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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스크라 Feb 16. 2021

PCT Days에서 만난 장거리 하이커

장거리 하이커들과의 유대감

한국의 PCT 하이커

신들의 다리. 다리의 왼쪽은 오레곤, 오른쪽은 워싱턴주이다.

나는 2011년 JMT를 다녀온 후 장거리 하이커들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길에서 만난 장거리 하이커들은 모두 저마다 구구절절 사연들이 있었다. 트레일을 걸을 때의 에피소드보다 그들이 왜 길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는 더 흥미로웠다. 더러는 PCT를 다녀오면 ‘핵인싸’가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핵인싸가 되기 위해 길을 걸었던, 구도자의 심정으로 길을 걸었던 6개월을 길 위에서 보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JMT를 다녀온 후 2년 뒤, 그러니까 2013년에는 PCT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직장에 메인 몸이기도 하고, 가족을 떠나 반년을 객지에서 보내는 일은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 그 후 나는 PCT 종주를 떠나는 이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대신 만족해야 했다.


2015년 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 명이 PCT 종주를 위해 길을 떠났다.[1] ‘한국 최초’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항상 버킷리스트로 간직하고 있던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장거리 트레일이야말로 멀리 걷는 인류 부사라의 후손으로서 정체성을 발견하는 가장 멋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길 위에서 반년을 보내는 동안 각자 길을 떠나기 전까지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고, 그동안 쌓았던 아웃도어 경험의 무게를 실측하게 될 것이며, 개인의 경험은 확장되어 캐주얼 백패킹이 주류였던 한국의 백패킹 문화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길 기대했다. 그들을 배웅할 때 나는 마치 내가 길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하이커들을 위한 축제, PCT Days

PCT Days(Pacific Crest Trail Days)는 미국 오레곤의 캐스케이드 록스(Cascade Locks) 마린 파크에서 해마다 8월에 열리는 하이킹, 캠핑, 백피킹 등의 아웃도어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캐스케이드 록스 마린 파크는 PCT 오레곤 구간의 마지막 지점에 있으며, 영화 ‘와일드’에 나오는 신들의 다리(Bridge of the Gods)가 있는 곳이다. PCT 하이커들은 신들의 다리를 통해 PCT의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주로 넘어간다. 페스티벌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PCT 하이커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으며, 그래서 많은 PCT 하이커들이 이 축제에 참가한다. PCT 하이커들은 무료로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미국 서부 장거리 하이킹 협회(ALDHA-West, American Long Distance Hiking Association-West) 등의 하이킹 관련 단체에서는 PCT 하이커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2015년 8월 나는 처음으로 PCT Days를 참관하였다. PCT Days에서는 주로 경량 하이킹 장비 브랜드들이 장비를 전시하는 장비 엑스포(Gear Expo)도 함께 열리는데 처음 방문한 2015년에는 미처 스폰서 계약을 하지 못해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2016년부터는 장거리 하이커들에게 제로그램의 장비를 알리고 이후 미국 시장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주최측과 정식 스폰서쉽 계약을 맺고 해마다 부스를 설치하였다.


PCT Days 행사 참가와 관련하여 내가 아주 특별하게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으니. 바로 LA에 거주하는 이주영 선배이다. LA에서 음향 영상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2015년부터 해마다 PCT Days에서 큰 도움을 주었으며, 내가 이런저런 일로 미국에 갈 때마다 많은 신세를 지곤 했다. 이주영 선배는 한국인 PCT 하이커들에게도 트레일 엔젤로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한 명의 감사해야 할 사람은 ‘탱크’이다. 탱크는 2015년 그가 PCT 구간 하이킹을 할 때의 트레일 네임인데, 중동전에 탱크병으로 참전했던 경력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시애틀 인근에 거주하는 그 역시 해마다 PCT Days에서 큰 도움을 주었으며, 한국인 PCT 하이커들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그의 부부를 한국으로 초청하기도 하였다.


2015년도 PCT 하이커들. 왼쪽부터 양희종, 김희남, 김광수. 짧은 시간을 함께 하고 그들은 신들의 다리를 넘어 워싱턴주로 떠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5년 PCT Days를 방문한 것은 옵저버 브랜드로 참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한국인 최초로 PCT 종주를 하고 있는 하이커들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배웅했던 4월이 엊그제 같았는데 그들은 벌써 3,000km 이상을 걸어왔고,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다들 건강한 모습이었다. 


PCT Days에서 만난 장거리 하이커들


2016년의 한국인 PCT 하이커들. 뒷줄 미국인은 PCTA(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의 트레일 정보 매니저인 잭(Jack Haskel)이다.

2015년 불과 4명이던 한국인 PCT 하이커가 2016년에는 1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20대, 또는 서른을 갓 넘은 젊은이들이었다. 가장 힘든 사막 구간과 하이 시에라를 무사히 지나왔고 이제부터는 비교적 평이한 오레곤주와 마지막 워싱턴주 구간을 지나면 이제 그들은 캐나다 국경의 마뉴먼트 78 (Monument 78)[2]에서 기념 사진을 찍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나의 서른 살 즈음을 보았다. 


2016년의 PCT Days에서는 정식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한국인 PCT 하이커들을 위한 삼겹살과 순대국 파티도 준비했다. 이주영 선배는 LA에서 준비한 음식을 싣고 무려 1,600km가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하여 PCT Days에 참가하였다. 길 위에서 4개월을 보낸 하이커들은 미친듯이 먹어 치웠다. 먹는 양은 체구와 상관없었다. 종주 하이커들은 종종 AYCE(All You Can Eat)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정말 돌아서면 배고픈 듯이 먹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그들 모두 남은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PCT 종주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폭설을 헤치고 캐나다 국경으로

2016년 한국인 PCT 하이커들 중 최한수, 황민아, 이수현 일행이 하츠 패스(Harts pass)를 지나 마뉴먼트 78까지 마지막 구간을 지났던 일은 약간 드라마틱했다. 일행은 미국인 하이커 2명을 포함하여 다섯명이었다. 하츠 패스는 비포장길이었지만 차가 올라갈 수 있는 PCT의 마지막 지점이었고, 하츠 패스에서 캐나다 국경까지는 45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보통은 1박2일이면 닿는 거리였다. 10월 17일 탱크는 휴식을 마친 이들을 하츠 패스까지 태워다 주었고, 이들은 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 2015년 PCT 하이커들 중 거의 마지막으로 캐나다 국경으로 향하였다. 이들이 출발할 때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츠 패스는 해발 1,859m로 우리나라의 지리산 천왕봉 높이와 비슷한 고도라서 한 여름에도 밤이 되면 추운 곳이었다.

최한수, 황민아, 이수현 일행이 설사면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이들은 하츠 패스를 출발한지 3일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안부가 궁금했지만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하츠 패스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통신이 가능한 구간은 없었기에 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6일째가 되던 10월 22일 탱크로부터 다급한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아무리 늦어도 21일에는 도착했어야 하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평균 30km를 걷는 그들이 45km를 남겨두고 6일째 소식이 없다는 것은 뭔가 불길한 징조였다. 탱크는 지역 보안관에게 연락을 해서 사건을 접수했고, 지역 보안관은 이틀째 큰눈이 내려 구조 헬기를 띄울 수 없으며 다음날 수색하겠다고 했다.


캐나다 국경 마뉴먼트 78에 무사히 도착한 일행들

그러던 중 22일 오후가 되어서야 일행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두 무사히 캐나다 국경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통신 사정으로 긴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폭설로 인해 트레일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고, 눈을 헤치면서 걷느라 보통 때의 절반도 걷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내온 마뉴먼트 78 기념 사진에서 비닐 봉투로 발을 꽁꽁 싸멘 모습은 그들의 험난했던 마지막 구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탱크도 Wow, great!라고 기뻐했다.


더 먼 길 위에서

2018년 PCT Days에 모인 한국인 하이커들. 맨 왼쪽이 이주영 선배, 오른쪽 세번째가 한국인 하이커들의 트레일 엔젤인 탱크.

2018년에는 한국인 PCT 하이커가 더 늘어나서 PCT Days에서 모인 숫자만 해도 20명이 넘었다. 이주영 선배는 이 해에도 역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그들을 응원해주었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여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PCT를 종주하였다. 종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지금 건설 회사에 입사했거나, 다시 학업에 복귀하기도 하고, 꽤 유명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되기도 했으며, 교직으로 돌아간 이도 있고, 영화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도 있다. 장거리 트레일이 ‘핵인싸’가 되는 길이 아님을 그들은 아마도 다녀온 후에야 알았을 것이다. 길 위에서 하이커 트래시[3] 로 지냈던 반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길고 긴 길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다. 어찌되었건 트레일에서의 반년은 그들에게 가장 빛나는 시기였을 것이다. 비록 지금 그 빛이 뚜렷하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1] 김광수, 양희종, 김희남이 그들이다. 써모미터(Thermometer)라는 트레일 네임을 가진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지만 나는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이들은 2015년 9월과 10월 사이 모두 무사히 PCT 종주를 마쳤다.

[2]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기념비로서 PCT의 북쪽 종착점이기도 하다. 

[3] Hiker Trash. 일반적인 관습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는 자유분방한 하이커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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