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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06. 2020

인생극장

CJ CGV 079160

192편. 이제까지 CGV에서 본 영화의 편수다. CGV의 오랜 단골 고객이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CGV에서만 봤다. 2009년부터 기록돼 있다. 지난 십수년 동안 봤던 영화들의 목록을 때와 장소까지 함께 보고 있노라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맞다. CGV는 가장 애용하고 많이 사랑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25000원. 지난 3월 10일 CJ CGV의 주식 20주를 매수했을 때의 주가다. 4월 6일 월요일 현재 CJ CGV의 주가는 19200원이다. 그나마 회복돼서 이 정도다. 3월 23일 종가는 1만4150원이었다. 맞다. 성급했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게 3월 11일이었다. 그때부터 연달아 미국장과 한국장이 무너졌다. 연쇄폭락장 직전에 샀으니 손실폭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 당시 주가도 코로나 영향 탓에 상당히 빠진 상태였다. 원래는 4만원대에서 놀던 주식이었다. 코로나 상황에 해소되면 주가도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오판했다.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4월이 돼도 이렇게 지지부진할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미국 경제가 이렇게 코로나에 발목잡힐 거라고도 짐작하지 못했다. 상황을 너무 낙관했었다. 

반성하자면,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낙관할 종목은 아니었다. CJ CGV는 2019년 내내 분기 매출이 거의 정체 상태였다. 순이익률은 계속 마이너스였고 급기야 2019년 4분기엔 마이너스 42.86을 기록했다. 자기자본이익률인 ROE 역시 2019년 기준 마이너스 57.60이었다. CJ CGV의 부채비율은 2019년 기준 652.62%에 달한다. 2016년 터키법인 TRS를 인수한게 화근이 됐다. 급기야 CJ그룹이 CJ CGV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CJ CGV는 속 빈 강정이었다. 

스스로도 웃긴 건, 이걸 모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CJ CGV가 터키 법인 인수 때문에 물려 있는 것도 기자로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덜컥 20주나 샀다. 패착의 원인은 분명했다. 고점 대비 주가가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싸보였다. 세일에 들어간 명품 시계를 본 심정이었다. 이 가격이면 지금 사는게 오히려 개이득이라는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취했다. 모든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언뜻 말을 들어보면 정말 말이 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렇게 아무리 파격 세일 중이었더라도 10주 정도만 사도 충분한 주식이었다. 50만원이나 투자하는건 터무니가 없었다. CJ CGV 주가는 지난 3월 23일엔 1만4150원까지 떨어졌다. 지나치게 낙관했고 지나치게 성급했다. 명백한 투자 실패였다.

그래도 물타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주당 25000원에 20주를 매수한 그대로 내버려뒀다.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영화기자로 일했던 시절부터 CJ CGV는 너무나도 잘 아는 회사였다. 강변역에 대한민국 최초의 CGV가 생길 때 취재를 갔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분석조차 하지 않고 단지 너무나도 친숙한 회사라는 이유로 투자해선 안 된다는게 첫 번째 교훈이었다. 아무리 세일가로 시장에 나온 주식이라도 큰 시장 흐름과 종목을 함께 봐야 한다는게 두 번째 교훈이었다. CJ CGV는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주식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분명 사람들은 극장으로 다시 몰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 당장, 금방이라는 뜻은 아니다. 분명 언젠가는 실적이 개선되고 업황이 좋아질테지만 회복과 반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매수 타이밍을 늦췄으면 더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그랬다면 피 같은 50만원이 구태여 CJ CGV에 묶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CJ CGV는 와신상담 종목이 되고 말았다. 종목 자체가 일종의 코로나 바로미터다. 코스피 1900대에서 주당 25000원에 샀다. 만일 CJ CGV의 주가가 25000원선을 회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이 한국의 코로나 사태가 정리됐다고 판단한다는 신호다. CJ CGV 주가는 개인적인 공포 지수인 셈이다. 극장가로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면, 코로나 종식이다. 지난 주말 전국 극장 관객수는 8만명대였다. 역대 최저치다. 확실히, 한국의 코로나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CJ CGV 주가가 그걸 말해준다. 

3월 10일은 따님의 생신이었다. 지금 매수한 주식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CJ CGV 주식은 아이를 위한 생일 선물이었다. CGV에서 아이와 맨 처음 본 영화는 <뽀로로 극장판 눈요정 마을 대모험>이었다. 2014년 12월 16일 오후 5시 45분 영화였다. 사람들은 끝내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안방극장에선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극장을 통해서만 각인될 수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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