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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파도 Sep 04. 2018

창의성의 허상과 의미

창의성은 과연 가르칠 수 있는 걸까?

 2018 아시안게임에는 기억될 에피소드가 많았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 있게 본 종목은 새로 채택된 ‘E-스포츠’였다. 그런데 인터넷 게임을 ‘E-스포츠’라는 하나의 스포츠라 불러도 되는 걸까. 


 인터넷 게임을 ‘E-스포츠’로 만들어주는 건 게임 자체의 스포츠적 성격보다는 게임 ‘중계’라는 문화 때문이다. E-스포츠가 시작된 건 20년 전의 한국이었다. 창안자들은 게임을 축구나 야구 경기처럼 ‘중계’하고, 중계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스타크래프트를 민속놀이로 만들었고, 20년이 지나 E-스포츠는 국제 스포츠대회가 되었다. 


 솔직히 E-스포츠를 고안한 사람들은 뭘 한 게 없다. 그들은 새로운 게임을 만든 것도 아니고, 새로운 도구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중계진과 게임 고수들, 그리고 몇 대의 촬영 장비와 컴퓨터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창의성은 한때 교육계를 강타한 단어였다. 창의성 교육이니 하는 말들이 들렸다. 그 때 내 생각은 ‘아니, 창의성이 가르쳐서 될 일인가…’이었다. 창의성이란 영감과 직관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창의성은  어느 정도 교육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맥락(Context)을 변환시키는 것이다. 기존의 맥락 속에서 봤던 내용을 다른 맥락 속에 놔두는 것. 더 쉽게 말하면, 서로 다른 지식들을 이어서 새로운 정보를 산출하는 것. E-스포츠는 인터넷 게임과 스포츠 중계라는 서로 다른 맥락 속의 내용들을 이어서 만든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에는 영감이 필요하지 않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지식들을 습득 혹은 조사하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잇는 연습이 필요하다. 창의성을 교육한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가능하다. 지식들을 조사하는 능력과 지식들을 잇는 시행착오들이 창의성 교육의 중간 목표가 된다. 재료가 되는 지식들은 완전히 새로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다른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새로운’ 시도다. 어떤 의미에서 창의성은 연습하는 기술의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창의성은 영감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영감 없이도 창의성은 설명될 수 있고, 실행될 수 있다. 또한 영감을 가르친다는 건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가능해도 이를 의무교육에 넣는 건 무리한 요구다. 


 창의성은 여전히 두루뭉술하게 언급되고, 그래서 남발된다. 그러다 보니 창의성 교육 자체도 모호해진다. 자유롭게 가르친다, 암기식을 피한다, 뇌의 힘을 늘린다는 등 마치 도를 닦겠다는 말만 지껄이다 시간을 보내는 땡중의 모습과도 같다. 모호한 개념의 정의는 목표와 실행을 불분명하게 만들 뿐이다. 창의성 교육은 이제 자기 자신이 놓은 덫에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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