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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과 금융시장

사회적 분위기(구조)를 안다는 것.

by 도시파도

미투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 패러다임의 등장이었다. 기존의 성폭력 고발과 미투운동의 다른 점은, '피해자의 유혹', '쌍방과실'이란 프레임이 통하지도 않고 완전히 박살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대처로 이끌 것이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미투운동이 루머로 더렵혀지는 상황이다. 범죄 고발에 대한 진실성이 날조된다면, 그 이전의 진실된 운동들마저 더렵혀지는 건 언론과 여론의 생리다.


다시 살피면, 미투운동은 성폭력(행동)을 당한 피해자들이 상황을 다시 말하면서, 대중들에게 전달되며 올바른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전개된다. 구조로 보면, '행동'-'당사자(전달자)'-'제3자(대중)'-'사회적 분위기'가 된다. 미투운동은 이 '사회적 분위기'가 예전과 달리 전반적으로 달라졌음을 드러냈다. 루머의 위험은 전달자의 말이 진실되지 않는, '행동-전달자의 말'이 "격리"된 상황이다. 루머가 위험한 이유는 우리(제3자, 대중)가 전달자의 말로만 상황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낮은 확률, 그러나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런 루머의 상황은 2008년에 맞이한 글로벌 금융 위기(서브프라임 사태)와 비슷하다. 미국 사람들은 과도하게 낮은 금리와 대출조건 때문에 너무 많이 주택대출을 신청했다. 은행은 전부 빌려줬고, 채무자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상환을 포기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월스트리트의 유수한 은행과 금융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미국 경제는 휘청 수준이 아니라 바닥을 찍었다. 왜 그런 걸까?

사람들은 집 때문이라도(요즘엔 안 그런 것 같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우리의 노동임금의 일부를 은행에 낸다. 거기까지가 사람들이 경험하는 금융시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진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은행은 생각보다 돈이 많지 않다(뱅크 런을 생각해보자).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데 그치지 않고, 돈을 끊임없이 굴려야 한다. 그래서 돈을 빌리거나, 투자받는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이른바 큰 손, 기관 투자자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국민연금공단 등이 그렇다.

기관 투자자는 자신의 큰 돈을 더 잘 굴리고 싶기에 좋은 은행을 찾는다. 좋은 은행은 돈을 제때 내는 은행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오직 돈과 날짜로 표기된 '숫자'들 뿐이다. 채무자들의 노동은 전혀 끼어들지 않는다. 이제 금융시장은 '숫자놀이', 돈 놓고 돈 먹기를 시작한다. 기관 투자자들의 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노동이 아니라 돈이며, 숫자, 더 정확히는 '금리'다. 그 금리를 조종하는 건 중앙은행이다. 한국은행, FRB(미국의 중앙은행, 여기서 달러를 만든다.) 등이 콘트롤 타워가 된다. 금리가 0.25% 올라도 100만원의 이자와 100조의 이자는 차원을 달리 한다. 굴리는 돈이 클수록 금리라는 규칙은 그 영향력이 막대해진다.

미투운동이 가해자의 행동에서 시작할지라도, 우리가 판단하는 근거는 슬프게도 누군가의 '말'이다. 보통 행동-전달자의 말은 이어지지만, 루머는 그것이 서로 격리되어 우리의 판단을 무너뜨린다. 금융시장도 이와 비슷하다. 금융시장의 전제는 보통 사람들의 노동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노동을 숫자로 바꿔 숫자놀이로 만들었다. 정작 숫자가 돈으로 나오지 않자, 숫자놀이는 끝나버렸다. 그 원인은 급격히 올라간 '금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뉴스에서 금리 얘기를 열심히 하는 듯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격리된) 이야기지만, 금융시장의 구조('임금노동자'-'은행'-'기관 투자자'-'중앙은행')를 보면 대단한 변수니까 말이다. 우리가 미투운동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는 건 우리가 미투운동 저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것처럼 노동과 자본이 "격리"된 금융시장의 구조를 알고 금리의 중요성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금융시장의 구조를 알고 이를 염려하는 건 마치 미투운동의 의미와 루머의 위험을 아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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