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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May 20. 2021

'미우라 켄타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책의 주변> 41화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 작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향년 54세. 데뷔후 거의 모든 시간을 베르세르크를 그리다 떠났다.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였고 나는 그림보다 스토리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꽤 흥미롭게 진행되던 '베르세르크'의 연재 속도를 따라잡았을 때 이 만화는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1989년부터 시작되었으니 내가 만화를 본 시점은 아마 연재 10년쯤 된 시기로 단행본으로 읽을 만큼의 분량이 있었고 한 두권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여지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베르세르크가 그렇게 오랫동안 연재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렇게 천천히 베르세르크를 잊어갔다.


하지만 누군가 잊는다고 해서 뭔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계속해서 성실한 자세로 베르세르크를 그렸다. 04년에도 08년에도 12년에도 16년에도 20년에도 베르세르크는 연재 중이었다.


나는 간간히 작품의 소식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완성도와 끈기에 놀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를 다시 볼 기력도 없고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만화를 보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있기에 매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 열심히 한다. 얼른 완결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게 끝이 나야 이 사람이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좀 더 컸다. 사람들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완성도를 보며 이러다가 완결을 못하고 작가가 죽는 게 아니냐는 농담 섞인 걱정을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대로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는 게 참 괴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작가는 30년이 넘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와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돈도 벌만큼 벌었음에도, 스스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와중에 후퇴 없이 꾸준하게 발전하기까지 했으니 그 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베르세르크를 찾아보지는 않아도 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의 행복을 기원했다.


솔직히 일면식도 없고 대화 한번 해본 일이 없으니 그의 행복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이 아주 잘 살고 있기를 바랐다.


어느 순간에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그림도 좀 덜 그리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어땠을까. 바닷가에서 발을 까딱거리며 칵테일을 마시고, 팬들의 성화를 조금은 무시하면서 뻔뻔하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고 대답하며 말이다.


이제 그는 떠났지만 그가 도착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아래는 그의 노력 중 일부


20여 년 동안 하루 15시간씩 원고 작업.


미우라 켄타로는 극이 진행될수록 상처가 회복되어 가는 순서까지 정해서 몸에 흉터를 그리고 매 화마다 작품의 캐릭터가 상처 입은 부분에 대해 기록한다고 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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