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탄탄하지만 흥행은 어려웠던..

by 이훈보

2014년 그 해는 명량의 해였습니다.


이 정도로만 정리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명량>은 어마어마한 열풍을 몰고 왔었죠. 그게 대통령의 힘인지 영화 자체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나쁘지 않게 봤었습니다.


2014년 국내 박스오피스 기록에 따르면 방황하는 칼날은 50위 98만 9593명이 관람한 영화입니다.


그 위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을 <슬로우 비디오> <빅매치> <찌라시> <인간중독> <해무> <두근두근 내인생> <피끓는 청춘> <제보자> <기술자들> <용의자> <표적> <끝까지 간다> 이 영화는 잘 만들었죠. <신의 한수> 이 영화도 잘 만들었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역린> <타짜 2> <군도> <국제시장> <변호인> <수상한 그녀> <해적> <명량> 과 같은 한국영화가 있습니다.


50위 안에 든 24편의 영화 중 제가 본 것은 15개 정도 되네요.

그중에서 오늘은 <방황하는 칼날>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정호 감독은 여러 영화의 각색을 맡은 경력이 있습니다. 그가 각색을 한 영화들을 보면 <석조저택 살인사건> <더 폰> <탐정> <방황하는 칼날> <간첩> <용서는 없다>로 일관된 취향? 을 알 수 있습니다. 각색 이외에 직접 감독을 맡았던 영화는 <베스트 셀러> (잘 만든 영화죠) 과 오늘 소개하는 <방황하는 칼날> 이 있습니다.


스릴러나 추리, 추적 물에 장점을 보이는 감독입니다. 이런 경우 기본적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화면의 톤이나 임팩트가 나쁘지 않습니다. 이미 전작이었던 <베스트셀러>로 증명을 한 바도 있으니까 어찌 보면 <방황하는 칼날>을 언젠가 보는 것은 예견된 사실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방황하는 칼날>은 개봉 당시부터 흥미롭게 지켜보던 영화였습니다. 흥행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 완성시키는 영화. 그 사실에 감탄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 꽤 높은 점수를 줍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점철이 한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여기에 감독의 탄탄한 연출 및 촬영 점수가 붙으니 무조건 봐야 할 영화 중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원작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란 것과 사적 복수를 다룬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결말을 향해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를 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 몇 년을 묵혀두었습니다. 화면 색과 같은 것들이 빼어난 것은 이미 예고편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 더 긴 시간을 들여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적잖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비용 대비 효율이라는 지점이 필요하고 결국 몇 년 뒤 넷플릭스를 통해 이 영화를 보게 됩니다.


영화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딸을 둔 아버지의 사적 복수를 다룹니다. 원작 소설에서 소년법을 중요하게 다뤘던 것과 달리 영화는 그것보다 간결하게 감정에 호소하며 이야기에 힘을 싣습니다. 사적 복수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따뜻하고 친근감 있는 배우 정재영과 2012년 <골든 타임> 을 통해 진한 인간미를 보여준 배우 이성민을 이용해 감독은 관객들을 잘 이끌어 갑니다.


이야기 좋고 화면 좋고 연출 좋은 영화죠.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다만 기본적인 구조의 매력이 조금 약한 것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영화가 취향이 타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추천을 할 수도 있고 전혀 눈길도 주지 않는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영화가 가져야 할 기본기가 무척 잘 갖춰진 영화입니다. 잔혹한 장면도 있지만 그것도 사적 복수의 처절함과 주인공의 감정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잘 쓰였고 전체적으로 화면의 연출이나 안정감 그리고 장면 간 리듬이 뛰어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추천할 만한 영화지요.


1.jpg 포스터만 봐도 기본기가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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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의 이야기야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니 이 정도로 하고 또 다른 지점의 이야기를 해볼 까 합니다.


왜 이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을까요?


이 영화의 흥행 순위는 망작이라고 하는 여느 작품들보다 낮습니다. 완성도로 보면 분명 빼어난 구석이 다분한데 흥행은 그렇지 않지요. 배우들이 나이 많은 아저씨 들이라서? 단지 그 이유 뿐일까요? 혹시 다른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에 영화 외적인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 언급했던 <골든 슬럼버> 한국판이 <골든 슬럼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에 뿌리 깊은 정서를 옮겨 내지 못해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은근한 예측과 맞닿은 지점이 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의 경우 원작 소설이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것을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 각 국가의 사람들이 느끼는 사법 체계에 대한 느낌의 간격을 감안했을 때 흥행 요소가 조금 약하지 않았나 합니다.


상대적으로 사적 복수에 대해 공감하기에는 한국의 사법체계(현실을 보면 사법체계에게 조금 미안하지만)의 구조가 일본과 조금 차이가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주인공에게 그래 잘했어!라고 무조건 공감하기보다 그건 그거고 사회를 바꾸자! 는 에너지가 더 큰 것이 아닐까요?


이런 사적 해결의 양상이 일본 작품에서는 많이 등장합니다. <골든슬럼버> <예고범> 최근의 드라마 <마더>의 이야기 또한 사적 해결을 다루는 것을 보면 공감대에 약간의 간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정치적인 면에서 일본과 다르게 개선된 부분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부분들이 일본에 비해 더 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면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이 폭넓은 감동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면 좋은 일일 수도 있지요. 상대적으로 사회 구조에 대해 신뢰도가 높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감독의 캐스팅 능력과 연출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차기작을 기대해 봐야겠지요. 저는 솔직히 차기작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글은 월간이리 3월호에 실은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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