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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스>를 봤습니다.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은 어찌 이리 험난한가!

by 도시파도

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트루스>는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방송국 CBS 기자인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 분)'는 당시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인 조지 부시의 군 복무 이행에 대한 뉴스를 만들고자 팀을 꾸렸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뉴스의 주인공인지라, 뉴스를 만드는 건 순탄치 않습니다. 그러나 취재원(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용기와 팀의 노력으로 뉴스는 끝내 완성됐고, 뉴스는 미국 전 지역으로 방송됐습니다. 영화는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Nobody's Fault=Everybody's Fault


뉴스의 허점이 드러나고 맙니다. 뉴스가 잘못됐다는 사실에 CBS는 그걸 반박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기도 하고, 반박 보도도 냅니다. 그러나 반박 보도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CBS의 반박 보도를 듣기도 전에 이미 대중들은 뉴스를 부시를 저격한 날조로 취급하며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결국 '사건'이 터진 겁니다. 일이 잘 될 때는 모두 성취감을 느끼며 서로 축하하지만, 일이 잘못될 때는 누가 책임을 지는지 가려야 합니다. 하지만 팀의 성공에 있어서 누구의 덕이 크고 어느 정도인지 재량 하기 어려운 것처럼, 팀의 실패에도 누구의 탓이 크고 어느 정도인지 재량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명백한' 잘못이라 단언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소수입니다. '사건'은 여러 사람들의 잘못이 혼재되어 만들어진 겁니다. 영화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여러 사람들'에 주인공 '메리 메이프스' 또한 예외로 두지 않아 저널리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포기하고 생존을 선택하는 언론


이제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건을 명명백백히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야 할 겁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건의 중심이 언론이라면 그 잣대가 더욱 엄격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CBS(언론)는 사건이 터지자 뉴스의 취재원을 찾아갑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정보가 잘못됐음을 얘기하라는 떠넘기기였습니다. 거기에 CBS의 기자들을 버리는 것 또한 서슴지 않습니다. CBS의 잘못을 팀의 잘못으로 축소시키고 잘못한 팀을 해고시킵니다. 그렇게 되면 CBS의 잘못은 더 이상 없는 거죠. 우리가 실제 뉴스에서 자주 보는 꼬리 자르기입니다.


언론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이슈를 두고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대화'를 시작으로 민주주의 사회는 움직입니다. 그것은 술자리에서 하는 신변잡기적 대화, 의회에서 법안을 두고 하는 토론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기업이며 이익 집단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지켜 생존하기 위해 움직이며, 그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과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결국 언론은 거대한 모순을 마주합니다. 언론의 역할과 언론의 한계적 상황, 진실과 생존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녀사냥'하지 않고, 열려 있는 사회


시간을 조금 돌려서, CBS가 처음 반박 보도를 방송했던 때로 가보겠습니다. CBS의 반박 보도는 부족했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박 보도를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CBS는 거짓을 말하는 언론이 되었고, 메리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론이 아무리 말한다고 한들, 듣는 사람들이 귀를 열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힘만 빠지는 상황입니다. 말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듣는 사람(사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듣는 사람의 역할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섣부르게 판단하여 편견에 갇히거나 마녀 사냥하지 않고, 언제나 눈과 귀를 열어 두는 겁니다.


'진실'을 향해 가는 험난한 길


영화는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이 왜 험난한지를 3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기자(저널리스트) 및 취재원 등의 뉴스 제작 과정 중 오류, 언론의 모순(진실 vs 생존), 편견에 갇힌 사회가 그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중 하나도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3가지를 다 잡아야 한다니!! 어찌 보면 '진실'로 가는 건 '환상'과 같다 생각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진실'을 찾고, '진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그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와 메리의 전화 장면은 저 자신이 언론의 황금기에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댄 래더'의 마지막 방송 장면은 위대한 언론인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언론의 암흑기를 알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트루스>는 2004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2016년인 지금도 거대하고 짙은 암흑은 아직 떠나지 않은 듯합니다.


에필로그)


개인적으로 해고 사유 건으로 만나게 된 기자 메리와 그녀의 변호사의 만남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기자와 '승리'하고자 하는 변호사라, 좋은 대립이었습니다. 그리고, 메리와 댄의 관계도 애틋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연인 사이의 애틋함은 아니죠. 부녀이면서도 롤모델이면서도 이런 오묘하게 섞인 관계. 오히려 이런 관계가 자연스러운 관계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계가 똑 부러지게 결정된다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거든요. 저는 메리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 시원하게 욕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만하라고 애원하는 걸 보고 놀랐지만, 그만큼 그녀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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