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시 그리고 노래
옛날에는 언어, 시(詩) 그리고 노래가 하나였다고 한다. 노래가 말이고, 시였다. 그러다 그 3가지가 나뉘면서 각자의 길을 갔다는 글을 읽었었다. 그렇게 보면 아주 옛날의 기록 양식이 산문이 아니라 시였다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중국의 [시경]을 생각하면 그럴 법하니까… 그렇다면 이제 언어, 시, 노래는 영원히 이별한 걸까? 나는 시는 모른다. 그러나 언어와 노래라면, 조금 할 말이 있다. 우스운 건 내가 외국어와 외국 노래를 얘기할 거라는 점. 나는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로 이 말을 하려 한다.
[First Love], [Distance] 등의 히트곡을 줄줄이 냈던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 그녀의 전성기가 90년대였지만, 지금도 그녀는 일본음악 속 하나의 상징이다. 그녀가 일본음악의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그녀가 90년대 일본음악들이 풀려고 했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90년대 일본음악의 숙제는 Pop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70년대부터 일본음악은 ‘사잔 올 스타즈’를 비롯한 뛰어난 Rock 음악을 구축했고, 한편에는 엔카(한국의 트로트와 비슷)가 있었다. 하지만 정복하지 못한 음악 장르가 남았다. 그건 R&B를 베이스로 한 Pop 장르였다. (당시 일본의 팝 듀오인 Dreams Come True는 일본음악과 Pop의 접합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15살 소녀의 곡 [Automatic]은 엄청난 대히트를 친다. 그 이후, [First Love]는 전대미문의 히트를 달성하며 일본을 휩쓸었다. 나는 그 당시 일본에 없었기 때문에 왜 히트했는지를 관찰할 순 없다. 나는 그 이유를 그녀가 R&B를 일본 음악에 토착화시키는 걸 성공했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음악(Music)이 결국 소리(Sound)라는 걸 생각하면, 일본의 문자인 ‘가나’가 표현할 수 있는 음가 개수의 한계는 매우 치명적이다. 게다가 영어와 달리, 일본어는 자음과 모음이 모여야 소리의 자격을 갖는다. 그래서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일본어는 R&B의 그루브를 표현하는 데 난점을 갖고 있다(한국어도 그러하다). 그러나 우타다 히카루는 그런 한계를 문장을 다르게 끊어 부르는 방법 등으로 보완한다. 그래서 그녀의 가사는 외래어가 많이 쓰이지 않고, 일본어에 천착함에도 R&B의 리듬에 착 달라붙는다. 물론 그녀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중 언어 사용자(Bilinguals)라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https://youtu.be/A37bu5BFaWs
Utada Hikaru - Anata (Short Version)
Music video by Utada Hikaru performing Anata (Short Version). (C) 2017 Epic Records Japan, a division of Sony Music Labels Inc http://vevo.ly/OpNx4c
www.youtube.com
우타다 히카루는 2017년 12월에 낸 Anata (あなた, 당신)에서 자신의 R&B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곡은 앞서 설명한 끊어 부르기를 잘 드러낸다. 가사 중 [첫 번째 영상의 0:53~0:57/ 두 번째 영상의 0:29~0:34], ‘大概の/問題は/とるに足らない (대부분의/문제는/하잘 것 없어)’를 일반적으로 “다이카이노/몬다이와/토루니타라나이”로 읽지만, 노래 속에는 “타이카이노/몬다이/와토루/니타/라나이”로 변칙적으로 끊어 부른다. 변칙적 끊어 부르기는 리듬과 운율을 살리며 일본어의 한계를 나름 보완한다. 이런 예들은 이 곡 곳곳에 숨겨져 있다.
게다가 예전과 다른 목소리에 더 능숙해진 보컬로 흘러간다. 그렇기에 일본어를 몰라도(언어와 노래는 갈라졌기 때문에),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게 될 것이다. 좋은 음악이란 건 가끔 언어 지식을 초월하기 때문이니까.
https://youtu.be/Z9BHc8_I6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