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파도 Nov 01. 2018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앞으로도.

비시국적 문제를 "시국적으로" 접근하는 것

 최근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의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판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배상 거부를 고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각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1억원의 배상금이 아까워서는 아닐 것이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판결은 전범 기업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며, 이것은 아베 총리의 목표인 평화 헌법 9조 개헌(일본의 재무장)을 가로막는 일본 정치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보면,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라는 크로체의 통찰은 정확하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는 단지 역사학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문제들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비시국적 문제를 시국적으로 접근(Approach)하는 방식”은 학문의 정도(正道)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아감벤은 고대 그리스의 내전(內戰, 스타시스, Stasis)을 끌고 와서 9.11 테러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 테러리즘’을 바라봤다[내전: 스타시스, 정치의 패러다임]. 일본의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18세기 유학자 오규우 소라이의 근대성을 끌고 와서 ‘제2차 세계대전의 사상적 대립(근대의 초극=파시즘 vs 근대의 긍정)’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예는 찾아보면 수도없이 많다. 


 그런 와중에 든 생각은 미래에는 어떤 ‘시국적 문제’가 생겨날지에 대한 상상이었다. 내게 그 상상에 영감을 준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였다.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해커 ‘인형사’는 자신이 생명임을 법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인형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과거 인간이었다가 전자 두뇌로 기억을 이식받았다. 게다가 쿠사나기 소령은 자신이 애초에 인간이었는지도 의심한다. 한마디로, <공각기동대>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생명’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 속에서 “자기동일성(Identity)”의 환상을 말하고 있다.  


 나는 <공각기동대> 속 인형사의 질문이 미래의 문제라고 상상한다. 즉, “‘로봇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로봇권 반대 근거 중 하나는 로봇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난 여기서 ‘비시국적 문제’를 도입하고 싶다. 사람은 이미 법적으로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것은 ‘법인(法人)’이다. 즉 회사다. 근대법의 발전은 회사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실험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 속 기억 전송은 회사의 청산과 해산에 대응된다. 


 나의 상상에선 로봇권 논의는 단지 인권법에서 그치지 않고, 공익법인법과 회사법(상법의 일종) 등을 확장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걸려있다고 본다. 이게 상상인 이유는 일단 나는 법학 전공이 아니며, 실제 로봇권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비시국적 문제(인권법, 회사법)’가 시국적으로(로봇권) 재해석될 것이라는 나의 믿음만은 확실하다. 



작가의 이전글 이상과 좌절, 그리고 계속되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