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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Mar 20. 2021

한국형 장거리 트레일(3)

홍콩의 장거리 트레일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한국형 장거리 트레일'과 관련하여 끝으로 홍콩의 장거리 트레일에 대해서 알아보자. 


홍콩의 3대 장거리 트레일

2016년 제로그램 클래식을 란타우 트레일에서 진행하였는데 답사와 본 행사를 위해 그 해 두 번을 방문했었다. 2014년에는 맥리호스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나는 작은 면적에 비해 장거리 트레일이 3개나 있으며,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으며, 부럽기도 했다. 홍콩의 장거리 트레일과 야영지 운영을 특별히 소개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트레일 관리 정책이 백패킹, 즉 야영을 포함한 멀티데이 하이킹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란타우 트레일

2016년 전체 구간을 종주했던 란타우 트레일(Lantau Trail)은 1984년에 만들어진 70km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타우 섬의 란타우 피크를 중심으로 섬의 남쪽을 한바퀴 돌아서 원점 회귀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다. 란타우 피크는 해발 934m로 홍콩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섬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훌륭한 조망을 가지고 있다.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트레일의 야영장은 숲 속에 있으며, 섬의 남쪽 해변으로 연결된 구간은 주로 해안가에 야영장이 있다.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잘 표시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일부 등산로처럼 500m 간격으로 표시물이 있어서 비상시 자신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도를 이용하여 사전 이미지 트레이닝만 한다면 처음 방문하는 경우에도 길을 잃지 않고 백패킹 방식의 전체 트레일 종주가 가능하다.


맥리호스 트레일(MacLehose Trail)은 홍콩에서 가장 긴, 100km의 트레일이다. 트레일은 해변과 산을 포함하여 다양한 홍콩의 자연 경관을 통과하는데 특히 서부 지역은 계곡과 저수지, 해안가의 언덕을 끼고 있어서 훌륭한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다. 란타우 트레일처럼 중간중간 마을이 연결되어 있어서 홍콩의 풍물을 즐길 수 있으며, 백패킹 방식으로 전체 구간을 종주할 수 있도록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윌슨 트레일(Wilson Trail)은 1996년에 만들어진 트레일로 전체 길이는 78km이다. 홍콩 섬과 홍콩 본토를 남북으로 연결한 트레일인데 홍콩의 번화한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오지에서의 백패킹을 원한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공식 야영장 시설도 없기 때문에 중간에 도심의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홍콩 관광을 겸한 하이킹을 체험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홍콩 섬과 본토로 전체 트레일을 종주하려면 빅토리아 항구에서 MTR[1]을 이용하여 건너야 한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국립 트레일 시스템은 복잡하며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관련 조직들이 협력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트레일 통합 관리 시스템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트레일 규모가 작으며 국토의 면적이 넓지 않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홍콩의 사례를 눈여겨 볼만 하다. 특히 장거리 트레일에서 야영을 하면서 여러 날을 연속해서 걷는 백패킹 활동 수요를 반영하여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트레일에서는 홍콩의 장거리 트레일과 야영장 운영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특정 조건이라 함은 생태보존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야영장 후보지, 유지 관리 측면에서 접근성, 장거리 트레일과의 연계성, 그리고 야영장 간의 적절한 거리 등이 될 것이다.

홍콩 옹핑 야영장

홍콩의 야영지는 정부 조직인 농어업보존부(Agriculture, Fisheries and Conservation Department)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부처로 보면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환경부를 통합한 정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농어업보존부에서 관리하는 공식 야영장은 모두 41개이며, 선착순으로 사용할 수 있다. 홍콩이라는 작은 도시[2]에 정부 조직에서 관리하는 공식 야영장이 41개나 되며, 야영장은 대부분 장거리 트레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장거리 트레일의 운영과 야영 활동을 바라보는 정책 당국의 관점이 우리나라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홍콩의 경우 지역 공원(Country park) 개념으로 공원 지역을 관리하고 있으며, 공원 내에서의 야영은 ‘지역 공원 및 특별 구역 규정’ 법령을 따르고 있다. 법령 제 208A조 11항에는 “누구도 다음을 제외하고 지역 공원 또는 특별 구역 내에 텐트 또는 쉘터를 세우고 야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다음’으로 정의한 두가지 조건은 ‘당국의 서면 허가’와 ‘지정된 야영장’이다. 즉 지정된 야영장에서는 야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다 조망이 뛰어난 란타우 트레일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야영장은 대부분 장거리 트레일과 연계되어 있으며, 도로와 가까운 곳은 바베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시민들의 피크닉 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과 취수 시설이 있었지만 규모가 큰 야영장을 제외하면 가까운 곳의 개울이나 샘에서 식수를 구해야 한다. 다만 갈수기에는 개울이나 샘이 말라있을 수도 있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한가지 인상깊었던 일은 41개의 야영장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남산 야영장(Nam Shan Campsite)에서 단체로 백패킹을 온 어린 학생 일행을 만난 일이었다. 교사가 인솔하여 온 학생들은 스스로 텐트를 설치하고 식사를 준비하였는데 학생들의 독립성과 환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인식의 전환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등은 잘 설계된 트레일이다. 다만 당일 하이킹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주변의 숙소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하이커를 위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유사한 모델인 제주도 올레길 주변의 게스트하우스는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므로 올레길을 종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숙소는 아니다. 이곳에도 30km 정도 간격으로 백패킹 전용 야영장을 둔다면 해외의 하이커들에게도 자랑할만한 장거리 트레일이 될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의 경우에는 많은 지역이 국립공원 지정구역일텐데 이런 경우라면 트레일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야영장을 둔다면 제도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트레일의 야영장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 환경과 문화 유산을 확보하여 시민들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처럼 백패킹 동호인들이 자발적인 기금 조성에 동참한다면 트레일 주변의 땅을 구입한 후 백패킹 전용 야영장을 만들고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를 막는 것이다. 내셔널트러스트[3] 운동의 사례도 있거니와 노스페이스의 창업자인 더그 톰킨스이 기금을 조성하여 파타고니아 지역의 땅을 구입한 후 개발을 막기 위해 칠레 정부에 귀속시키는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모범적인 전례도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백패킹 동호인들의 환경 의식과 참여, 그리고 실무를 진행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는 장거리 트레일에 대한 관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장거리 트레일을 물리적인 거리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굳이 이름을 붙여서 트레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장거리 트레일에서 좀더 모험적인 야생의 경험을 원하고 있다. 백패킹 문화를 접목한 트레일 운영은 장거리 트레일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1] 홍콩 최대의 지하철 노선인 Mass Transit Railway을 줄여서 MTR이라고 부른다.

[2] 홍콩의 전체 면적은 1,106km²로서 제주도의 0.6배, 서울의 1.8배 정도이다.

[3] National Trust. 영국에서 시작한 자연보호와 사적 보존을 위한 민간단체.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한국에서는 강화 매화마른군락지와 임진강 두루미서식지 등을 시민유산으로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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