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ta Luego, Papa Francisco

<콘클라베>를 빙자한 종교와 음악 이야기

by 도시파도

교황 선거를 다룬 영화 <콘클라베>는 랄프 파인즈의 연기 없이도 이미 튼튼하고 든든한 영화다.

나는 <콘클라베>의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많다. 그 중에서 스포일러를 제외하고 말하자면, 영화의 마지막 투표에서 나오는 '그것'은 나는 "신비"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종교에서 하는 의례들은 항상 음악과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성당은 마이크 없이 소리가 잘 울리는 그 시절 최고의 콘서트장이다. 모두가 하나되는 단체 행사에 음악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하겠지만, 아니다. 종교생활에서 음악은 꼭 필요한 기술이자 뛰어난 비유다. 기독교의 복음이란 글이 아니라 고막이 떠는 "말씀(소리)"다.



기독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종교에선 '귀(耳)가 중요하다'. 유학, 노장철학의 땅인 한자문명권에서 성인(聖人)이란 간단히 말하면 "귀가 좋은 사람"이다. 유교의 <주례>는 사람이 배울 여섯 과목인 육예를 정하고 있다. 여섯 과목에는 나름의 위계가 있다. "예-악-사-어-서-수", "예법 - 음악 - 활쏘기 - 말타기 - 서예 - 수학"로 정해놓았다(수학을 6위에 놓은 게 아쉽지만). 예법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장례(상례와 제례)다. 장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음악이 무려 2번째다. "왜 음악이 2위나 하는 것인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일은 오롯이 지금에 박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음악에 감동받는 방식은 음악의 '차이와 반복' 때문이다. 1절 후렴과 2절 후렴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2절 후렴을 귀에서 들을 때, 내 머릿속에는 1절 후렴의 "잔향"이 남아있다. "잔향"과 연주가 뒤엉키고, 조화를 이루고, 긴장감을 만들어낼 때 음악은 감동이 된다. 그리고 연주가 다 끝나고 "잔향"만이 남을 때, 음악이 끝나는 침묵에서 음악은 최고의 감동을 준다.



그래서 음악은 '지금의 소리'를 벗어나 '과거의 잔향'과 '미래의 침묵'을 넘나드는 일이다. 음악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침묵을 느끼는 것과 만나게 되어 있다. 침묵을 느끼는 기술을 익힌다는 점에서 음악보다 좋은 종교의 교보재는 없다.

이를 뒤집어 보자면, 종교적 성숙은 "들리지 않는 소리(말씀)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초음파를 듣는 것처럼. 종교생활 및 수련이란 자신의 가청음역대를 넓히는 기술적 영역일 지도 모른다.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신호가 들어갈 곳을 비워놓아야 한다, 안테나의 접시가 비어있는 것처럼.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막힌 고막으로 우린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안팎으로 막힌 고막은 떨리지 않으며, 여백없이 자기 자신으로 채워진 인간은 바뀌지 않으며, 거기에는 "신비"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무신론자로서 종교란 "개인 자체"를 깨뜨리는 수업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멘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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