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상담해주는 시대, 정신과 진료실은 왜 필요할까

정신과 사용법(7)

by 채영


"선생님, 이미 AI랑 다 얘기해봤어요."

요즘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환자들은 이미 자신의 감정을 한 번 정리하고 온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꽤 정확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예전보다 메타인지가 높아진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이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정신과 진료실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1. 부끄럽다면, AI에게 먼저 말해보세요

사람들에게 내 결점을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부끄러움(shame)이 큰 사람일수록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이걸 말하면 어떻게 보일까."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 사람은 입을 닫는다. 그럴 때 AI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판단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일정한 톤으로 반응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습니다. AI에게 먼저 말해보세요." 다만,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AI에서 한 번 연습한 이야기를 사람 앞에서 꺼내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경험이 시작된다. 그 다음 연습 공간이 정신과 진료실이다.



2. 확인강박, AI는 안심을 주지만 치료는 아닙니다

확인강박이 있는 환자들은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AI는 이런 질문에 잘 응답해준다.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안도가 생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강박의 치료는 안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안심을 '구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다. 행동치료에서는 이를 ERP(노출 및 반응방지)라고 한다.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 노출되되,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확인 행동을 하지 않는 연습이다. AI에게 반복해서 물어보는 행동은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반복될수록 강박의 고리를 유지시킬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AI에게 물어보기" → "불안을 견디기" 이 전환은 혼자 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료실이 필요하다.



3. ADHD, 기능이 좋아지면 감정이 올라옵니다

ADHD 환자들은 AI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할 일을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을 시작하는 데 AI는 매우 유용하다. 그 과정에서 전전두엽 기능이 조금씩 내재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다. 기능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올라온다. "왜 나는 이제서야 이게 되지?" "그동안 나는 뭐 하고 있었지?" 그 밑에는 종종 부끄러움, 후회, 자기비난 같은 감정이 깔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다시 멈춘다. 기능은 좋아졌지만, 감정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은 혼자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야기를 진료실에서 같이 나눠보자.



AI는 훌륭한 도구다. 말을 꺼내게 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행동을 시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다음은 조금 다르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것, 불안을 버티는 것, 관계 속에서 감정을 경험하는 것. 이건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AI가 상담해주는 시대다.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AI를 쓰는 것은 괜찮다.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지는 말자. AI에게 말해봤다면, 이제는 사람에게도 말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