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입니다.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기록을 생각하면 남들이 추천하지 않을 영화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한국 관객수가 100만이 넘지 않는 걸 생각하면 또 이 영화를 추천할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해 슬그머니 추천해 봅니다.
우선 평소처럼 감독을 살펴볼까요?
<베이비 드라이버>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로 같은 감독의 유명한 영화로는 <뜨거운 녀석들 HOT FUZZ>가 있죠. 저도 일요일 영화 소개 코너에서 보자마자 이영화는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능력 있는 경찰(주인공)이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 가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죠. 연출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2007년 개봉한 <뜨거운 녀석들>은 지금도 종종 사람들의 추천 목록에 올라가는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보셔도 큰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베이비 드라이버>로 넘어가죠.
저는 영화를 볼 때 감독 도 잘 안 보고 스토리도 잘 안 보고 포스터를 보는 편입니다. 과거 음반을 CD로 사던 버릇이 남아서 인지. 아니면 어떤 정보도 없이 뭔가를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인지 웬만하여서는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 영화를 고르는 편입니다. 요즘에는 한 두 개의 스틸샷을 보기도 합니다.
<베이비 드라이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봤지만 개봉 당시 포스터만 보고도 이 영화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었던 감독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재미있을 듯 했던 영화입니다. 인물 표정이 과하지도 않고 전통적으로 오락영화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포스터 입니다.
그럴듯한 보스, 악당, 젊은 주인공, 미녀, 총, 자동차 그리고 쫓는 경찰차 그리고 음악을 상징하게 되는 아이팟 이어폰까지 기본적으로 오락영화다!라고 하면 필요한 것들이 전부 들어가 있죠. 안의 배치가 그렇다 해도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재미있게 그리고 현대의 관람객의 입맛에 맞게 제시해 주냐가 남아있는데 그 마지막 한 포인트를 영화는 핑크색 배경으로 해결해 줍니다. 정말로 쉽고 명확하게 난제를 푸는 마술사 같은 포스터입니다. 자 이 인물과 설정들이 감싸진 핑크색 포스터를 봐라 우리가 너희에게 보여줄 것들은 이런 재미다!라고 선언하는 듯합니다.
멋진 포스터와 별개로 재미가 없는 영화도 많지만 보통은 포스터의 솜씨가 감독의 센스와도 연관이 있다고 믿는 저에게는 충분히 긍정적인 포스터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오늘 <베이비 드라이버>를 추천하는 이유는 포스터와는 조금 연관이 없습니다. 요소가 아니라 요소를 잇는 기술. 즉, 편집이 주는 재미를 이 영화를 통해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실제와 달리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은 편집이 들어가죠. 사진의 프레임과 같은 무수한 연속 프레임들이 하나의 영상물이 되는 와중에 이 리듬을 어떻게 끊어가고 연결 짓는 것이 영화의 논리와 재미에는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저는 이 부분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게 아니면 단순 스토리로를 볼라치면 소설이나 만화를 봐도 되니까요.
이 편집이라는 측면에서 <베이비 드라이버>가 갖는 재미는 무척 중요합니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영상을 자르고 붙이는데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베이비 드라이버>는 90회 아카데미에 편집상, 음향 편집상, 음향 효과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이건 저도 영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찾아보다 알게 되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화면을 자르고 붙이는 속도가 남다른 재미를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런 재미를 강렬하게 느껴본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보라 편집의 재미를!”이라고 외치는 듯한 강렬함이 있습니다.
영화의 음악이나 리듬감이 상당히 현대적인 것과 반대로 이야기 구조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고전적이라는 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게 성립하기 위해 충분히 긴장감을 줄 만한 조연 배우들을 섭외해야 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아닌 배우들로 꽤 고전적인 이야기를 힘 있게 밀어붙입니다.
뻔히 알아도 이렇게 비틀면 재미있다는 것. 감독이 “내가 자라며 봐온 재미의 지점은 이런 것”이라는 이야기 하는 듯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아주 탁월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혁신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죠.
사실 이 영화보다 조금은 흥행이 덜 된 영화를 추천해야 할 것 같아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만든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추천해 볼까 하고 그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가진 재능이 리듬과 편집을 이용한 자극의 극대화라고 본다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영화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상대적으로 무게도 있고 편집 리듬의 속도도 느린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을 미리 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이제 보여줄 밑천을 끝까지 시원하게 밀어붙인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 보는 것도 앞으로의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월간 이리 연재분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