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시간을 맞대는 일"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의 시간들

by 도시파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출근길에서 본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 말만 들으면 집 생각이 드는 사람들, 만나면 유쾌한 시간이 보장되는 사람들. 여러 사람들 중에서 운이 좋게도, 상대방의 용기 덕분에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루의 끝과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같이하고 싶고, 끝과 시작이 그 사람 덕분에 이어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정말로요.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고, 같이 있고 싶은 곳이 생깁니다. 예전까지 항상 "1인용"으로 생각해왔는데, 이제 어느새 "2인용"으로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혹은 나만의 아지트를 알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는 이유는 나만이 아는 곳,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초대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 곳은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그런 팻말을 항상 걸어놓고 살았습니다만,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출입할 관계자'가 한 명도 없다면 "출입금지 구역"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아무도 없이 나홀로 있는 나만의 아지트는 말그대로 공허할 따름입니다.



나만의 아지트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이내 나만의 과거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전파됩니다. 나만의 다른 장소 뿐 아니라 '다른 시간 속의 나'를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마음은 아마 같다고 봅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시간 속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게 "출입금지 시간"에 상대방이 출입하기 시작하고, 저도 어느새 상대방의 "출입금지 시간"에 출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미술관이라고 비유하자면, 우리의 일상은 낮의 미술관입니다. 모두에게 보여줘도 되는 전시물만 게시하고, 오래되고 내밀한 전시물은 지하보관실 어딘가 놔둡니다. 미술관 영업시간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죠. 하지만 밤의 미술관은 "관계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비원처럼요. 미술관의 '파수꾼' 말이에요.



서로가 서로의 "출입금지 시간"에 출입하기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의 파수꾼이 되어줍니다. 마치 교대근무를 하듯이 말입니다. 자발적으로, 기꺼이, 탐닉하며 수행한다는 게 기존의 교대근무와 매우 다른 점이죠. 저는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맞대는 일"이라 느낍니다. 마치 서로의 손바닥을 펼쳐서 손금을 맞대는 것처럼 말입니다. 각자 보냈던 시간들, 혹은 우연히 스쳤을 지도 모를 그런 시간들을 되살리면서 각자의 시간이 서로의 시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합니다. 기억을 새롭게 쓰는 능력이 인간의 위대한 능력이라는 책 속의 문장이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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