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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Jul 17. 2019

손정의 회장이 차량 공유 서비스로 전세계를 장악한 사연

이노베이터 - 손정의 2화

사실 손정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소프트뱅크에 비전개발팀을 만들었다. 흔히 비전을 개발한다면 미래 이야기를 많이 할 것만 같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거창하고 창대해서 그럴듯한 문구가 난무하기 십상이다. 손정의의 비전개발팀은 달랐다. 과거의 역사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았다. 손정의와 비전개발팀은 일본 전국시대 3걸 가운데 하나인 오다 노부나가를 특히 깊이 연구했다. 마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오다 노부나가한테서 손정의는 천하포무와 영락통보라는 두 가지 비전을 발견했다. 천하포무란 천하에 무를 펴겠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의 무란 21세기엔 기술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 시대 당시 철포와 화약을 선점했고 독점했다.


영락통보란 명나라 동전인 영락전의 정식 명칭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신용도가 높은 중국 화폐를 적극 활용해서 경제를 번영시켰다. 영락통보란 21세기엔 결국 달러고 금융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프트뱅크라는 이름부터가 기술과 금융의 결합이다. 소프트웨어라는 기술과 뱅크라는 금융 말이다. 손정의는 오다 노부나가를 배우면서 철포라는 기술을 선점했을 뿐만 아니라 철포에 쓰이는 초석 무역을 독점하는 탁월한 협상력을 눈여겨봤다. 실리콘밸리의 야후 인수로 일본 인터넷 시장을 선점했던 손정의와 닮은꼴이었다.


손정의는 오다 노부나가의 전략을 벤치마크해서 소프트뱅크의 비전으로 만들었다. 기술과 금융으로 선진 기술을 선점해서 미래 시장을 독점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손정의의 비범함은 단순히 오다 노부나가를 벤치마킹했다는데 있지 않다. 기술과 금융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건 솔직히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아는 일이다. 손정의는 가능한 먼 미래를 내다보려면 가능한 먼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큰 비전은 큰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손정의와 비전개발팀은 오다 노부나가뿐만 아니라 연어의 부화 같은 자연과학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500년 전의 일본 전국시대가 아니라 수억 년 전 진화 시대까지 시야를 넓힌 셈이다. 한꺼번에 3000개 가까이 산란되는 연어알 가운데 어떤 것이 성체 연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무수히 많은 연어알들한테 동시에 투자를 해야만 한다. 이것이 손정의가 말하는 무리 전략이다. 손정의는 말했다. “30년 이내에 소프트뱅크그룹에 소속된 회사를 전 세계적으로 5000개로 늘리고 싶습니다.” 사실상 전 세계에서 부화될 연어알 모두를 소유하고 싶다는 얘기다. 미래를 모두 소유하고 싶다는 뜻이다. 압도적인 꿈이다.


손정의는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국적 불문 업종 불문이다. 중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부터 핀란드의 게임회사 슈퍼셀에서 인도네시아의 커머스회사 토코피디아와 한국의 쿠팡까지다. 흔히 남보다 먼저 미래를 보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보다 크게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먼저 소유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에 '아이폰'을 제시한 사람

그런 손정의조차 한 발 늦었던 적이 있었다. 크레이지맨을 만났을 때였다. 손정의는 스티브 잡스를 크레이지맨이라고 불렀다. 스티브 잡스는 손정의를 마사라고 불렀다. 손마사요시의 애칭이다. 2000년대 중반이었다. 아이폰이 아니라 아이팟이 전 세계를 주름잡던 시기였다. 통신사업자인 손정의가 아이팟에 통신 기능을 덧붙인 휴대전화를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손정의는 쿠퍼티노의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다. 자신의 구상을 제시했다. 스티브 잡스는 내심 놀랐다.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있는 건 애플 사내에서도 1급 비밀이었다. 잡스는 마사한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상을 나한테 찾아와서 얘기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이때 손정의는 자신이 잡스보다 한발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로써 손정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폰을 일본에 독점 공급하는 일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철포와 초석을 선점하고 독점해서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했던 것처럼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역시 아이폰을 무기로 일본 통신 시장 판도를 뒤집어버렸다.


손정의는 여기에서 한 수를 더 봤다. 제품의 선수를 빼앗겼다면 부품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면 됐다. 아이폰에 들어갈 반도체 말이다. 사실 이건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이후부터 활용해온 일종의 트로이 목마 전략이었다. 반도체 완제품은 삼성전자가 강하지만 반도체 부품은 일본이 주도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벌어들이는 매출의 상당수가 결국 핵심 부품 업체가 있는 일본으로 흘러들어 가게 된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번다. 비교우위에 따른 글로벌 분업과 자유무역은 일본을 부품 강국으로 만들어준 순풍이었다. 부품만으로는 돈을 못 번다. 소비자들은 고순도 불화수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성능 스마트폰의 초정밀 게임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품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만 한다. 가격과 품질면에서 대체 불가여야 한다. 또 하나는 완성품 업체와 절대 신뢰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약속된 납기일에 정해진 수량과 약속된 품질의 부품을 공급해줘야 한다. 완성품 제조국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신뢰할만한 부품 제조국이었다. 손정의는 일본인답게 아이폰이라는 완성품의 급소가 CPU이고 결국 저소비전력 고성능 반도체라는 걸 꿰뚫어 봤다. 정작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까지 다종다기한 반도체 시장을 손정의 혼자서 모두 장악하기란 불가능했다.


100년 전 역사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다

이때 손정의는 미래엔 메모리 반도체만이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거란 사실을 예측했다. 메모리 반도체가 공정의 미세화를 놓고 벌이는 속도전이라면 시스템 반도체는 설계의 정밀화를 놓고 벌이는 두뇌전이다. 손정의는 전 세계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고 있는 두뇌 집단을 찾았다. 그것이 암이었다.


크레이지맨한테 한발 뒤쳐진 마사는 암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찾아내서 역전을 준비한다. 물론 암을 실제로 손에 넣기까진 그 뒤로도 10년여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손정의의 이런 미래 비전 역시 100년 전 역사에서 얻어낸 통찰이었다. 21세기가 IT혁명의 시대라면 20세기는 자동차 혁명의 시대였다. 자동차 혁명을 이끈 건 헨리 포드와 록펠러였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대량 생산했다.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서 대량 생산된 자동차의 생산자가 동시에 소비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록펠러는 미국 내 석유 생산지를 선점해서 석유 산업을 독점했다. 사실상 석유가 산업이 아니었던 때부터 석유를 선점해버렸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자동차 산업과 석유 산업의 동반 성장이었다. 소비자들한테 팔리는 완제품 자동차 산업이 사실상 소비자들한텐 직접적으론 쓸모가 없는 부품 산업인 석유 산업을 견인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석유 자본주의의 주도권은 자동차 메이커가 아니라 석유 재벌들이 쥐고 있었다.


21세기의 헨리 포드가 스티브 잡스라면 손정의는 스스로 21세기의 록펠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반도체 산업의 역사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고든 무어가 1965년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직접회로에 더 많은 소자 욱여넣기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을 시절부터 반도체 산업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부터 스마트폰까지 수많은 완제품 기업들과 공생해왔다. 페어차일드와 인텔을 공동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소자와 새로운 용도 사이의 시너지가 양측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냈습니다.”


손정의는 반도체가 21세기의 석유라면 반도체왕 손펠러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손에 넣어야 하는지를 노심초사하면서 심사숙고했다. 그래서 손정의한테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선점이고 독점이다. 이걸 플랫폼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가 시작되다

그런데 손정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음 수를 봤다. 스티브 잡스라는 21세기의 헨리 포드가 세상을 떠나자 손정의는 스스로 새로운 헨리 포드들을 키워내기로 결심한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소비자들한테 전달되는 완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숫자를 늘리고 그들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확대한다는 계산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자신이 채울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암을 손에 넣자 손정의가 맨 먼저 한 과업은 1천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이것 역시 한 수 앞을 보고 시장을 선점하고 비전을 압도적으로 크게 제시하는 손정의식 경영의 결과였다.


역설적으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가 암 인수로 돈줄이 마르면서 시작됐다. 대규모 인수합병 이후에 현금흐름이 불안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이럴 때면 대부분 내실을 다지면서 경영정상화에 집중한다. 한동안 과감한 투자나 인수합병은 꺼리게 된다. 손정의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더 큰돈을 끌어와서 더 크게 배팅하기로 결심했다. 손정의는 도이치뱅크의 채권 트레이더였던 라지브 미스라를 끌어들였다. 소프트뱅크의 공격적인 재무 고토 요시미쓰 CFO에 견줄만한 금융연금술사였다. 손정의는 라지브 미스라를 통해서 세계 최대의 투자펀드를 만든다는 비전을 전 세계 투자자들한테 전달했다. 2016년 9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손정의는 수많은 국부펀드들을 만났다.


손정의는 21세기의 헨리 포드들한테 전폭적인 투자를 해서 기술 시장을 폭발시킬 작정이었다. 당연히 반도체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암이 설계한 반도체들이었다. 손정의는 반도체 공급과 IT 수요 양쪽 모두의 지배자가 될 터였다. 21세기 록펠러의 비전에 공감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난 2019년 6월 26일 한국을 방문해서 10조 원대 투자를 약속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손정의와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5월에 도쿄에서 만났다. 얼마 전의 서울 방문과 똑같은 성격의 방문이 2년 전 도쿄에서 이뤄졌던 셈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세계를 상대로 각축전을 벌인지 오래다. 최근 들어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을 뿐이다. 아베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사실상 한일 경제전쟁인 이유다. 그동안의 산발적 전투가 전면적 전쟁 양상으로 확전된 셈이다. 어쨌든 당시 손정의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세자님께 1조 달러 짜리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비전펀드에 1천억 달러를 투자해주시면 1조 달러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손정의한테 그 자리에서 투자를 약속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술투자펀드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20세기 석유 자본이 21세기 반도체 자본과 섞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손정의의 멀리 보고 크게 투자하는 빅픽처 경영이 통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로 전 세계까지

손정의가 비전펀드에 투자한 미래의 헨리 포드들은 60여 개가 넘는다. 산업 분야도 국적도 다양하다. 차량 공유부터 자유주행과 전자상거래와 사물인터넷과 로봇까지 확대돼 있다. 원칙은 분명하다. 70% 투자 원칙이다. 승산이 7할이 됐을 때만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손정의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70% 투자원칙을 손자병법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정정략칠투다. 실제로 손정의는 승률이 70%라고 판단되면 총공세를 펼쳤다. 대표적인 사례가 차량 공유 서비스다.


우버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주도해나가던 상황에서 손정의는 중국의 디디추싱과 인도의 올라와 동남아의 그랩과 브라질의 99에 투자했다. 모두가 자국 내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사실상의 선점 독점기업들이었다. 그렇게 북미 시장을 제외한 거의 차량 공유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결국 2017년 12월에는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리더십 공백에 빠진 우버의 지분 15%를 매입해서 최대 주주 자리에까지 오른다.


사실상 전 세계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천하통일한 셈이었다. 똑같은 정정략칠투 전략을 지금은 전자상거래업에서도 실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토코피디아, 싱가포르의 라자다, 인도의 스냅딜, 중국의 알리바바와 한국의 쿠팡으로 아시아 벤트를 만들었다. 결국 우버처럼 아마존 역시 북미 시장 안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여기엔 암이 설계한 반도체와의 시너지까지 계산돼 있다. 핵심기술은 인공지능이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모든 회사들이 엄청난 규모의 실생활 빅데이터를 생산한다. 데이터의 크기가 클수록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을 통해 공급과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낼 확률이 높아진다. 이 모든 과정에선 반도체 업계의 그림자 거인이라고 불리는 암이 있다. 손정의는 그림자 거인을 거느린 거인이다. 손정의의 프로젝트 트릴리움이 현실화되면 전 세계 인공지능은 모두 디자인 바이 암이 된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바이 애플 전략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다. 손정의의 비전은 휴대폰을 넘어선 지 오래다.


소프트뱅크는 어느새 세계와 크기가 맞먹을만한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손정의는 늘 말했다. “하나의 비전을 공유한 서로 다른 기업들이 무리를 지어서 서로 상호교류하면서 공진화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미래 기업의 모습입니다.” 손정의의 이런 무리 전략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압도적인 자본력 덕분에 가능해졌다. 손정의라는 인간의 크기가 세계의 크기와 맞먹을 만큼 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거인은 생각의 크기가 큰 사람이다. 손정의는 초월적 비전을 가진 거인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손정의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 인공지능을 논의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21세기의 아시아 지역 패권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반도체 부품 수급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20세기 내내 한국은 일본보다 한 수 아래였다.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일본보다 낮았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전반에는 식민지 지배까지 받았다. 20세기 후반에는 일본을 통해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는 처지였다. 역설적으로 비극적 분단은 한국에 대한 대륙세력의 영향력을 차단시켰다.


덕분에 해양세력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개방적인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21세기 전반기로 접어들면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좁혀지는 추세였다. IMF는 한때 한국의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가 2017년이면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적도 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분석은 국가별 물가를 반영해서 국민의 실제 소비 능력을 비교하는 지표다. 일본은 1인당 GDP에선 한국보다 월등하지만 물가 수준 탓에 사실상 국민 개개인은 가난한 나라다.


IMF의 전망은 미국과 손발을 맞춘 엔화 약세 정책으로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본 반면에 한국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역전은 현실화되진 못했다. 일본 입장에선 100년 동안 한수 아래로만 봤던 나라가 턱 밑까지 추격해왔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한국은 21세기 산업의 석유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최강국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까지 세계 1등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다.


이대로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서 북한 시장이 개방되면 한국 경제에 비해 일본 경제가 갖고 있던 결정적인 비교우위마저 사라질 수 있다. 일본 경제가 지닌 1억 명에 가까운 내수 시장 말이다. 일본 입장에선 트럼프발 무역 전쟁의 분위기야말로 한국의 뒤통수를 때릴 절호의 기회였다. 이 참에 한국 경제를 망가뜨리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것이 한일 경제전쟁인 이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장악했던 반도체 시장을 1990년대 이후 한국이 빼앗으면서 한일 간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후 한국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어 한류라는 소프트파워 경쟁에서도 일본을 압도했다. 일본은 2019년부터 레이와 시대를 맞이했다. 과거와는 다른 일본이 돼야 한다는 강한 열망이 사회 곳곳에 펴져 있다. 이미 일본인들 스스로는 헤이세이 시대와는 다른 존재가 됐다는 느낌마저 갖는다. 헤이세이 후반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한테 하나둘씩 빼앗겼던 주도권을 2020년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완전히 되찾아와야 한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목표다. 그렇게 한국을 이겨서 강한 일본으로 거듭나려는 아베의 전략은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 사회에서 이어져온 정한론의 21세기 버전이다.


한일 경제전쟁, 미래 기술에 달려있다

그래서 손정의 회장이 던진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는 한일 경제전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국 한일 경제전쟁의 승패는 미래 기술 시장을 누가 먼저 선점하고 독점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은 인공지능의 싱귤레러티가 발생하면 더 이상 추격도 역전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이다. 초격차의 시대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경쟁의 본질은 여타 기술과는 조금 다르다. 인공지능을 잘 만드는 것보다 인공지능과 잘 사고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대신 사고해주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과 함께 사고한다는 개념이 일반화되려면 국가 전반의 구조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일례로 결론부터 정해놓고 데이터를 꿰어 맞추는 탑다운식 의사결정구조 아래에선 결코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수평적이며 권한위임적이 되느냐가 인공지능 경쟁의 성패를 가른다. 위에서 인간이 결론을 정해놓으면 인공지능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손정의 회장은 한국은 퀀텀 점프로 인공지능 강국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암을 인수하고 공유 자동차 세계를 천하통일한 손정의다운 조언이다.


한일 경제전쟁은 한국이 얼마나 일본에 대한 부품 의존을 빠르게 줄일 수 있느냐와 한국이 일본에 비해 얼마나 빨리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개방적 국가로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을 쉴 새 없이 바꿔서 꿈을 크기를 무한대로 키워온 한국계 일본 기업인 손정의가 일본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 던지는 진짜 화두다. 





<이노베이터> 매거진에는 혁신경영인과 혁신기업에 관한 인사이트를 연재합니다. 다음화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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