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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파도 Dec 07. 2018

영화 <카이트>를 봤습니다.

마틸다가 레옹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그 탓에 후속 작품들이 과소평가당하기도 한다. <늑대아이>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전부 다 적어낸다면, 몇 페이지를 넘길 지 모르겠다. 아마 그 대부분은 10년도 더 된 작품들이라 추측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2000년대부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추락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의 눈으로도, 최근 10년 간의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걸작을 못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희망은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 뿐이라 보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나는 <썸머워즈>와 <너의 이름은>을 재밌게 봤고, <늑대아이>를 걸작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나 그럴 뿐, TV 애니메이션으로 들어가면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다.


만약 마틸다가 그대로 집에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90년대는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였다. 90년대 애니메이션들을 뒤져보면, 생각하지 못한 좋은 작품을 건질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카이트>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카이트>의 주인공 ‘사와’는 부모님을 잃고 부패형사에게 킬러로 길러진다. 여고생 킬러라는 설정은 ‘사와’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90년대 영화와 연결하면, <레옹>의 평행세계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마틸다가 레옹을 만나지 못한 채, 집에 남겨져 게리 올드만이 맡은 노만에게 길러졌다면?”이란 상상을 자극하는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카이트>는 주인공의 설정에만 의존하는 부실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주인공 ‘사와’와 그녀를 기른 부패 형사 ‘아카이’ 그리고 그녀와 동병상련인 ‘오부리’ 사이의 관계들은 <카이트>의 핵심 이야기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제목이 <카이트>지만, 사실 연(Kite, 카이트)과 관련된 그 어떤 메타포도 등장하지 않는다.

 

 연(Kite, 카이트)은 연을 붙잡는 실과 띄우는 바람 사이의 긴장관계로 가능하다. 실이 없다면 연은 하늘 멀리 날아가서 연이 될 수 없다. 바람이 없는 채, 연을 날리려 한다면 연은 뜨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연은 일방적으로 실에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가 아니다. 연은 실에 연결되어 있지만, 바람이란 외부 상황에도 대응하기 때문이다. 


‘사와’는 실과 바람 사이에 놓인 ‘연’으로 이해된다. ‘사와’는 ‘아카이’에 대해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이다. ‘사와’는 ‘아카이’에게 붙잡혀 있지만, ‘오부리’를 만나 ‘아카이’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녀는 ‘아카이’라는 실을 끊어버리려고 한다. 수동과 능동 사이의 긴장관계가 그녀를 진정 매력적으로 만든다. 사와(砂羽)는 직접 자신의 이름을 설명한 것처럼 연이 아니라 자유로운 깃털(羽)이 되려고 한다. 과연 그녀가 완전히 수동적인 ‘마리오네트’가 될지, 긴장 상태의 ‘연’으로 남을지, 실을 끊고 ‘깃털’이 될지는 영화를 직접 보길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는 추천하기 꺼려진다. 물론 <카이트>는 장점이 많은 영화다. 연에 은유되는 ‘사와’의 복합적인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고, 킬러 영화에 걸맞게 액션 장면은 매우 긴박하고, 스타일리쉬하다. 그리고 ‘사와’와 ‘오부리’의 동병상련과 관계는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응원하게 만든다. 그러나 <카이트>는 폭력과 섹스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다. 애초에 19금 애니를 목적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우리가 볼 수 있는 국제판에서 한 번 칼질을 당할 정도였다. 오히려 국제판이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어서 좋다. 폭력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지점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감독 중에서 폭력과 섹스 그리고 적나라한 묘사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정답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실제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기 영화에서 <카이트>를 오마주까지 했다. 그것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대표작 <킬 빌>이다. <카이트>의 ‘사와’는 <킬 빌>의 메인 빌런 ‘오렌 이시이’로 다시 태어난다. ‘오렌 이시이’의 과거 회상이 갑작스럽게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는 이유가 어느 정도 풀린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거리낌없이 본다면,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스타일리쉬함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게다가 <카이트>는 45분 내외의 짧은 애니메이션 영화라서, 영화의 설정과 임팩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아직도 나는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추억에 벗어날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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