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ing is taming

정신과 사용법(4)

by 채영


상담치료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작업 중 하나는 언어화(verbalization)이다. 정신과 진료실은 감정을 없애는 곳이 아니라,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경험을 말로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심리치료 장면에서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있다. Naming is taming. 이름 붙이는 것이 곧 길들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다. 감정을 분석하라는 말도 아니다. 그보다는, 감정이 이름을 얻는 순간 작동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름 없는 감정은 우리를 지배한다. 상담실에서 가장 흔히 듣는 말은 이런 것들이다. “그냥 힘들어요.” “답답한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말로 설명이 잘 안 돼요.” 이 말들은 저항이 아니다. 아직 감정이 언어의 형태를 갖지 못했다는 신호다. 이미 충분히 느끼지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상태의 감정은 생각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로 남아 몸과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이유 없는 불안, 반복되는 분노,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 늘 비슷한 방식으로 끝나는 관계들. 이것들은 종종 이름을 얻지 못한 감정의 흔적이다.


이름이 생기면 감정의 위치가 바뀐다. 감정은 이름을 얻는 순간 ‘나를 덮치는 것’에서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이동한다. 막연한 불안은 “불안”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온몸을 점령하던 안개에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한다. 분노는 “화”가 아니라 “무시당했다는 느낌”, “기대가 깨졌다는 실망”, “버려질까 봐 생긴 두려움”이라는 더 정확한 언어를 얻으며 폭발이 아닌 이해의 방향으로 이동한다.


상담실에서 종종 이런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때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무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의 불안은 지금 일이 아니라, 예전 장면이 다시 건드려진 거네요.” 이 문장이 만들어지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무작위로 침입하지 않는다. 시간 속에 배치되고, 맥락을 갖고, 선택 가능한 대상이 된다.


말로 풀리지 않은 감정은 반복된다. 행동으로만 풀린 감정은 다시 돌아온다. 술, 충동, 회피, 과도한 일, 관계 갈등. 잠시 가벼워질 수는 있지만 같은 감정은 다른 형태로 재현된다. 반면, 언어화된 감정은 다르다. 말이 된 감정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이야기로 정리되며, 이야기는 더 이상 현재를 무차별적으로 침범하지 않는다.


정신과는 감정을 없애는 곳이 아니다. 정신과는 종종 증상을 줄이거나 감정을 둔하게 만드는 곳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정신과에서의 상담은 감정을 다루는 언어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이 생기면 선택지가 생긴다. 선택지가 생기면 삶은 덜 자동적으로 흘러간다. 말이 되지 못해 몸에 남아 있던 경험이 처음으로 문장이 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기 감정의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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