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장중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프러리 Apr 09. 2020

쇼크와 기회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 HLT

51년을 함께 산 부부가 코로나19에 감염돼서 6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CNN에 소개돼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기사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사망자수는 1만2천명을 넘어섰다. 뉴욕타임즈는 실제 사망자수는 집계된 사망자수의 두 배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 확진판정조차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희생자가 부지기수라는 뜻이다. 이쯤되면, 지금 미국은 경제위기를 따지기 이전에 보건위기부터 수습해야 하는 처지가 아닐까.

벤 버냉키 전 미국 연준 의장도 같은 얘기를 했다. 코로나 위기의 본질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 보건 위기라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비교적 조기에 종결됐던건 달러가 곧 치료제였기 때문이다. 밴 버냉키 의장이 바로 달러로 미국 경제를 치료한 주치의였다. 주식 시장은 그때처럼 이번에도 돈풀기로 경제위기가 수습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버냉키가 그때와 지금은 다를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버냉키는 브루킹스 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때”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조차 뉴욕증시는 평온하다 싶다. 뉴욕 시각으로 오전 10시40분 현재 S&P500와 다우존스와 나스닥 모두 상승 출발했다. 하루전 4월 7일 화요일장에선 오전에 올랐다가 오후에 떨어졌다. 오전 상승은 코로나 위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오후 하락은 코로나 위기의 정점은 아직이라는 분위기 탓이었다. 일희일비다. 이로써 분명해진건 미국 증시에서 3월 12일 검은 목요일 같은 대폭락은 당분간은 다시 보긴 어려울거란 사실이다. 3월 한 달 동안 이어진 극단적인 베어 마켓도 마찬가지다. 

이미 시장이 악재들을 반영해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떼죽음도 헬리콥터 벤의 실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쇼크는 예상하지 못했을 때만 충격적이다. 예고된 악재는 쇼크가 아니다. 사실 이번 주 뉴욕증시는 첩첩산중일거라고 예상했었다. 딱 봐도 지뢰밭 투성이였다. 가장 큰 폭탄은 9일 목요일에 발표될 새로운 주간 실업급여 청구건수였다. 지난주까지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수는 1천만명을 넘어섰다. 이번주 신청자는 최대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신규 실업자수가 2천만명에 육박하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주 뉴욕증시는 바로 이 주간 실업급여 청구건수 통계 탓에 롤러코스터를 탔다. 어쩌면 이번주는 다를 듯도 하다. 죽음처럼 실업도 이젠 예상한 악재일 뿐이다. 

이번 주부턴 미국 주요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9일 목요일엔 생산자물가지수가 발표된다. 10일 금요일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다. 소비감소에 유가하락까지 겹쳐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소비는 미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동력이다. 월요일에서 9일 목요일로 연기된 오펙 플러스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나오는게 어쩌면 이번주에 기대할만한 유일한 호재일 수 있다. 이번 오펙 플러스 회의의 본질은 트럼프 대 푸틴이다. 러시아는 미국도 감산을 하게 만들까. 트럼프는 미국만 빼고 모두가 감산하게 만들까. 누가 더 스트롱맨인가. 

예정된 악재와 분명한 불확실성에 뉴욕 증시가 쇼크를 덜 받으면서 매수할 주식이 줄어들었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당초 겨냥했던 종목들은 대부분 3월에 매수에 성공했다. 이젠 코로나 공포 탓에 일시적으로 저평가돼버린 주식들이 확실히 줄어들어가고 있다. 시장이 제정신을 차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 투자자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주식 잔고 손익이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시장 여기저기서 투자할 주식들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스터디가 더 필요한 시기가 됐다.  

이럴 때야 말로 독서하기에 좋다. 잭 슈웨거의 <주식 시장의 마법사들>을 읽기 시작했다. 전자책으로 앞부분만 슬쩍 살펴봤던 책이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종이책으로 소장해놓고 본격적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증시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흥미가 가지 않았을 책이다. 지금은 늘 애독해온 기업분석서만큼이나 시장분석서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잭 슈웨거는 그 자신이 훌륭한 트레이더이면서 동시에 금융투자 부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다. 투자시장의 트레이더들에 관한 인터뷰집은 마법사들 시리즈를 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투자 시장의 트레이더들을 이렇게 인터뷰해보고 싶어질 정도다. 교수의 이론이나 기자의 분석보다도 실전 투자자들의 경험이야말로 개인 투자자들한텐 가장 도움이 많이 된다. <주식 시장의 마법사들>에서 잭 슈웨거가 맨 먼저 인터뷰한 사람은 스튜어트 월턴이라는 트레이더였다. 읽어보니 초보 트레이더 시절 전재산을 날려먹은 적도 있는 백전노장이었다. 이런 말이 인상 깊었다. “반응하지 말고 예측하라. 외부 의견이 아니라 시장에 귀를 기울여라.” 지금 시장은 무엇을 속삭이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반응이 아니라 예측을 할 수 있을까. 

장중일기를 쓰는 동안 힐튼 주식이 주당 70달러를 넘었다. 지난 3월 16일에 힐튼 주식을 주당 70달러에 1주 매수했었다. 정크본드 판정을 받은 하얏트보다야 건전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검은 목요일 이후여서 꽤 폭락했다고 생각했지만 바닥 아래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3월 18일 종가는 56.68달러였고 4월 3일 종가는 55.94달러였다. 당연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숙박업의 대표주였으니까 말이다. 한때 113달러까지 갔던 주가가 반토막이 난 셈이었다. 물론 코로나라는 블랙 스완을 제외한다면 힐튼은 이런 헌신짝 취급을 받을 주식이 결코 아니다. 한국 증시에서 코로나 회복의 바로미터가 CJ CGV라면 미국 증시엔 힐튼 주식이다. 힐튼은 고작 1주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아마도 지난주와 이번주 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의 상당수가 호텔업에서 발생했고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힐튼 주식이 매수가를 회복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다. CNN을 보면 영원히 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왔다. 심지어 3분의 1토박이 났던 하얏 주가조차 50달러선을 회복했다. 시장은 언제나 예상한 쇼크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쇼크를 기회로 받아들인다. <주식 시장의 마법사들>에서 스튜어트 월턴은 이걸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한다. “가격은 펀더멘탈보다 먼저 움직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극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