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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Mar 22. 2021

아웃도어의 기원(1)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유인원은 손으로 걷는 습관이 없어지고 점점 직립 자세를 취했다. 이것이 유인원에서 인류로 전환한 결정적인 단계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유인원의 인류로의 전환 과정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역할, 1876>[1]


모든 것은 두 다리로 걷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700만 년 전 우리는 침팬지와 갈라져 현생 인류의 길로 접어 들었고,

320만 년 전 친척 무리들이 머물던 숲을 빠져나와 완전히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12만 년 전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를 출발하여

미지의 세계를 향해 탐험을 시작하였다.


그 동안 수십 종의 친척 인류들이 지구 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 남았고 지금부터의 지구 역사는 홀로 써내려 가야 한다.


수백만 년의 이 장엄한 여정을 두 다리로 걸어온 위대한 탐험가의 DNA는

오늘날의 산악인들과 장거리 보행자들과 먼바다 항해자들의 몸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는 두 다리로 걷는 위대한 탐험가들의 후손이다.


두 다리로 걷는 짐승

기이하게 걷는 짐승이 있다. 지구상에는 200여 종 이상의 영장류가 있고 그 중 하나만이 두 다리로 걷는다.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기후 변화로 숲 지대가 줄어들고 점차 초원으로 변하고 있던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백만 년 동안 악전고투를 벌이며 겨우겨우 종의 번식을 이어왔다. 그동안 다양한 친척 무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풍부한 과일을 제공하던 숲은 줄어들었고, 개체수가 점점 늘어난 유인원들간의 먹이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나무 위에서만 살 수 없게 되었다. 


너클보행에서 완전한 직립보행으로의 인류 진화. 물론 인류는 그림처럼 단일종에서 출발하여 단계별로 진화하 것이 아니라 많은 분화를 거쳐 현생인류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진화인류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2]가 있기까지 최소 24종의 고대 인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석 발굴로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인류는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데니소반스(데니소바인) 그리고 수만 년 동안 현생 인류와 같은 영역에서 경쟁했던 것으로 알려진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 네안데르탈인[3]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오늘에 이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키 1m 내외의 아주 작은 체구 때문에 호빗이라고도 불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4]는 불과 1만 2천년 전까지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생존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가장 최근까지 현생 인류와 공존하다가 가장 마지막에 멸종한 인류로 기록되었다. 왜 그들은 다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는가?


현생 인류의 개체수는 약 80억명인데 비해 약 천만 년 전 우리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마운틴 고릴라[5], 그리고 7백만 년 전 갈라져 각자 진화해 온 침팬지 등의 영장류들은 장구한 종의 역사를 마치고 멸종할 위기에 처해있다. 현생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 지금, 여기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내가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항상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의 출발은 직립보행

오늘 저녁 한강변에서 러닝을 하거나 주말에 하이킹을 갈 계획이라면 여러분은 감사해야 할 역사적 이벤트가 하나 있다. 수백만 년 전 어느 날 인류 조상 중 하나가 두 다리로 우뚝 선 직립보행[6]이 바로 그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오늘날 현대인이 즐기는 대부분의 아웃도어 활동과 스포츠 레저 활동은 두 다리를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직립보행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킹이나 트레일 러닝처럼 직접적으로 걷거나 뛰는 액티비티는 말할 것도 없고, 손아귀 힘과 전완근만으로 오를 것 같은 클라이밍도 두 다리를 이용한 발란스가 아주 중요하다. 육상 종목이 아닌 주로 상체를 이용하는 스포츠 종목 역시 마찬가지이다. 골프나 야구가 상체만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튼튼한 하체가 받쳐주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 야구를 잘 하는 고릴라는 영화[7]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다. 두 다리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직립보행 덕분에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오늘날의 모든 아웃도어 활동과 스포츠 활동은 직립보행을 전제로 가능해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이미 멸종하여 백과사전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동물까지 모두 동원해봐도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종은 지구에서 인간 밖에 없다. 물론 타조와 같이 완전히 육상에 적응한 일부 종을 제외한다면 조류가 두 다리로 걷는 것은 먹이 활동을 할 때와  비행을 위해 도약할 때 뿐이다. 직립보행의 정의는 허리, 즉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골반뼈에 머리를 포함한 상체 무게를 지탱하며 두 다리만으로 걷는 것인데 이 정의에 부합되는 보행법은 인류의 걸음걸이 뿐이다. 직립보행은 현생 인류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셈이다.

새끼를 업고 너클보행을 하는 침팬지. 침팬지 DNA는 우리 인류와 불과 1%만 다르다.

왜 일어섰을까?

그렇다면 네 발로 걷다가 왜 일어섰을까?[8]  인류를 제외한 모든 영장류, 범위를 더 넓혀서 모든 포유류는 네 다리로 걷는데 왜 인류만 두 다리로 서고 걷게 되었을까? 현대 진화인류학의 연구 결과는 열대 우림 지역이었던 아프리카의 기후 변화로 숲이 초원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일부 유인원이 직립보행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생활 터전이었던 숲은 점점 줄어들고 나무 열매를 차지하려는 경쟁자들은 점점 늘어났다. 인류의 조상은 결국 나무 위를 내려와서 먹이를 구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오랫동안 나무 위에서 머물 수 있도록 진화한 신체 구조 때문에 처음 땅으로 내려왔을 때 다른 동물들에 비해 경쟁력은 형편없었다. 포식자들의 공격을 피해서 잽싸게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야 할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먹이를 찾아서 땅으로 내려왔으니 나무 위의 열매를 따려면 두 다리로 설 수 밖에 없었고, 나무와 나무 사이는 너무 멀어져서 그네처럼 팔로 이동할 수도 없었기에 걸어서 옮겨가야 했다. 너클보행(knuckle walking)[9]을 하며 뒤뚱거리는 다른 친척들에 비해 두 다리로만 걸었을 때 더 빠르게 먹이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두 다리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두 다리만으로 걸을 때 또 다른 장점은 풀숲에서 천적을 더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식자들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면 먼저 그들을 발견해야 했다. 아프리카 남서부 사막지대에 서식하는 미어캣은 두 다리로 섰을 때의 이러한 장점을 가장 잘 터득한 동물이다. 몸을 숨길 곳이 별로 없는 사막에서 마치 보초를 서듯이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포식자들을 경계하는 귀여운 모습은 동물의 왕국과 같은 동물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에너지 효율 1등급 

많은 진화인류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 직립보행의 에너지 효율성을 주목한다. 무엇보다 직립보행은 에너지 소모가 최적화된 걸음걸이이다. 한 연구[10]에 따르면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것은  침팬지가 네 다리로 걷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1/4 수준이었다. 직립보행의 에너지 효율성은 현생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지구의 모든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직립보행의 에너지 효율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인류는 직립보행의 결과 두가지를 잃었다. 그 중 하나는 산도가 좁아져서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난산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질적인 질환의 하나인 치질이 생겨난 것이다. 다행히 난산이나 치질은 종의 번식에서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치명적인 것은 초원의 맹수들이었다. 나무를 내려온 인류의 조상은 두 다리로 서거나 이제 막 걷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설펐고, 느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숲이 줄어들고 초원으로 변해가면서 다시는 나무로 올라갈 수 없었고, 두 다리로 서서 열매를 따거나, 천적에게 발견되기 전에 천적을 먼저 발견하고 도망쳐야 했다. 나무 아래 초원에는 지금보다 훨씬 큰 하이에라 조상들이 어슬렁거렸고, 검치호랑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최상위 포식자들이 득시글했다. 그럼에도 인류의 조상은 초원으로 변해가는 서식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나무를 내려와야 했고 두 다리로 서서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바나 지대로 변하면서 점점 몸을 숨길 곳도, 먹이감도 없어졌다. 인류의 조상들은 아프리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인류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나무 위에서 머물다 땅으로 내려와서 직립보행으로 진화해갈 때 네 다리로 너클보행을 하던 친척 무리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사라진 인류의 친척 무리들은 더 사납고 더 빨리 달렸으며, 한때 더 큰 무리를 지어 숲을 지배했었지만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무리들이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오늘날의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였다. 말하자면 강한 자가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두 다리로만 걷는 직립보행을 시작했을까?




[1] 원제: Friedrich Engels , The Part Played by Labour in the Transition from Ape to Man, 1876. 엥겔스의 150여 년 전 통찰이 놀랍다. 물론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윈의 학문적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2]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현존하는 유일한 인류로서 바로 우리들이다.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3]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은 멸종된 사람속의 한 종.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을 공통 조상으로 하고 있어 호모 사피엔스와 아주 가까운 사람속이다. 40만 년전에 출현했다가 3만 년 전에 멸종했다.


[4] Homo floresiensis. 2003년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의 리앙부아 동굴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현생 인류가 고립된 섬 환경에 적응하여 왜소해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한 사람속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5] 고릴라는 약 천만 년 전 인류의 공통조상에서 분화되었다. 그 중 마운틴 고릴라는 아프리카 비룽가 산맥과 우간다 루쿵기리 지역의 브윈디 천연 국립공원에만 서식하는데 현재 1,000여 마리만 남은 멸종 위기종이다.


[6]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직립보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지(四肢)를 가지는 동물이 뒷다리만을 사용하여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 일. 주로 인간이 이동하는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7]  영화 ‘미스터 고’에서는 고릴라가 프로 야구선수로 등장한다.


[8] 직립의 흔적을 가진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는 2002년 중앙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로서 약 700만년전 화석이다. 침팬지와 사람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며, 최초로 두 다리로 섰던 것으로 보인다. (Nature, 2002년 7월 11일 “A new hominid from the Upper Miocene of Chad, Central Africa”)


[9]주먹을 가볍게 쥔 상태로 팔로 땅을 지지하면서 걷는 방식. 고릴라와 침팬지가 흔히 너클보행으로 걷는다.


[10] 중앙일보 2008년 3월 26일자 기사 "두 발로 걷는 것은 에너지 혁명이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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