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훈보 Dec 13. 2021

사랑과 자유에 대하여

해바라기: 강석범 (2006)

인터넷 밈이나 패러디의 소재로 많이 이용되는 영화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도 이와 거의 동일한 내용의 리뷰를 네이버 블로그에 썼었고 넷플릭스에 작품이 올라온 김에 당시 본 시선이 맞았던 것인지 한번 더 보고 그 사이 비슷한 관점의 리뷰나 후기가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마땅히 이런 내용이 담긴 글이 없어 브런치에 자리를 빌려 또 남겨 보기로 했습니다. 


영화 <해바라기>는 관객 평점과 평론가 평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 중 하나로 관객은 9점대를 평론가를 5점 대를 준 작품이죠.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 영화에서 각자가 찾고 싶은 것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적으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기법과 화면 연출에 뻔한 조폭물에 감동 코드를 넣은 영화에 좋은 평점을 주기는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이 영화의 평점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을 설명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액션씬이 좋다고 해서 본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전혀 다른 지점이 있더라고요.  그럼 어느 지점에서 틈이 벌어졌는지를 짚어야겠지요. 


평론가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은 감동적이었다니 뭐 그런 거지..라고 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작품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해바라기>는 평이 갈리는 여느 영화와 다르게  조금 꼼꼼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글이 없어 저라도 조금의 변호를 해봅니다.


우선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해바라기>를 만든 강석범 감독의 작품중 아마 제일 유명한 작품은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일 겁니다. 이 영화는 최근 <갯마을 차차차>의  원안과도 같은 작품으로 영화 <홍반장>의 따뜻하고 우습고 의뭉스러운 구석을 생각하면 같은 각본가이자 같은 감독이 만든 <해바라기>의 평가가 단순히 조폭 신파 액션물로 이야기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같은 감독이 흔한 조폭 코미디로 분류되는 <두사부일체>의 2편인 <투사부일체>의 각본에 일부분 참여하기도 했다는 것도 미리 적어둡니다. 하지만 <투사부일체>와 <해바라기>의 관객 평은 극단적으로 다르죠. 그러니 왜 <해바라기>가 관객들에게 높은 평점을 받고 두고두고 회자되는지를 차근차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해바라기>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을 흔드는 것인지를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러 리뷰를 살펴봐도 그 부분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적어봅니다. 


들어가는 말이 참 길었네요.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해바라기>가 사랑과 자유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부분 때문에 몹시 공감하고 감동하였습니다. 다시 봐도 꼭 같은 장면에서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스포일러 주의-


사실 영화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주인공 오태식이 감옥에서 나와 회개하고 살다가 과거의 인연들과 얽혀 다시 폭력을 행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분노할 근거도 충분하고요. 


이처럼 과거의 조폭이 다시 불같이 화를 내며 끝나는 영화에 무슨 자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감독이 영화 내내 인간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해바라기>는 오태식이 감옥 생활 동안 갈망하던 자유와 그의 변화를 믿고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크게 두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오태식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오태식을 믿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출소한 오태식은 새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카센터 사장님의 사랑으로 깊이 변화합니다. 스스로도 부단히 노력하지요. 그는 반성하고 실천하며 노력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오태식은 옥중에서 새어머니로부터 작은 노트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새로운 심장을 받은 사람처럼 노트를 심장 가까운 곳에 넣고 다닙니다 그 작은 노트에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자신이 누릴 행복과 본 인이 노력해야 할 것들에 대해 적혀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고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고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고 소풍을 가는 등 오태식의 노트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변화한 자신이 앞으로 본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어떻게 행복하게 누릴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절제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자 무던히 노력하려 하죠.


하지만 어떤 과거의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주변에서 그를 괴롭힙니다. 오직 마지막에 오태식이 기회를 주는 병진이 형 만이 그의 어두운 인맥에서 유일하게 그를 믿고 사랑하며 용서하고 있지요. 


그리고 다행히도 관객들은 그의 노력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관객들은 그의 노력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오태식이 꼭꼭 눌러 적은 행복과 신념을 응원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마음속 깊숙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죠. 


솔직히 절대적인 용서라는 것은 쉽지도 않고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태식의 새어머니는 그녀의 자유의사로 사랑을 일으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천하려 최선을 다합니다. 태식이를 아들로 받아들이죠. 그리고 우리는 삶에서 일정 부분 그와 같은 관계의 헌신적 경험을 하며 살아갑니다. 바로 그 부분이 <해바라기>의 영화의 특별한 지점입니다. 


삶이란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는 자신을 믿어주기도 하고 바보처럼 사랑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시간 동안 부족한 스스로도 변화하고자 버둥거립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모두는 삶의 책임과 무게를 경험합니다. 느끼며 묵묵히 견디는 존재로 살아가는 보통의 삶. 


그 가치를 비로소 오태식이 느끼고 지키고자 했던 것에 관객은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태식의 삶에 박수를 치다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영화 내내 감독이 촘촘하게 깔아놓은 이 자유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영화 <해바라기>는 조금 볼품없고 그저 그런 조폭물의 하나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눈을 감고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새겨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해바라기>의 평점이 9점을 넘고 한번 본 사람은 설명하기 어려운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맑은 날 태식이 물가에 앉아 바라보던 이 장면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적어보았습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로 그린 지옥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