소리가 나고 앞으로 가면서도 위로 펄떡거렸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가는 것을 신경써보자는 생각으로 보폭을 늘여보니 왠지 소리가 덜 났다. 지금의 폼보다 1.5배 이상 앞을 디뎌야 하고 그럴 때는 마치 크게 휘적휘적 걸어가는 사람처럼 우스운 자세가 된다.


두 발로 한강을 저어가는 한 마리의 소금쟁이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게 기이하게 빠르다. 다른 자세들보다 위로 튀어 오르지 않고 앞으로 가는데 모든 힘을 쏟게 된다. 발걸음 소리도 잘 나지 않고 전진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나는 변신하는 순간 바람을 가르며 기분좋게 나아갈 수 있다. 발목은 회전하는 콤파스 처럼 유연하게 돌아가고 그만큼 나는 전진한다. 그러니까 이 자세는 분명히 빠르다. 그리고 확실히 웃기다.


그래서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는 이 자세를 했다 안 했다 하면서 그래 봐야 한 백 미터 이백 미터를 연속으로 뛸 수 있을까? 하며 나는 달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 목표는 10km. 올해 한강 다리를 두 번 건너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참이다.


ps. 혹시 한강에서 183cm짜리 소금쟁이를 본다면 그게 바로 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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