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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01. 2020

묻지마 투자

케이엠더블유 032500

고백하건데 아직도 케이앰더블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서 판매하는 그래서 얼마나 벌어서 얼마나 남기는 기업인지 모른다. 코스피는 아침부터 상승장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오후에 저명한 교수님과 중국 경제에 관해 말씀을 나눌 일이 있었다. 그걸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중국 거시 경제 지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코스피는 지수만 확인하고 발은 안 담글 작정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만우절이다. 거짓말처럼 올랐다가 거짓말처럼 내려갈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를 먼저 겪은 중국 증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한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다. 중국 개별 기업 상황을 구체적으론 모른다는게 문제였다. 상하이 종합지수가 본격 반등하기 전에 칭따오 맥주를 매수한게 전부였다. 미국장에선 알리바바도 좀 샀다. 그래도 아직 배가 고팠다. 더 많은 스터디가 필요하다. 3월 경제 지표들은 확실히 청신호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가 모두 50을 상회했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뜻한다. 중국 경제는 이대로 코로나로부터 굴기할 것인가. 

4월 18일에 양회가 열릴 예정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원래는 3월 초에 열린다. 코로나 때문에 한달 넘게 연기됐다. 시진핑 주석은 양회에서 중국 코로나 사태의 공식적인 종결을 선언할 공산이 크다. 3월 12일 우한시를 방문했을 때부터 그렇게 정치 일정이 짜여 있는게 눈에 보였다. 넘겨짚어보자면 시진핑의 방한과 방일 일정도 공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걸 동북아시아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는 외교 이벤트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동시에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중국의 아시아 영향력을 확대하고 과시하려는 것이다. 이쯤되면 병 주고 약 주고다. 다만 아직 일본은 코로나 사태가 악화일로다. 변수다. 

어쨌거나 50조 위안에 달하는 시진핑 공산당 정부의 돈풀기가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중국은 2008년 금융 위기부터 미국과 같은 소비 대국이 되기로 방향을 잡았다. 중국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2020년대 안에 60%까지 높이겠다는게 목표다. 미국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이다. 트럼프 정부가 국민 1인당 1200달러씩을 호주머니에 꽂아주면서 소비 진작을 시키려는 이유다. 소비가 꺾이면 미국 경제는 죽는다. 그리고 아마도 미국의 소비는 코로나 사태만 넘기면 되살아날 것이다. 미국인은 돈 주면 저축부터 하는 일본인과는 다르다. 돈을 푼 첫 달에만 받은 돈의 70% 이상을 써버린다. 트럼프 정부는 그래도 모자라면 돈을 또 풀 것이다. 미국은 달러를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다. 코로나 경제 위기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바보야, 문제는 소비야.” 

그렇다면 중국은? 중국도 내수 소비 부양에 돈이 흘러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기업들이 유망하지 않을까. 알리바바 말고 없나. 미국 기업은 제법 안다. 중국 기업은 아직 모른다. 답답하다. 그런데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를 경제 사회 구조 개편의 기회로 삼을 공산이 크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되고 싶어한다. 마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명태조 주원장이라면 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당태종 이세민이고 싶어한다. 한족의 힘이 가장 강대했던 그 시절을 재건하려고 한다. 중국이 5G나 전기자동차 인프라나 지능형 교통체계 같은 4차 산업혁명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완수한 국가가 된다면, 그 꿈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앞선 5G 인프라를 바탕으로 중국은 마침내 미국을 추월하고 전세계의 기술혁신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딱 여기까지 스터디를 했다. 당연히 본능적으로 투자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화웨이인가. 결국 토론 준비는 그쯤에서 접고 마켓 서치에 돌입했다.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띈 기업이 바로 케이엠더블유였다. 주가는 빨간불이었다. 5G 통신장비 관련 소부장 기업 같았다. 홈페이지까지 딱 들어가봤다. 전부 기술적 내용들이라 공부가 더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국 5G 통신 업체들에 납품하는 모양이었다. 그걸로 오랜 동안 증시에서 주목 받아온 종목이었다. 중국 기업에 직접 투자하기 어렵다면 한국 기업 수혜주에 투자하는 것도 타협책 가운데 하나다. 

솔직히 이딴 준비 상태로 주식을 매수하면 안 된다. 그런데 마음이 좀 급했다. 내가 하는 정도의 통찰과 전망은 고수와 시장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가가 이만큼 올라겠지. 더 늦으면 이 가격에도 놓치는게 아닐까. 욕심이었다. 문득 피터 린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완벽한 주식은 완벽하게 따분한 이름을 갖고 있다.” 케이엠더블유. 완벽하게 따분한 이름이었다. 그래, 사자. 대신 딱 2주. 주당 매수가는 58000원. 척후병을 먼저 보내본 셈이었다. 그리곤 중국 거시 경제 전망에 관해 교수님과 말씀을 나누러 갔다. 

결과는 이랬다. 트럼프의 말 한 마디로 만우절 거짓말처럼 오전장에는 붉었던 아시아 증시 모두가 파랗게 질려버렸다. “매우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가 될 것.” 오후장에서 코스피는 1700선이 무너졌다. 완벽하게 따분한 이름을 가진 케이앰더블유의 종가 역시 따분하게도 54800원이었다. 전날보단 4600원이 올랐지만 매수가 58000원이면 오늘의 상투를 잡은 위대한 바보가 된 셈이었다. 미국은 앞으로 2주 동안이 가장 고통스러겠지만 중국은 앞으로 2주 동안 경제 회복의 낭보들을 전해줄 것이다. 상하이 종합 지수도 내일은 반등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앞으로 겪은 진안한 4월은 중국이 이미 겪은 잔인한 2월이니까. 코로나를 딛고 굴기할 중국 경제라는 용 꼬리를 붙잡을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케이엠더블유는 도대체 뭐하는 기업인가. 스터디할 것만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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