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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Jul 16. 2019

손정의가 인공지능을 삼창한 이유

이노베이터 - 손정의 1화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입니다.” 지난 7월 4일이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했다. 하필, 한일 경제전쟁이 발발한 당일이었다. 7월 4일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부품인 리지스트와 에칭 가스와 디스플레이 핵심 부품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대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문대통령과 손회장의 면담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자리였다.


정작 한국은 과거에 발목잡혀서 현재에 매몰될 판이었다. 문대통령과 손회장의 면담을 바라보는 언론보도만 봐도 그랬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 수출 규제에 관해 일본의 유명 기업인이 청와대에서 어떤 말을 했을지에만 초점에 맞춰졌다. 그 순간 한국은 온통 첫째도 한일관계, 둘째도 한일관계, 셋째도 한일관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첫째도 초고속 인터넷, 둘째도 초고속 인터넷, 셋째도 초고속 인터넷에 집중해야 합니다.” 손정의 회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했던 조언이었다. “첫째도 온라인 게임이고 둘째도 온라인 게임이고 셋째도 온라인 게임에 집중해야 합니다.” 손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했던 조언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IT강국이 됐다. 온라인 게임을 적극 육성해서 넥슨과 NC소프트와 넷마블 같은 글로벌 게임 기업을 탄생시켰다.


손정의와 한국 대통령의 면담은 늘 미래 산업 발전의 전환점이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의도적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도 손정의 회장과의 면담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양측이 사전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만남이었다.


스티브 잡스 이래 최강의 비저너리

손정의 회장의 본적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전투를 벌이면서 큰 바위를 세워두고 떠났다고 해서 입석동인 곳이다. 손정의의 한국 뿌리가 꽤 깊다는 말이다. 손정의 본인은 1957년 일본 사가현 토스시에서 재일교포4세로 태어났다. 1990년에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에서 한국 국적으로 사업하기가 쉽지가 않아서였다. 귀화는 말처럼 쉽진 않았다.


일본엔 손씨가 없다는 게 거부 이유였다. 일본식으로 성씨까지 개명하라는 차별적 압박이었다. 일본인인 아내의 성을 손씨로 바꿨다. 그렇게 손씨를 만들어내서 손씨성으로 귀화했다. 손정의는 그렇게 해서라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한국성을 지키고 싶었다. 이때부터 손정의는 공식적으로 손마사요시라는 일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손마사요시의 소프트뱅크는 일본에선 3대 이동통신사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인 2018년 12월 19일에 도쿄증시에 상장됐다.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72조 원에 달했다. 소프트뱅크도 엄청나지만 소프트뱅크그룹은 더 엄청나다. 소프트뱅크그룹은 110조원 규모의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통해 글로벌 기술 기업들에 전방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과 동남아의 그랩과 인도의 올라와 브라질의 99가 모두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았다. 대륙별 차량 공유 서비스의 선두 업체들이 알고 보면 모두가 손정의로 연결된 단 말이다.


중국의 알리바바와 한국의 쿠팡 같은 온라인상거래업체도 소프트뱅크의 투자대상이었다. 소프트뱅크는 반도체의 ARM과 로봇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소유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통찰력은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티브 잡스 이래 지구 최강의 비저너리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손정의 회장은 한국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국인은 아니면서 한국한테는 복잡미묘한 상대인 일본에서 한국인이 인정할 만큼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를 제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해 훈수를 둬도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동시에 한국인들이 듣기에 한국에 관해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믿어줄 만한 배경까지 갖추고 있다.


들을 가치가 있고 말할 자격이 돼도 상대방이 충고에 귀기울이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그저 꼰대의 잔소리일 뿐이다. 손마사요시는 손정의로서 이것까지 갖추고 있단 말이다. 무엇보다 손정의 회장의 예측은 매번 적중했다. 지난 7월 4일 청와대에서 비저너리 손정의 회장이 한국한테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손정의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입니다. 한국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늦게 출발했을 수도 있지만 강점도 많습니다. 한국은 이미 만들어진 개념을 사업화시키는 데에는 단연 앞서 갑니다. 지난 20년 간 1인당 GDP에서 일본이 1.2배, 미국이 1.8배 성장하는 동안 한국은 3.7배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초고속 인터넷에 대한 과감하고 시의적절한 투자 덕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은 한발 한발 따라잡는 전략보다는 한번에 선두를 따라잡는 과감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세계 1등 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이 인공지능 1등 국가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입니다.”


작은 반도체 설계회사에 주목하다

2015년 가을이었다. 런던에 있는 ARM, 암의 기술 회의장에서 작은 반도체 업계 뉴스 하나가 발표됐다. 암이 진일보한 보안기술을 자신들이 설계하는 모든 반도체 프로세서에 일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IT기업들이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는 기업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소비자는 귀가 따갑게 듣게 되는 일상적인 마케팅 구호나 다름없다. 손정의한텐 다르게 들렸다. 이토록 작은 뉴스가 거대한 변화의 신호로 들렸다. 암은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회사다.


암은 반도체를 한 개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한테 회로 설계도를 팔아서 돈을 번다. 시중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10대 중 9대가 암이 설계한 반도체를 사용한다. 암은 앞으로 자신들이 설계한 반도체의 적용 범위가 스마트폰을 넘어 모든 사물까지 확대될 거라고 봤다. 사물인터넷의 시대 말이다. 모든 전자기기가 인터넷과 연결되고 서로 연결되고 사람과 연결되는 초연결의 시대가 도래할 거란 얘기다.


연결은 보안과 반비례한다. 암은 사물인터넷 시대에도 스마트폰 시대처럼 반도체 설계 시장을 선도하려면 반도체의 보안성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걸 꿰뚫어 봤다. 손정의는 미래 기술을 지배하려면 암을 가져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손정의는 작은 뉴스로 암이 사물인터넷 시대에 본격 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손회장은 스마트폰 시대가 끝나고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는 패러다임 시프트야말로 암을 인수할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 큰 그림의 변화와 작은 소식의 의미를 모두 볼 줄 아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일본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2016년 7월 4일이었다. 그러니까 손정의 회장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 인공지능 강국을 삼창하기 정확하게 3년 전이었다. 손회장은 터키 마르마리스에서 암의 회장인 스튜어트 챔버스와 CEO 사이먼 시거스와 담판을 벌였다. 암측은 소프트뱅크가 인수 제안을 해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소프트뱅크의 주력 사업은 이동통신업이다. 암이 설계한 반도체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회사들과는 거래할 일이 있었다. 암과 직접 거래할 일은 없었다. 손정의는 챔버스와 시거스한테 100% 매수를 제안했다. 상장기업인 암을 사실상 독점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암의 경영진한텐 바로 100% 매수 제안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암은 반도체를 설계하는 상장 기업이었다. 미래 기술에 쓰일 반도체를 미리 설계해야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3년 뒤의 미래 기술이 창출할 5년 뒤의 미래 시장을 기다려줄 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R&D 비용이 조금만 늘어나도 주가가 널을 뛰곤 했다. 자본 시장은 도무지 참을성이 없었다. 현재는 이해할 수 없는 미래의 반도체를 설계해야 하는 기업한테 지금에 집착하는 주식 시장은 궁합이 잘 안 맞는 짝과 같았다. 손정의는 암이 페이션트 캐피털을 목말라한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암의 경영진한테 소프트뱅크가 인내 자본이 돼 줄 것이라고 설득했다. 심지어 향후 5년 동안 연구개발인력을 3배 이상 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변덕스러운 자본시장 대신 소프트뱅크가 암의 울타리가 돼주겠단 얘기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신나는 일입니다.” 2017년 7월 18일이었다. 암 인수를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손정의 회장이 했던 말이다. 인수금액은 234억 파운드였다. 엔화로 3조 3000억 엔이었다. 한화로 36조 원이었다. 일본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소프트뱅크 역사상 가장 큰 인수금액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암의 주가에 비해 43%나 프리미엄이 붙은 고가였다. 그런데도 손정의는 아랑곳이 없었다.


“암의 기술은 연간 148억 개의 반도체에서 쓰입니다. 애플이나 삼성전자도 암이 없이는 단말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 비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10년 후에는 이 가격이면 싸게 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당시엔 아무도 도대체 무엇이 싸다는 얘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장가의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지구 반대편의 IP회사를 사들여놓고 손정의 혼자만 신이 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손정의의 암 인수는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소프트뱅크의 암 인수가 일본 입장에선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이었다면 영국 입장에선 역사상 가장 빠른 인수합병이었다. 손정의는 당시 브렉시트로 소심증에 걸려있던 영국 정부의 각종 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요구를 들어줬다. 만의 하나 인수를 무산시키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사소한 변수들을 광폭 행보로 통 크게 차단해버렸다. 손정의는 신이 났지만 역시나 시장은 부정적이었다.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인수 발표 이튿날인 7월 19일 하루 동안에만 10%가 넘게 떨어졌다. 단기적으론 합리적으로 보였다. 천문학적인 인수금액에 대한 조발비용을 우려한 탓이었다. 소프트뱅크는 3조 엔이 넘는 인수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1조 엔이 넘는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가뜩이나 부채가 많은 소프트뱅크를 승자의 저주에 빠뜨리기엔 충분한 함정이었다. 심지어 손정의 인생 최고의 투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알리바바의 지분조차 팔아야만 했다. 암은 손정의가 알리바바를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미래였다.


20년 후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당시엔 시장이 미쳐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암 인수는 바로 인공지능 시대를 노린 포석이었다. 2016년 당시엔 인공지능이 명확한 화두라기보단 4차 산업혁명 같은 개론적인 기술변화담론들이 더 두드러지고 있던 때였다. 인수 한 달 뒤였다. 암 경영진과 소프트뱅크 경영진이 캘리포니아 산 카를로스에서 만났다. 암 경영진은 으레 그렇듯 분기 영업 실적과 전망을 새로운 대주주한테 보고하기 시작했다. 정작 암 인수에 36조 원을 쏟아부은 손회장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다음 분기에 얼마를 벌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대신 분기 실적 발표가 끝나자마자 암을 중심으로 한 300년 청사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미 손정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싱귤래리티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특이점이란 AI의 미래 예측력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거의 모든 산업을 재정의하는 단계다. 인공지능에 대한 흔한 오해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성이다. SF영화에나 나오는 이런 제너럴 AI는 현재 연구 대상도 투자 대상도 아니다. 인공지능의 핵심역량은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에 기반한 포캐스팅이다. 과거와 현재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산업 전반에 걸쳐 어마무시한 변화가 일어난다.


시장은 결국 공급과 수요가 교차하는 곳에서 균형을 이룬다. 난제는 공급과 수요가 수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공급 과잉이면 재고가 쌓이고 수요 과잉이면 가격이야 오르지만 정작 공급이 받쳐주질 못한다. 시장이 균형을 찾아내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급과 수요 모두 낭비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부정확한 예측 탓이다. 이제까진 인간적 한계라고 봤다. 인공지능이 인간적 한계를 넘게 되면 에너지는 낭비되는 법이 거의 없게 된다. 재고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광고는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은 소비자한테 집중 노출된다. 택시는 손님 없는 빈차로 운행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은행 대출은 불량채권이 될 확률이 줄어든다. 이것이 손정의가 말하는 싱귤래리티다.

  

손정의는 싱귤래리티가 2035년이 될 거라고 암의 경영진들한테 설명했다. 2035년이 되면 자율주행차부터 스마트 가전까지 수조 개의 기기들이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빅데이터를 생성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의 거의 모든 공급과 수요를 포캐스팅한다. 암이 할 일은 앞으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에 사용될 혁신적인 반도체를 설계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초저소비 전력 반도체칩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이 모든 건 암만이 설계하고 구상하고 기획할 수 있는 일이다.


더 정확하게는 암이 어떤 반도체칩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진다. 솔직히 당사자인 암 경영진조차도 처음엔 손정의가 허풍을 떠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너무 크고 너무 멀고 너무 초스케일이라서 거의 체감이 안 됐기 때문이다. 실감은 안 나도 기술전문가로서 손정의가 맞게 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자신들이 아주 큰 바둑판의 대마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손정의는 이때 이미 여기까지 내다봤다. 손정의는 암 인수 직후 일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둑으로 치자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돌을 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수년 뒤를 내다보는 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내가 둔 수는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절묘했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이건 이 업계에 사활을 건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수입니다.” 암 인수 직후부터 손정의는 인공지능 전도사가 됐다. 손정의는 이렇게 예언했다. “앞으로 20년 안에 암이 설계한 반도체가 1조 개 이상 지구 상에 뿌려지게 될 것입니다.”


손정의는 그렇게 암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권능을 얻었다. 손정의는 한국한테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말했다. 사실 손정의 자신한테 이미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었던 것이다. 암 인수는 자신의 속내를 세상에 제대로 드러낸 첫 번째 행보였다.


소프트뱅크는 단순 통신회사가 아니다

지난 2018년 7월이었다. 손정의는 도쿄에서 프로젝트 트릴리움을 발표했다. 암은 이미 인공지능의 머신러닝에 특화된 반도체를 설계하고 공급하기 시작했다. 손정의는 이런 반도체칩을 1조 개 설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이 프로젝트 트릴리움이다. 손정의는 머신러닝의 분야가 확산되고 고도화되면서 인공지능의 머신러닝이 2030년엔 지금보다 200배 이상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엔 2035년이라고 예측했던 싱귤래리티가 불과 2년 만에 2030년으로 5년이나 앞당겨졌다. 암을 인수하고 2년 만에 손정의가 그리는 미래의 해상도가 현격하게 높아진 셈이었다. 인공지능 특이점의 숫자와 날짜가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손정의의 프레젠테이션 가운데는 또 다른 특이점이 숨어 있었다. 손정의는 이렇게 연설했다. “이전에 암을 인수했을 때 왜 휴대전화 회사가 암을 인수하는지와 왜 이제 와서 반도체 회사냐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습니다. 저는 굳이 깊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소프트뱅크는 통신 회사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35년 역사에서 통신 회사를 한 것은 불과 3분의 1 그러니까 십수 년에 불과합니다. 소프트뱅크는 회사 창업 이후 정보 혁명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회사입니다. 통신은 그 정보혁명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젠 그 통신조차 결국 인공지능을 위한 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 혁명의 가장 큰 싱귤래리티가 될 AI혁명이 지금부터 찾아옵니다.”


손정의가 소프트뱅크를 스스로 재정의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제까지 시장에서 다양하게 해석돼 왔던 소프트뱅크라는 회사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일본 국내에선 소프트뱅크는 3대 통신사 가운데 하나로 각인돼 있다. 미국에서도 스프린트를 소유한 통신 회사다. 글로벌 기술 투자 시장에선 투자회사로 좀 더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가 있다. 2019년 초에 소프트뱅크 벤처스 아시아로 확대됐다. 야후 재팬을 소유한 포털 회사거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야구단을 소유한 구단주로도 더 유명하다. 1991년 창업 당시엔 소프트웨어 유통업을 했다. IT잡지를 인수해서 출판업을 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아주 최근까지도 해외 언론에선 소프트뱅크가 은행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소프트뱅크는 그런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존재해왔다. 손정의 역시 소프트뱅크를 구태여 정의하지 않았다. 그건 손정의가 소프트뱅크를 끊임없이 자유자재로 바꿔왔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손정의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8년 손정의는 비로소 소프트뱅크가 정보혁명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소프트뱅크의 특이점이었다. 암을 인수하면서 마침내 소프트뱅크가 자신감 있게 진정한 비전을 제시할 준비가 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암 인수는 글로벌 테크 업계에서 소프트뱅크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큰 사건이었다. 소프트뱅크에 대한 인식은 암 인수 전후로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글로벌 인재 시장에서 소프트뱅크에 대한 호감도가 커졌다. 기술 전쟁은 결국 인재 전쟁이다.


2000년대 중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인 인재 전쟁과 2010년대 초반 페이스북과 구글이 벌인 인재 전쟁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인재 전쟁의 승자는 결국 더 크고 뚜렷한 비전을 제시한 쪽이었다. 소프트뱅크 역시 크고 강한 비전으로 인재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손정의는 미래를 올바로 읽은 압도적인 비전이야말로 어쩌면 기업의 가장 큰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손정의는 거인이다. 가능한 먼 미래를 보고 가능한 큰 목표를 설정한다. 그래야 가능한 많은 인재와 기술을 자신과 소프트뱅크 안에 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암 인수에서도 손정의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통찰력을 보여줬다. 사실 손정의는 숲을 넘어 산을 보고 산을 넘어 산맥을 보고 산맥을 넘어 대륙을 보려는 자다. 그래서 때론 허황되게 들린다.


그래서 손정의는 자신의 비전을 쉽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비아냥을 듣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2018년부턴 달라졌다. 인공지능이라는 싱귤래리티가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의 비전을 어렴풋이나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노베이터> 매거진에는 혁신경영인과 혁신기업에 관한 인사이트를 연재합니다. 이어서 연재될 손정의 2화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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