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가까운 사람에게만 화를 낼까

기대는 가까울 때 더 커진다

by 채영


낯선 사람에게는 괜찮은데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꾸 화가 난다. 친구, 연인, 가족. 오히려 가장 편해야 하는 관계에서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많이 분노한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원래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나?”


사실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많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기대한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넘긴다. 서비스가 조금 불친절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는 애초에 should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정도는 알아줘야지.”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반응해줘야지.” “내 마음은 말 안 해도 느껴야지.”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문장을 상대에게 붙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문장들이 거의 말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느껴지길 바란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해가 아니라 ‘어긋남’이 반복된다.


상대는 모른다. 내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그저 “왜 이렇게 화를 내지?”라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걸 왜 몰라?”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관계는 틀어진다. 한 사람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비난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분노의 강도가 커진다. 사건이 커서가 아니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은 기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대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기대해.” 이 문장은 관계를 무겁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현실로 만드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일수록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많이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기대가 상처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질문해본다.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건 상대가 나를 몰라서일까, 아니면 내가 나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 질문은 관계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분노는 그 사람이 잘못해서라기보다, 그 사람에게 기대했던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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