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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Mar 23. 2021

아웃도어의 기원(2)

루시, 뛸 준비를 하다.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갈림길에서의 위대한 첫 걸음

직립보행의 기원은 진화인류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현생 인류의 조상과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대략 700만 년 전에서 600만 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살던 곳에서 좀더 남쪽에 있는, 지금의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역에서 약 320만년전에 살았던 루시[1]는 약간은 구부정했지만 처음으로 완벽하게 직립보행을 시작하였다. 루시의 두 다리와 골반뼈는 완벽하게 직립보행할 수 있도록 진화하여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상체는 아직 유인원과 흡사하였다. 고고인류학의 기념비적인 루시의 화석 발견으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에 대해서 좀더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뇌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의 조상은 직립보행을 시작하였고, 그 후에야 현생 인류만이 가진 여러 특징들이 생겨났다. 직립보행이야말로 다른 유인원들과 분리되어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역사적인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아로 분류되는 루시의 화석을 통해 이러한 주장은 더 힘을 얻게 되었다. 두뇌가 커지기 전에 이미 두 다리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인류는 두뇌를 기준으로 찾아야 할 게 아니라, 두 발로 걸었다는 증거를 기준으로 해야한다.”[2]


루시 화석을 재구성한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모형.

갈림김에서 루시가 선택한 직립보행 전략은 오늘날 현생인류의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녀의 첫걸음은 수백만 년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실로 가장 위대한 걸음이었다.[3]  그리고 서서 걷는 무리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  수많은 친척 무리들이 여전히 엉거주춤하게 걷거나 네 다리로 기어 다닐 때 그녀는 과감하게 땅을 박차고 두 다리로 일어섰고, 자유로운 두 팔은 저 멀리 다른 세상을 가르킬 수 있었다. 최초에는 우연한 선택이었겠지만 두 다리로 서서 걷는 것의 장점을 알게 된 무리는 더 많은 시간을 서서 걷는 것으로 보냈다.  


뛸 준비를 한 인류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후에도 계속된 인류의 직립보행 진화 과정은 매우 정교했다. 장거리 트레일을 오랫동안 걸어보았다면 알 수 있지만 발가락 통증은 주로 엄지 발가락에서 생긴다. 그저 너무 크고 돌출되어 있어 통증을 쉽게 일으키는 불편함만 떠오르겠지만 사실 이 두툼하게 앞으로 돌출한 엄지 발가락의 진화 덕분에 우리는 두 다리만으로 균형을 잃지 않고 서있을 수 있으며, 뛸 수 있게 되었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의 골반뼈도 더욱 정교하게 진화하였다. 골반뼈는 고관절과 연결되어 두 다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며, 머리와 연결된 척추를 받쳐주어 체중을 지탱한다. 또한 내장과, 여성의 경우 자궁까지 보호하고 있다. 골반뼈야말로 가장 인류다운 뼈라고 할 수 있다. 


꼿꼿하게 서서 걷거나 뛰었을 때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척추는 S자 모양으로 진화하였고, 지표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발바닥은 아치 모양으로 변했다. 마침내 인류는 두 다리만으로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두 다리만으로 달릴 수 있다니! 150cm, 현대에 와서는 200cm까지 되는 키 큰 생명체가 수직으로 곧게 서서 두 다리만으로 걷거나 달리는 모습은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다른 생명체의 걸음걸이와 비교하면 기이하게 보일 정도이다.


원시 인류의 테라포밍[4] 

두 다리로 걷게 되며서 원시 인류에게는 공간 인식의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불규칙하게 메말라 건조한 흙으로 변하기 일쑤인 호수와 강의 지류, 작은 숲으로만 이루어진 그들의 좁은 생존 공간은 크게 늘어난 친척 무리와의 먹이 경쟁으로 점점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미래의 인류가 어느 날 생존을 위해 태양계를 떠나야 할 지 모르듯이 그들도 공간의 전부라고 믿었던 숲을 떠나 사바나로 나가거나 건너편 숲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오래, 멀리 걸을 수 있도록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은 미래의 인류가 마치 공간을 접어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SF 소설 속의 초광속 워프(Warp) 기술이나 다른 항성계로 연결되어 있는 웜홀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1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1차 대륙 진출[5]  이후 호모 사피엔스의 2차 대륙 진출은 오늘날의 현생 인류로 이어졌으니 그것은 성공적인 테라포밍이었던 셈이다.


숲 밖의 세상으로

영양이나 얼룩말처럼 네 다리로 뛴다면 심폐 기관이 있는 앞 다리 동작은 호흡과 동조하여야 하지만 두 다리만으로 걷는 인류는 그럴 필요가 없어 걸으면서도 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단거리에서는 인류가 가장 빠르지 않지만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달릴 수 있다. 힘껏 달린 후에도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열을 식히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 것도 인류 뿐이다. 


다른 한편 두 다리로 걷게 되면서 인류의 뇌는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다. 인류의 직립보행은 뇌의 발달보다 훨씬 오래 전에 선행되었다. 거리를 걷는 행인이나 지하철 안에 서있는 승객들 중 많은 이들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두 손으로는 모바일 컴퓨터로 서울에서 파리에 있는 친구와 실시간으로 통화를 하거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을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 최초로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루시나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직립보행과 대륙 진출이 가져온 이 놀라운 광경을 당연히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에 현생 인류가 직립보행으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숲 지대와 사바나 지대를 오가며 개코원숭이나 긴꼬리원숭이들과 치열한 먹이 경쟁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을 것이다. 생태계에서 좀더 우월한 포식자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해도 철봉 타기나 나무 기어오르기 따위의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면서 말이다. 물론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필자처럼 컴퓨터에 앉아서 원고를 쓰고 있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독자들은 이번 주말에 백패킹을 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와 어느 산을 오르고 숲을 걷고 있는 독자들이나 우리 모두는 루시에게 무한한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


“Viva Lucy!”



[1] Lucy. 지금은 멸종된 사람속의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의 대표적인 화석으로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지역에서 고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이끄는 탐사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과 사람속의 공통 조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약 320만년 전에 살았다. 무릎뼈 등을 연구한 결과 루시는 확실한 직립보행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루시 이전의 화석에서도 일부 두 다리로 일어선 흔적이 나타나지만 가장 분명한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는 루시를 최초의 직립보행 인류로 분류한다.

[2] [인류의 기원, 이상희, 윤신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제3장 최초의 인류는 누구?’에서 인용

[3] 루시가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로 걸은 것은 아니다. 진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루시 이전에 수백만 년 동안 인류 조상은 ‘걸음마’를 배웠을 것이다.

[4] Terraforming.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개조하는 일.

[5]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는 약 15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 시베리아,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다. 자바 원인이나 베이징 원인이 호모 에렉투스이며, 한반도에까지 진출하였다. 연천 전곡리의 유적이 바로 수십만 년 전 이들 호모 에렉투스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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