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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Jan 26. 2022

샛노랗지도 검붉지도 않은 개나리

추락하는 별에서 2화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샛노랗다 이야기할 개나리에 대한 이야기다. 


샛노란 개나리가 그득한 봄이 되면 그 사람은 가만히 다가가 냄새를 맡곤 했다. 개나리는 아파트의 언덕 화단이나 동네 구석의 허물어져 가는 산그늘에 있기에 다가가기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그즈음이 되면 그이는 성실하게 개나리에게로 가 냄새를 맡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꽃과 잔가지를 툭툭 쳐 깎아 낸 회초리를 떠올리게 하고 또 누군가에는 지난가을 찬 바람 사이를 가로지르던 철새의 발목이 떠오르는 그 나무의 색은 과연 무엇일까.


남들은 죄다 샛노랗게 보는 꽃잎들이 그 사람에게는 분홍이다 못해 검붉게까지 보인다면 그이는 한 번의 의심 없이 그것을 검붉다 할 수 있겠다. 그때 개나리는 봄의 한가운데 무슨 색으로 피어있을까.


날이 따뜻해졌기에 둘은 약속을 만들었다.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를 지나치며 혹시나 늦을까 하는 마음에 걸음을 서두른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사람도 볕이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까 지나온 개나리를 떠올려본다.


"늦었지?"

"아냐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숨을 고르며 개나리를 떠올리던 이는 방금 온 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냥 오랜만에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괜찮아 나도 그래. 어서 시키자."


한 개나리를 두고 그것이 검붉은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 이와 한결같이 샛노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서로는 한 번도 개나리의 색을 의심해본 적이 없기에 둘은 지나쳐온 꽃의 색을 입에 담는 일 없이 아름다움 만을 칭찬했다.


"오다 보니 개나리가 한창이더라. 너무 아름다워."

"맞아. 나도 이맘때면 늘 생각해."


둘은 같은 꽃을 보며 다른 색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꽃의 색을 뜨거운 커피와 함께 가슴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같은 꽃을 바라보며 다른 색을 가슴에 품고, 또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믿음이다. 당연한 계절에 당연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동안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보아왔으니 그 색이 무엇인지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믿을 일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샛노랗다는 표현을 샛노랗다는 표현으로 흔한 묘사에 가깝게 떠올리고 있을 것이고 혹 검붉은 개나리를 보던 이가 문학 작품이나 사전을 통해 개나리의 색을 알게 된다면 그때 그 사람은 검붉은 것을 샛노랗다는 표현으로 기억하게 되어 바늘에 찔린 어느 날 자신의 몸에서 솟아오를 뜨거운 피가 샛노랬었노라고 일기장에 꾹꾹 눌러 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개나리에 대한 사전적 지식과 과학적 관찰에 따른 사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노랗거나 붉거나의 어디쯤으로 누군가는 믿고 기억하게 된다. 


때로는 사람들이 믿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사실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테이블에 앉은 둘 중 한 명은 아주 흔한 누군가 처럼 보통의 것을 믿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혼자만의 무엇을 믿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두 믿음은 모두 같은 종류의 믿음이다. 다만 그 기준이나 방향성 그리고 믿음의 정도가 언젠가는 바뀔 수 있을지는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내내 샛노란 것을 부르짖던 이가 문득 눈 아래로 흐르던 새빨간 눈물 때문에 그 계절의 개나리를 검붉게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때 그이의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그날 이후로 선명하게 검붉은 개나리가 새겨진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개나리는 아주 검붉은 무엇으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될 수도 있다.

 

그렇게 개나리는 둘의 사이를 혹은 셋의 사이를 떠돌다 여기에 자리 잡아 새싹도 피지 않은 1월의 쓸데없는 믿음 놀이에 희생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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