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노력, 언젠간 알아주겠지 생각하나요?
오랜 관계를 정리한 사람이 찾아왔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이 먼저 이별을 꺼냈다고 했다. 연인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얼마나 오래 고민했을지 짐작이 되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관계의 대부분에서 자신은 많은 배려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하고 절약을 중시하는 자신,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상대. 상대는 오랜 시간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산다면 스스로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그런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고 이별을 말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조율되지 않았을까.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서로 조정하며 중간에서 만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개 배려심이 많은 쪽이 더 많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배려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한쪽은 소진된다. 소진된 쪽은 무의식적으로 돌려받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된다. 반면, 배려를 받아온 쪽은 “그렇게 불편했으면 말하지 그랬어”라고 말하게 된다. 관계 안에서 내가 나를 소진시키며 상대를 지나치게 만족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미덕 이전에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나의 역동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의 이전 관계가 떠올랐다. 다른 성향을 맞추느라 ‘참는 것’이 되어버렸던 연애. 그 사람도 저렇게 슬펐을까. 내 배려를 이해했을까. 떠난 나를 나쁘게 기억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쉽게 놓지 못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했던 노력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로서 종종 보게 된다.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알아봐 주지 않은 노력에 대한 미련일 때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