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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May 17. 2021

아무도 농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책의 주변> 40화

5월이 되면 나는 집안일을 도우러 몇 차례 시골에 다녀온다.


한 해 농사를 위해 모내기를 준비해야 하고 시골 일은 늘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반도체, OTT, 전기차, 메타버스, K열풍 이런 말들이 시골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 지구에 불이 켜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일어나 농기구를 챙기고 태양이 땅을 한 껏 달구기 전에 일을 시작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힘을 아낄 수 있다. 내일도 모레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기에 언제나 적절한 도망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도 손은 부르트고 갈라진다.


청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많지만 당장 도시의 사람들에게 농사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없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농사는 식탁에 오기까지의 숨겨져야 할 과정일 뿐이고 통장의 숫자로 지불하는 밥상 물가 정도이기에 아무도 도시에서 농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흐르고 나면 농사는 전설처럼 떠돌게 될 것 같다.


경제 논리를 이야기하자면 아마 벼농사보다 반도체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고 과수원보다 전기차가 세금을 거창하게 뿜어낼 것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삶의 한 축이 없는 것처럼 자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조금 쓸쓸하다.


나도 시골에 갈 때마다 힘이 들어서 내년에는 반드시 돈을 벌어서 일꾼을 쓸 돈을 마련하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 년에 며칠 정도 이런 날이 있어서 조금은 균형 잡힌 정신상태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가 농사를 모르거나 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농사는 지나치게 목가적이다. TV 통해 보는 농사는 너무 아름답다. 내가 봐도 그렇다. 녹색의 자연 한가운데서 땀을 흘리는 건전함을 보고 있자면 마음 깊숙이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는 농사와는 조금 다른 듯하다. 실제 그곳에서는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 넋이 나갈  같다.'라고 생각할 즈음에 일이 끝나 지쳐 쓰러지기가 일쑤다. 도시에서는 벤치의 파리도 피하는 내가 내가 시골에 가면 진흙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도 신경  틈이 없다. 다들 치열하게 일을 하기에 나도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다른 직업도 이와 마찬가지겠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는 일이 적으니 나라도 괜히 적어본다.


이글도 실은 그냥 하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누군가 농촌의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은 우리 곁의 노동자처럼 아프게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 길게 써보았다.


나도 도시의 아스팔트를 밟으며 안도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며 도망쳐 나온 나를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흙을 만지다 온 덕에 발아래 숨 쉬고 있을 물렁한 땅을 떠올릴 수 있고 무수하게 묻혀 녹아버린 사람들과 철골 너머의 황폐함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게 아주 조금 나의 눈을 뜨이게 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냥 어제 일을 하고 와서 전신이 쑤시는 김에 생색으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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