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과거'가 갖는 의미
어린 시절, 저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꿈들이 많았습니다. 직업 이런 거 뿐 아니라, 순간이동 같은 초능력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보던 동화와 애니메이션은 꿈의 계기가 됐고, 꿈의 증폭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힘은 꿈을 이루기엔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고, 세상은 '안 돼!'만을 가르칩니다. 처음엔 그러기 싫지만, 세상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순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이런 경험을 겪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지금 영화 속의 '앨리스'처럼 말이죠.
과거 원더랜드를 맘껏 모험한 '앨리스'는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의 유품인 배의 선장이 되어 세계 만방을 누비며 항해합니다. 그러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를 기다린 건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은 아버지의 배를 빼앗고, 그녀에게 불가능을 말하며, 원치 않는 삶을 강요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원더랜드'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절망을 해결하기도 전에, 원더랜드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모자 장수(이하 Hatter, 해터)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당장 해터를 찾아갑니다. 해터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가족이 살아 있다며 앨리스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해터의 가족이 죽는 걸 두 눈으로 본 앨리스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해터는 말합니다. "You're not my Alice!(넌 내가 아는 앨리스가 아니야!)"
위 상황은 앨리스가 원더랜드로 오기 전 그녀의 상황과 너무 비슷합니다. '현실'이 앨리스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듯이, 앨리스는 다시 해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현실에 당하고 저항하려 해도, 사실 그녀도 현실에 '동화'하여 자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런 앨리스에게 해터는 죽비로 내리치듯 말합니다. 해터는 현재의 앨리스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과거의 앨리스를 현재의 앨리스에게 비춥니다. 즉, 해터는 앨리스의 '거울'입니다.
다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앨리스는 과거로 돌아가 가족들을 살려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이 살고 있는 궁전으로 들어가 크로노스피어라는 일종의 타임머신을 훔칩니다. 크로노스피어를 타고 그녀는 원더랜드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판타지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하고 말이죠. 그런데 과거를 바꾸려 해도, 도무지 바뀌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결과는 계속 같았습니다.
영화는 '과거는 바꿀 수 없다.'를 몇 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과거의 한 면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과거를 바꾸는 건 흐릿한 '거울'과 같습니다. 흐릿한 '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죠.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과거로 배울 수 있는 이유는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앨리스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인 배를 뺏기지 않으려 했고, 크로노스피어를 훔쳐 과거를 바꾸려 했습니다. 결과는 현실의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자 과거는 미련이 아니라 거울로써 자신을 되찾는 힘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해터가 앨리스에게 '넌 내가 아는 앨리스구나!'하는 장면은 그 뜻이었습니다. 돌아온 후에 아버지의 배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배를 갖게 됐습니다. 그건 그녀에게 원더랜드(과거)에서 불가능을 서슴지 않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초능력을 배우자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현실에 지치거나 문제가 생길 때, 가끔 '거울'을 보는 겁니다. 거기서 자기 자신을 되찾거나, 잘못을 고치고 난 후 다시 걷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우리답게 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치 '앨리스'처럼 말이죠.
1. 이 영화는 앨리스가 해터라는 '거울'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 정도로 '앨리스-해터' 관계는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이끌며, 가장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 냅니다. 마지막 장면은... ㅠㅠ
2. '과거는 거울이다.'는 앨리스-해터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그만큼 주의깊게 본 관계는 하얀 여왕-빨간 여왕이었습니다. 과거가 완벽하진 않다는 증거기도 하죠. 아무튼 앤 해서웨이 존예....ㅠㅠ
3. '시간' 또한 가장 중요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웃긴 캐릭터였습니다.
4. 영화 화면 하나하나가 어찌나 동화처럼 아름다운지... 원더랜드 처음부터 넘나 아름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