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지 못한 언어는 장기를 울린다.

정신과 사용법(5) - 신체화

by 채영


“검사에는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 목이 잠기고,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속이 뒤틀린다. 심장이 이유 없이 빨라지고, 온몸이 쑤신다. 아픈 곳은 분명한데 설명은 불가능한 상태, 이럴 때 나는 생각한다. '말이 되지 못한 언어가 몸을 통해 말하고 있구나.'


우리는 흔히 감정을 참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울음을 삼키고, 분노를 누르고, 불안을 무시하면 그 감정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감정은 그렇게 증발하지 않는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은 표현의 통로를 바꾼다. 입으로 나오지 못한 말은 위장을 멈추고, 가슴을 누르고, 근육과 장기를 조인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생기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가 쌓인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체화다.


몸은 매우 충직해서 우리가 외면한 감정까지 끝까지 책임진다. “그 정도 일로 힘들어하면 안 되지.” “이건 내가 예민한 거야.” “말해봤자 달라질 것도 없어.” 이렇게 마음에서 밀려난 말들은 몸에게 맡겨진다. 그럴 때 몸은 속 쓰림으로, 두통으로, 어지럼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으로 대신 말해준다. 몸은 늘 정직하지만 우리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신체 반응을 알아차리고, 언제 그 반응이 시작됐는지, 누구와 있을 때였는지, 어떤 말이나 장면 직후였는지 맥락을 복원한다. 그러면 몸의 반응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관계 속 사건이 된다. 그리서 나서 감정 단어가 붙인다. 이건 불안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슬픔이었는지, 혹은 오래 눌러둔 좌절이었는지.


몸이 먼저 무너졌다는 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오래, 잘, 참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혹시 요즘 이유 없는 통증이 있다면 몸을 탓하기 전에 나는 요즘 어떤 말을 삼키고 있었는지 자문해보자. 그 질문 하나가 장기를 울리던 언어를 다시 마음으로 데려오는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