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순기능
난 요즘 매일 아침 8시마다 천을 따라 30분 정도 산책을 한다. 벌써 2주일째 이 루틴을 반복하고 있다. 요새 철학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많은 철학가들이 산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멋진 업적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해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난 그렇게 그들처럼 디지털 기기의 어떤 도움도 없이 오로지 내 걸음에만 집중해서 걷는다. 내 걸음에 집중해서 걷고 있을 때 출근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나를 방해한다. 그들이 산책을 할 때는 이런 소음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옛날 사람들이 새삼스레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내 걸음에 집중은 포기하고 주위를 둘러 보기로 한다.
"오리들은 추운데도 참 잘도 헤엄친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보다 눈이 꽤 녹았네?"
추운 건 지독하게 싫지만 그래도 나름 정들었던 눈이 녹아 사라지니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눈은 참 특별한 것 같아. 눈을 이렇게까지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차가운 겨울을 더욱더 돋보여주기 때문일까? 항상 곁에 있을 줄 만 알았는데 어느새 사라져버리기 때문일까? 내가 오늘 마주한 똑같은 눈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새로운 눈이 우리를 다시 찾아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또 뭐가 있지? 행운이란 눈과 다르게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이고 우리 앞에 찾아오지 않아도 눈이 오지 않는 겨울보다는 아쉽지 않다. 그럼 이렇게 눈처럼 또 사라지는 것들이 뭐가 있지?
아, 내가 있지.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그 확률은 행운이 찾아올 확률과 눈이 올 확률과 다르게 100% 찾아온다. 그렇다면 눈과 다른 점은 뭘까? 우리는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얘기다.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가. 오늘도 그렇다. 오늘은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오늘을 얼마나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언젠가 다시 찾아올 눈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난 아니었다. 뭐 내일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일이 되면 오늘은 그렇게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난 내 인생에 한 번뿐인 이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있는 한 Moment를 브런치에 작게나마 기록하려 한다.
그냥 산책 나가서 녹은 눈을 봤을 뿐인데 내가 별소리를 다하네. 그들이 괜히 산책한 게 아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