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포비아와 문해력

단상

by 게코집사

어느 순간부터 세대갈등이 화두가 됨에 따라 Z세대를 묘사하는 부정적 특징 몇 가지가 부각된 바가 있다. 그중 두 가지가 '문해력 저하' 논란과 '콜 포비아' 이슈이다. 문해력 저하 논란은 단순하다. 스마트폰 기반의 영상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 책, 신문과 같은 긴 호흡의 텍스트 매체들이 그 힘을 잃고 있으며, 특히 유아/청소년기 시기에서 긴 호흡의 텍스트 독해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콜 포비아'에 대한 내용은 내게도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에 익숙한 현세대들은 전화통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과 같은 환경에서, 특정 아젠다에 대한 당사자간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하는 대화에서 즉각적인 해석과 피드백이 어려워 전화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부 발생한다고 한다. 신입사원 유입이 없는 조직에서 일하는 내게는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리 드문 현상 같지도 않다. '모든 게 서툰 신입사원들이 당연히 겪는 일 아닌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하고 쉽게 넘어가기에는 뭔가 마뜩잖다. 이 진단대로라면 현세대는 소통 전반에 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 된다. 말도 글도 서툴어 소통으로부터 극단적으로 소외된 세대로 그들을 규정짓는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상반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글을 기피하고, 후자는 말을 기피한다. 글도 피하고 말도 싫다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


좀 보수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 의견을 피력해 보자면 나 또한 이 두 가지 사안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세대가 정말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냐 와는 별개로(나도 MZ세대니까). 문제 발생의 원인은 매우 쉽고 직관적이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와 SNS를 기반으로 한 소통 때문일 것이다. 대화에는 언어적 표현 못지않게 표정, 뉘앙스, 인토네이션 등 비언어적 맥락이 중요하다. 이를 모두 소거한 텍스트 기반의 소통에 익숙해지는 순간 대면소통, 전화 등의 대면 상황에 낯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모티콘이 없는 전화통화로는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의도와 감정을 헤아리기 어려우며, 상대방이 던지는 질문을 잠시 '안읽씹' 하기도 어렵다. 3초 이상의 무응답은 '여보세요?'라는 상대의 답변 재촉을 야기한다. 20시간 이상의 시리즈물을 10분 안에 요약해 주는 유튜브 콘텐츠와 숏폼 콘텐츠의 유행이 우리에게서 인내심을 빼앗아가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말이 없었으면 인류는 최소한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글이 없었으면 농업 혁명이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말과 글은 인류를 지적 생명체로 진화시킨 핵심 수단이다. 짧고 단순한 영상 매체는 인류를 즉각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유아기적 성향으로 되돌린다.

대부분은 아둔한 콘텐츠 소비자가 될지언정 누군가는 콘텐츠 공급자가 되어야 하는데, 평균적인 말과 글 창작 수준의 저하는 이를 방해한다. 콘텐츠 공급자라 함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PD 등 전문화된 영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어른이 되면 직장에 출근하거나, 자기 사업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 직장상사든 투자자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설득은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말로 때우거나 보고서를 쓰거나. 보고서와 설득은 결국 얼마나 잘 요약하느냐의 문제다. 복잡한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여 내 의지를 관철시키는 행위다. 단순한 결과물의 창작행위일지라도, 깊이 있는 이해와 사고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의미 있는 창작물을 만들기 어렵다. 이 능력이 없이 밥벌이를 하려면 설계도를 잘 그리거나 벽돌을 잘 나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자로서의 문해력 결핍도 큰 문제이다. 비평이 없는 콘텐츠 소비는 자극에 휘둘리는 무지성 대중을 만들어낸다. 'Italian Brainrot'이 위험한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내적 세계를 형성하는 논리적 사고는 현상을 관찰 -> 맥락과 인과를 해석 -> 세상을 이해하는 '나'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숏폼 콘텐츠나 브레인랏 밈은 이 연결고리를 파괴한다. 현상을 관찰한 후 웃고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맥락과 인과를 해석하는 시도는 포기된다. 다 자란 어른이야 그동안 형성된 견고한 내적 세계가 있지만, 이제 막 자아를 형성해 가는 유아/청소년기에게는 이게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 전체 흐름이라 거스르긴 어려워 보인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가끔이라도 이렇게 뭐라도 끄적이며 글을 적는 행위를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적어도 나와 내 자식들이라도 긴 호흡으로 참을성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노력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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