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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Jul 02. 2019

'이중 하나는 좋아하겠지'는
넷플릭스 방식이 아니다

이노베이터 -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2화

리드는 말했다. “1997년에 넷플릭스를 창업할 당시에도 스트리밍 기술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엔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죠.” 당시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대신 우체국을 선택했다. 리드의 말처럼 현명한 선택이었다. 리드는 말했다. “모든 비즈니스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넷플릭스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넷플릭스라는 이름부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의 넷이 뜻하는 바가 우편망일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리드는 2007년 1월 실리콘밸리의 소수 정예 기자들을 모아놓고 로스 가토스에서 최초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당시 참석했던 기자들 가운데엔 나중에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을 쓰게 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지나 키팅도 있었다. 지나 키팅은 원제가 <넷플릭스드 NETFLIXED>인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헤이스팅스가 새 장난감을 손에 쥔 꼬마처럼 열정적으로 시연한 실시간 스트리밍은 넷플릭스의 대다수 프로그램처럼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고 웹사이트의 다른 기능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정작 지나 키팅은 지금이 적당한 때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타이틀이 겨우 1000편 밖에 안 되는 시점에 서비스를 출시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곧 답을 찾았다. “상식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늘 대담한 행보를 보여준 헤이스팅스는 이번에도 미래를 내다봤고 회사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고객의 반응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감상 중에 나타나는 시청자들의 행동을 통해 영화에 대한 평가와 관련된 단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스템은 시청자가 어떤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고 되돌리는지, 재미가 없을 때 얼마나 참고 보는지, 어떤 장면을 그냥 넘기는지 전부 기록했다. 인간의 행동을 낱낱이 분석해 얻어낸 결과는 어떤 포커스 그룹보다 풍부하고 특별한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로스 가토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마주한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번에도 2007년 처음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리드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저희가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에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기술이 결합되고 괜찮은 콘텐츠까지 더해지면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작 1월 초에 문을 연 한국 서비스를 본 소비자들은 2007년 지나 키팅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어화된 넷플릭스의 홈페이지도 깔끔하고 스트리밍 품질도 만족스러운데 한국 관객들한테 최적화된 콘텐츠가 아직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 관객들이 즐기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한국에 진출해도 늦지 않았을거란 얘기도 나왔다.


결국 답은 <넷플릭스드>에서 지나 키팅이 찾았던 것과 같은 곳에 있었다. 넷플릭스는 스스로 학습하는 서비스다. 방송 전문가들이 시청자들이 좋아할거라고 추정하는 콘텐츠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를 이용한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걸로 나타나는 콘텐츠는 따로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년 동안 가설과 실제 데이터가 다른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넷플릭스에서 사람들은 영화를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론 연속극 드라마의 영향력이 훨씬 압도적이었다. 이건 나중에 넷플릭스가 영화보단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드라마 제작을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근거가 된다.


콘텐츠가 많아도, 원하는 콘텐츠만 본다

마찬가지다. 당장 한국 콘텐츠가 부족한 건 한국 사용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걸 찾아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청자들의 취향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넷플릭스는 한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적확하게 구비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콘텐츠부터 잔뜩 늘어놓고 이 중에서 설마 하나 정도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있겠거니 기대하는 접근법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자칫 시청자들이 평생 가도 찾지 않을 악성 재고만 잔뜩 끌어안고 있게 된다. 시청자들 입장에선 아무리 콘텐츠가 많아도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콘텐츠가 없으면 풍요 속의 빈곤만 느끼게 된다. 넷플릭스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장르별 분류별로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핵심 콘텐츠만 정확하게 구비해놓는 노하우를 찾아냈다.


그 밑바탕엔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이해하는 빅데이터 분석이 깔려있다. 시청자들이 어떤 영화를 언제 봤고 어디에서 멈췄고 어디에서 다른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지 알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간파할 수 있다. 사람들의 진짜 욕망을 알면 비로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바로 그 콘텐츠를 제공해줄 수 있다. 2007년 리드와 넷플릭스가 콘텐츠가 부족해보이는 상황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던 건 그런 빅데이터들을 남보다 빨리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도 똑같다. 당장은 콘텐츠가 부족해보일 수 있다. 한국 시청자들의 빅데이터가 쌓일수록 한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 콘텐츠가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동시에 넷플릭스는 판권료를 확보하는데 드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면서 악성 재고를 최소화하고 시청자들한텐 최적의 콘텐츠만 제공할 수 있다. 콘텐츠부터 늘리는 건 넷플릭스의 방식이 아니다. 먼저 필요한 건 취향 저격에 필요한 빅데이터다.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넷플릭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건 이런 정교한 취향 저격 경영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접속만 하면, 넷플릭스의 몫이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가 취향을 저격하는 과정을 전혀 알 필요가 없다. 시청자들은 그저 넷플릭스 사이트서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고 보고 지루하면 돌려보고 재미없으면 끄고 다른 드라마로 옮겨가면서 재핑을 해대는 직관적인 행동만 반복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모두 넷플릭스가 알아서 해준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로 불리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스 역시 소비자들이 오직 직관만으로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제품을 단순화시키길 원했다. 아이팟 셔플을 만들 때는 제품을 단순화시키다못해 아예 스크린까지 없애버렸다. 리드 역시 잡스처럼 넷플릭스의 서비스를 가장 단순해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데 주력했다. 넷플릭스는 이면에선 최첨단 기술의 총합이지만 겉보기엔 단순한 영화 사이트에 불과해보인다.


이런 원칙은 넷플릭스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된다. 넷플릭스 로스 가토스 본사엔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스크린들을 모아서 테스트하는 방이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TV는 물론이다. 작은 휴대폰 스크린부터 아이패드를 거쳐서 거대한 곡면 TV까지 모든 스크린이 이 방에 모여 있다. 넷플릭스는 이 모든 각각의 스크린에 최적화된 영상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것도 각기 다른 인터넷 접속 환경 속에서 말이다. 누군가는 초고속 인터넷에 연결된 초대형 LG TV로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작은 휴대폰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심지어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 각각의 사용자 환경에 따라 최적의 화질과 속도를 찾아내는 건 넷플릭스의 몫이다. 사용자는 그저 넷플릭스에 접속만 하면 그만이다. 넷플릭스는 이걸 어댑티브 스트리밍 기술이라고 부른다.


닐 헌트 넷플릭스 최고제품책임자는 퓨어아트리아 시절부터 리드 헤이스팅스와 함께 해온 엔지니어다. 오랫동안 넷플릭스의 CTO 역할을 해왔다. 닐 헌트는 리드 헤이스팅스의 좌뇌라고 할 수 있다. 닐 헌트가 바로 어댑티브 스트리밍의 최고 기술자다. 닐 헌터는 말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화질의 종류는 모두 12단계입니다.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이용하는 스크린의 화질과 인터넷의 속도를 스스로 감지합니다. 그때그때 최적의 단계를 찾아냅니다. 최적의 환경이라면 흔히 말하는 HD를 넘어서 최상의 화질인 4K까지 구현할 수도 있겠죠. 반대로 최악의 환경이라면 비디어 테이프 수준인 가장 낮은 250바이트 수준의 화질을 제공해서 화면이 끊기거나 접속이 차단되는 일을 막습니다. 만일 사용자가 이동 중이라면 매 순간마다 VHS화질, DVD화질, HD화질, 4K화질을 오갈 수도 있죠.”


닐 헌트는 영국인 특유의 세련된 자신감과 엔지니어 특유의 기술적 프라이드를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 “물론 이 모든 변환 과정을 시청자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화질 전환의 전개 단계가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화질이 바뀌고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회의실 화이트보드는 어느새 닐 헌트가 그려놓은 기술 개념도로 가득 채워졌다. 넷플릭스엔 방마다 화이트보드와 보드마커가 비치돼 있다. 


시청자 의견이 아니라 '행동'에 주목하

닐 헌트의 화이트보드는 어느새 어댑티브 스트리밍에서 씨네매치 알고리즘에 관한 설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닐 헌트는 리드와 함께 넷플릭스 프라이즈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어쩌면 최종우승자인 <벨코어와 실용적 혼돈>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소수의 천재급 엔지니어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닐 헌트는 씨네매치 알고리즘에 대해 토드 옐런과는 또 다른 측면을 말해줬다. 닐 헌트가 빅데이터를 숫자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라면 토드는 빅데이터를 인문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기술과 인문의 교차로인 넷플릭스에서 만났다.


엔지니어답게 닐은 숫자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씨네매치 알고리즘에 주어진 시간은 오직 60초라고 강조했다. “사용자가 넷플릭스를 켜요. 그들이 오늘밤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30초에서 길면 60초입니다.” 물론 이 시간 역시 어림짐작으로 나온 수치가 아니다. 리드가 말한 “10년”처럼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반한 숫자가 틀림없다.


닐은 시청자들이 넷플릭스에 무의식적 거짓말을 한다고 설명했다. 입으론 예술영화애호가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개그콘서트>를 즐겨보는 게 인간이다. 인간적 오류다. 닐은 말했다. “<쉰들러 리스트>에는 많은 넷플릭스 사용자들이 평점 5점을 줍니다. 정작 넷플릭스가 오늘밤에 볼 영화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시하면 마다하죠. 그건 오늘밤에 볼 영화가 아니라 언젠가 볼 영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담 샌들러의 영화는 다들 유치하다고 말하지만 오늘밤에 볼 영화는 그런 영화일 수도 있죠.”


닐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기준으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어떤 시청자가 50분 정도 영화를 보다가 다른 영화로 바꿨다면 그건 재미가 없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영화를 껐다면 그건 다른 약속이 생겨서 외출한 것일 수도 있죠. 이런 행동 데이터들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시청자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죠.” 넷플릭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이쯤되면 넷플릭스가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를 유통시키는 인터넷 방송국이 아니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리드는 “선형적 방송국은 203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해서 기존 방송사업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선형적 방송이란 결국 방송사는 방송하고 시청자는 보는 일방향적 콘텐츠 소비를 말한다. 하나의 채널에서 쭈욱 콘텐츠가 선형적으로 이어져나오고 시청자들은 시간에 맞춰서 보고 싶든 보기 싫든 그걸 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는 온디맨드 방식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골라볼 수 있다. 소비 패턴이 비선형적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 케이블 사업체인 컴캐스트를 추월한 상태다. 넷플릭스가 방송 산업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며 난리들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하자 쏟아지고 있는 기사들도 대부분 선형적인 기존 방송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한 내용들이다.


정작 넷플릭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너머를 봐야 한다. 방송 산업의 담론 안에서 넷플릭스를 이해하는 건 넷플릭스라는 빙산의 일각만 보는 짓이다. 넷플릭스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해서 인간이 무엇을 원하기도 전에 원하는 걸 제공하는 기업이다. 넷플릭스가 시청자들한테 인기가 있는 건 기존 방송 사업자들보다 콘텐츠가 많아서가 결코 아니다. 그건 기존 방송 사업자들의 고리타분한 사고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콘텐츠를 갖고 있다. 그걸 위해서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집요하게 당신의 행적을 추적한다. 이미 넷플릭스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당신이 무엇을 원하기도 전에 알 수 있는 단계에 근접해 있다. 넷플릭스에 접속했을 때 60초 안에 반드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내게 되는 건 그래서다. 넷플릭스의 영업 비밀은 여기에 있다. 


숫자와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다

넷플릭스는 2012년 초 나스닥 퇴출 대상 1순위였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자초한 일이었다. 넷플릭스는 2011년 9월 서비스 가격을 60퍼센트나 인상했다. 오해도 물론 있었다. 하루 아침에 가격을 60퍼센트나 올리는 건 누가봐도 자살 행위다. 넷플릭스는 당시 2500만 명 정도였던 가입자를 세분해서 일부한테 가격을 올려받고 일부한텐 가격을 오히려 내려준다는 가격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덧셈 뺄셈을 하면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는 60퍼센트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전략 보고서가 2011년 여름에 회사 밖으로 흘러나가서 SNS상으로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는 사실이었다. 9월로 접어들면서 넷플릭스가 새로운 가격 정책을 시행하자 소비자들의 우려는 분노로 바뀌었다. 다들 “넷플릭스가 폭리를 취하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그들은 돈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선 “영화보자”는 말 대신 “넷플릭스하자”는 말이 쓰일 정도였다. 넷플릭스가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단 얘기였다. 소비자들은 넷플릭스한테서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최고경영자인 리드한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주가는 일주일만에 15퍼센트나 곤두박질쳤다. 하루 아침에 100만 명의 가입자가 넷플릭스를 탈퇴했다. 이 와중에 리드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넷플릭스의 근간이 됐던 DVD 우편배송 사업을 퀵스터라는 자회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시장의 대세는 스트리밍으로 옮겨간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DVD 시장에는 넷플릭스를 수십년째 이용해온 충성도 높은 기존 고객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우편함에 빨간 봉투를 넣던 시절의 넷플릭스를 여전히 사랑했다. 줄어들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고 이건 돈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 퀵스터를 분사하게 되면 그들한테 넷플릭스 대신 퀵스터를 쓰라고 강요하는 셈이 됐다. 아무리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이건 소비자들을 넷플릭스에서 쫓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정서적인 문제였다. 그들에게 퀵스터는 결코 넷플릭스가 아니었다.


리드와 넷플릭스는 오랫동안 사람의 감정을 수치화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제 씨네매치 알고리즘은 인간의 특정 취향을 인간보다 더 잘 아는 단계에까지 진화한 상태였다. 넷플릭스와 퀵스터의 분사 결정이나 급작스런 요금 인상은 모두 숫자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넷플릭스는 기술과 인간, 숫자와 감정, 과학과 예술의 교차로에서 출발한 회사였다. 이런 균형이야말로 넷플릭스의 진정한 저력이었다. 어느 순간 넷플릭스의 내적 균형이 무너졌다. 교차로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전설로 불리던 넷플릭스는 2012년 초쯤엔 블랙베리를 만든 RIM과 함께 나스닥 퇴출 1순위 기업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그 질문이 나오자마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2011년에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DVD와 스트리밍을 너무 빨리 분사한 건 실수였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죠. 당시엔 너무 성급했어요. 지금 스트리밍 사용자는 7천만 명이지만 당시엔 1천만 명 정도 밖에 안 됐어요. 그때 배운 교훈은 너무 빨리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당시 상황에 대해 지니 키팅은 <넷플릭스드>에서 리드의 오만함을 지적했다. <포춘> 표지를 장식하면서 전국적인 거물이 된 뒤로 내부 견제가 사라지고 리드의 독단과 독선이 시작됐다는 얘기였다.


리드의 설명은 좀 달랐다. “2011년에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모두가 다들 스트리밍 얘기를 했어요. 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다음 대박을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고객보다 너무 앞서나가는 실수를 저질렀던거죠.” 당시 리드는 위기의 남자였다. 유튜브에 사과 동영상을 올렸지만 그것마저도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코미디언들은 리드를 풍자하느라 바빴다. 리드는 그동안 수백번도 더 말했을 준비된 대답을 들려줬지만 “실수”와 “너무 빨랐다”는 말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이노베이터> 매거진에는 매주 월, 화요일에 혁신경영인과 혁신기업에 관한 인사이트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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