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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Jul 03. 2019

"넷플릭스하자"
만국공통어 될 수 있을까

이노베이터 -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마지막화

2015년 12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날라간 건 당시 위기의 넷플릭스의 구원해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다. 넷플릭스의 LA 사무실은 비버리힐즈 한복판에 있었다. LA의 상징물인 할리우드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예술 중심지인 할리우드에 있는 넷플릭스 LA 사무실은 기술 중심지인 로스 가토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와는 분위기부터가 전혀 달랐다.


어떤 책상은 <어벤져스>의 피규어들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리셉션 데스크 맞은편은 그동안 넷플릭스가 수상한 에미상 트로피들로 장식돼 있었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로 온라인 방송사로서는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표지도 눈에 띄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연 배우들인 케빈 스페이시와 로빈 라이트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할리우드 리포터>의 표지를 한 가운데에서 장식하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테드 사란도스였다. 테드 사란도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데어데블>과 <제시카 존스> 같은 넷플릭스의 간판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로 우뚝 섰다. 할리우드는 넷플릭스를 새로운 메이저라고 부른다. 테드 사란도스가 그 정점에 서 있다.


2012년 넷플릭스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넷플릭스는 기존 경쟁자였던 블록버스터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였던 아마존까지도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리드가 짐승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그랬던 넷플릭스가 이젠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때 리드와 테드는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결정을 내린다.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는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넷플릭스가 독자 콘텐츠 제작을 고려한 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4년 레드인벨로프 프러덕션을 차리고 <소프라노스>의 외전격인 <릴리해머>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당시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버리힐즈 오피스에서 마주한 테드는 말했다. “발만 담그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자체 콘텐츠가 선순환을 일으킨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킬러 콘텐츠를 원한다. 아무리 많은 콘텐츠가 있어도 보고 싶은 바로 그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넷플릭스가 십수년 동안 시청자 행동을 분석하면서 얻어낸 결론이었다. 그때까지 넷플릭스는 그런 킬러 콘텐츠를 외주화해왔다. 어딘가에서 빌려왔단 얘기다. 이젠 넷플릭스만의 킬러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 때였다. 그래야 넷플릭스에서 떠나가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넷플릭스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줘야 했다.  


테드는 리드와 함께 빅데이터 숫자들을 기반으로 획기적인 드라마를 기획했다. 우선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였다. 소재는 <하우스 오브 카드> 리메이크였다. 이미 넷플릭스에선 영국판이 먼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주연배우는 케빈 스페이시였다. 넷플렉스 시청자들은 케빈 스페이시에 중독돼 있었다. 케빈 스페이시의 영화를 한 편만 봐도 다른 영화도 찾아보는 경향을 보였다. 중독성에선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핀처도 만만치가 않았다. 데이비드 핀처는 넷플릭스에서 마니아들을 몰고 다녔다.


테드와 리드는 여기에다 획기적인 개봉 방식을 덧붙였다. 26개의 드라마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제작해서 한번에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시청자들은 주말마다 찔끔찔끔 드라마의 소비하는데 질려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꺼번에 에피소드를 공개해버리면 시청자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시청 경험을 주변과 공유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모든 게 넷플릭스의 빅데이터 분석을 알아낸 결과였다. 테드와 리드는 이런 숫자들을 기반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를 기획했다.


빅데이터 통해 '진짜'를 읽어내는 것

두 사람은 시즌1에만 1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테드는 말했다. “TV시리즈로선 가장 크게 가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망하면 넷플릭스 자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규모였다. 엄청난 리스크였다. 여기에 대해선 리드도 짧게 대답했다. “넷플릭스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걸 두려워합니다.” 


사실 리드와 테드가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기술로 흥행 산업의 리스크를 헷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넷플릭스가 기술과 예술의 균형을 되찾은 덕분이었다. 그들은 빅데이터를 통해 이미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리드와 테드는 기술에서 예술을 이끌어내는 법을 찾아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예술적으로 구현해냈다.


그렇다고 숫자에만 얽매였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가 예술작품이 되지는 못했다. 국내 최고의 빅데이터 전문가로 손꼽히는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도 같은 말을 한다. “빅데이터 숫자에서 봐야하는 건 사람의 마음입니다. 빅데이터는 사람을 이해하는 수단이지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사람의 욕망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야한 속옷이 많이 팔린다면 그건 사람들이 야한 속옷을 원하는 게 아니라 섹스를 원한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영역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하려면 구체적인 숫자의 추상성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야 합니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지닌 빅데이터로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이해했다. 기술과 예술을 조화롭게 활용했다. 2013년 2월 1일 개봉한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부활했다. 넷플릭스의 씨네매치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통해 느끼는 사람의 감정을 수치화시켰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수치화된 사람의 감정 패턴을 해석해서 다시 콘텐츠로 전환시킨 사례다. 이게 넷플릭스의 본질이다. 예술을 기술로 만들고 기술을 다시 예술로 만든다.


넷플릭스는 좌뇌와 우뇌를 모두 쓰는 인재에 가깝다. 로스 가토스 오피스가 좌뇌라면 비버리힐스 오피스는 우뇌다. 좌뇌엔 닐 헌트가 있고 우뇌엔 테드 사란도스가 있다. 둘을 이어주는 존재가 리드 헤이스팅스다. 리드 이외에 이렇게 기술과 예술 사이를 오갔던 인재는 역시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픽사에서 <토이 스토리>를 만든 건 이젠 신화다. 잡스 곁에 우뇌형 인재로 존 레세터가 있었다면 리드 곁엔 테드 사란도스가 있다.


넷플릭스를 위기에서 구한 건 1억 달러 제작비를 들인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남들은 도박이라고 봤지만 넷플릭스에선 성공을 확신했다. 시청자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 게임에서 상대방의 패를 다 보고 치는 기술자였던 셈이다. 결국 넷플릭스를 위기에서 구한 건 기술과 사람의 균형이었다. 테드와 리드 같은 인재들이 한울타리에서 일하는 융합적 기업 문화였다. 


자유는 더 나아가 '창조'를 이끈다

테드는 1999년 리드를 처음 만났다. 테드는 인터넷에 뭔지도 몰랐다.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하려고 처음 인터넷이란 것에 접속해봤다. 당시 테드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인정 받는 프로듀서였다. 그의 아내는 유명한 외교관이다. 구태여 DVD 우편 배송을 하는 무명 회사의 임원으로 합류할 이유가 없었단 얘기다. 리드를 만났을 때 테드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리드는 당시에 이미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비전을 저에게 그려줬습니다. 스트리밍이란 기술 자체가 아직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건 리드의 비전이었죠. 그 비전이 저를 매료시켰어요. 리드는 그때 이미 자체 제작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플랫폼이 충분히 커졌을 땐 콘텐츠 공급자에 의존하기보단 자체 제작을 해야 한다고 그때 이미 말했죠.” 테드가 바라본 리드 헤이스팅스는 비전가였다.


테드는 리드와 함께 선댄스 영화제를 다녔다. 선댄스 영화제는 리드나 테드처럼 영화에 관심이 많은 테크 분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유럽에서 열리는 칸느나 베니스 영화제처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예술 영화 페스티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선댄스의 자유로운 혁신적인 인디 영화 문화가 실리콘밸리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넥슨의 김정주 창업주도 선댄스 영화제의 단골 관객이다. 김정주가 선댄스에서 보고 함께 사온 영화가 지난해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위플래시>다.


넷플릭스 관계자들도 선댄스에서 1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유타주가 캘리포니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탓도 있다. 테드는 선댄스에서 리드한테 한 번 더 반했다. 리드는 몇날 며칠이고 선댄스에서 영화만 보면서 지냈다. “리드는 엄청나게 기술적인 마인드가 있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영화도 미치광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선댄스에 가서 5일 동안 영화만 보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리드와는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겠다 싶었죠. 리드는 기술적인 부분에 주력하고 저에겐 엄청난 자유를 줘서 창의적인 부분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면 우리가 좀 더 창조적인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리드는 제게 그런 창을 열어줬고 그것이야 말로 리드를 높이 살 부분입니다.”


한국에서 성공을 자신하는 또 다른 이유

리드와 테드는 넷플릭스가 시청자의 시청 패턴을 분석해서 시청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걸 넘어서서 시청자의 시청 패턴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빈지 워칭이 대표적이다. 폭식한다는 뜻의 빈지라는 뜻처럼 빈지 워칭은 콘텐츠를 하루밤만에 모두 소화해버리는 시청 형태를 뜻한다.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 뿐만 아니라 자체 제작 드라마들을 한꺼번에 공개한다. 이 콘텐츠들을 특정한 주말에 미뤄뒀다가 한꺼번에 보는 시청 형태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이런 시청 형태는 경기가 나빠지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전세계적인 추세와도 결합력이 아주 높다. 시청자들은 한 달에 10달러 안팎인 넷플릭스 이용료로 주말을 행복하게 보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것도 구태여 애인과 함께 가서 광고까지 다 봐야 하는 번거로운 극장보다 더 양질의 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사람들은 삶의 위안을 찾을 타인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가고 있다. 모두가 외롭단 얘기다. 넷플릭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체험하길 원하는 감정 그 자체를 선물한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변화하는 삶의 모습과 결합되면서 사람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단순히 영화를 인터넷으로 유통시키는 회사를 넘어서 라이프 스타일 회사가 돼가고 있다는 뜻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성공을 자신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국 역시 경기가 위축되고 있고 1인 가구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넷플릭스가 필요한 외로운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테드는 말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그냥 시간을 죽이는 무엇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위안을 주고 행복을 주고 기쁨을 주는 요소라는 걸 감지한 겁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평화로워질 수 있습니다.” 영화 프로듀서인 테드는 자신이 파는 것이 영화가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넷플릭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만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도 같은 말을 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 보통 대형 TV가 안 팔릴 거라고 추측합니다. 틀렸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좀 더 화질이 좋고 좀 더 커다란 TV의 수요를 증가시킨다는 빅데이터 분석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외롭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TV라도 틀어놓아야 한다는 거죠. 그때 작고 불품없는 TV는 나를 더 외롭게 만들 뿐입니다. 크고 선명할수록 행복해집니다. 사람들이 욕망하는 건 대형 TV가 아니라 행복인 겁니다.” 넷플릭스는 그런 대형 TV라는 하드웨어를 행복이라는 콘텐츠로 채워주는 공급원이다. 테드는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만 있으면요.” 


콘텐츠 비즈니스란 '미로에서 길 찾기'

넷플릭스의 비버리힐스 오피스는 모든 공간이 큼직큼직한 로스 가토스 본사와 달리 거의 미로 같다. 넷플릭스 직원들조차 스스로를 영화 제목을 따서 <메이즈 러너>라고 부를 정도다. 메이즈 러너는 미로를 달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비버리힐스 오피스가 이렇게 미로처럼 변한 건 원래는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지닌 할리우드에서의 위상이 커질수록 조금씩 옆 사무실로 영토를 늘려간 탓에 결국 이렇게 미로 같은 건물 구조를 갖게 됐다. 2017년에 새 사무실로 이전할 계획이 있긴 하지만 당장은 미로 속을 헤매야만 한다. 


넷플릭스 비버리힐스 오피스의 모습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언제나 예측이 불가능한 속성을 지닌다. 언제 어떤 프로젝트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성공을 확신했던 프로젝트가 실패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우연성에 항상 노출돼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 자체가 미로에서 길찾기에 가깝단 얘기다. 미로를 돌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와 만날지 모른단 얘기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 이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부분을 이끌고 있는 주력 드라마는 <데어데블>과 <제시카 존스>다. 둘 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들이다. 넷플릭스는 마블과 계속 협력해서 마블의 슈퍼히어로들 가운데 아이언 피스트와 루크 케이지까지 드라마화할 예정이다. 토드 사란도스가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중엔 TV판 <어벤져스>라고 할 수 있는 <디펜더스> 시리즈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마블팬들 사이에선 소문난 무성했던 <디펜더스> 제작 계획을 총괄제작자가 직접 확인해준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블 드라마와의 인연도 우연의 결과였다. 마블이 먼저 넷플릭스에 드라마 제작 의사를 타진해오면서 일이 시작됐다. 넷플릭스가 먼저 마블한테 드라마 판권을 요구했던 게 아니었단 얘기다. 결과적으로 <데어데블>과 <제시카 존스>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쇼비즈니스는 예측불가능한 구석이 있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 굴러들어올 수도 있고 반대로 행운이 불운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기술과 예술이란 측면을 넘어 넷플릭스의 로스 가토스 오피스와 비버리힐스 오피스는 사실 하나의 회사로 묶이기 어려운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예측가능성을 선호한다. 반면에 할리우드는 예측불가능성에 익숙해져 있다. 로스 가토스 오피스의 기하학적 구조와 비버리힐스 오피스의 미로 구조는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술은 숫자로 미래를 예측하려들고 예술은 감으로 미래를 예언하려고 든다. 테드는 말했다. “로스 가토스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전세계 최고의 기술 회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버리힐스 사람들은 전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하죠. 오랜 시간 동안의 실험 끝에 둘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넷플릭스의 진짜 성공 비결은

쉬운 일은 아니다. 픽사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소니 같은 실패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소니는 전자사업과 영화음악사업을 함께 영위했지만 끝내 두 사업에서 시너지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원인은 가치 사슬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워크맨이나 DVD플레이어를 만들어내는 전자사업과 영화나 음악을 창조하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서로를 이용하려고만 들었다. 원인은 두 사업 부문이 서로 독립돼 있고 서로 다른 리더쉽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둘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놓고 서로 경쟁하기 바빴다. 적과의 동침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는 프로듀서 앨런 고스는 말했다. “데이터는 큰 자산입니다. 그러나 창작은 데이터가 아니라 능력 있는 프로듀서나 작가들이 하는 겁니다. 넷플릭스가 지닌 빅데이터가 콘텐츠를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데이터는 넷플릭스의 전체 콘텐츠 라이브러리에서 어떤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줄 순 있지만 시나리오의 극적 구성이나 장면의 연출까지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얘기를 닐 헌트한테서도 들을 수 있었다.


“기술은 콘텐츠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데 쓰여야 합니다. 스트리밍 기술 덕분에 넷플릭스의 콘텐츠에는 시간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한 에피소드가 40분일 수도 있고 60분일 수도 있죠. 그렇게 기술 파트가 제한된 벽을 무너뜨려주고 창작자들이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영화나 드라마가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롭고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을 열어준거죠.” 그러고보니 이건 테드가 리드에 대해 말할 때 했던 것과 똑같은 표현이었다. “리드는 제게 창작의 창을 열어줬어요.”


넷플릭스의 진짜 성공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도 통신 기업이 콘텐츠 비즈니스의 결합 사례가 없었던 게 아니다. KT가 싸이더스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엔 카카오가 음악서비스 멜론으로 유명한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KT와 싸이더스의 결합은 실패했다. 기술 조직과 콘텐츠 조직의 서로 다룬 문화가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기술과 예술이 서로 보완해주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은 기술의 장점과 예술의 장점을 결합하는 융합 문화를 꾸준히 발달시켜온 덕분에 가능했다. 넷플릭스에선 기술이 예술을 위해 창을 열어준다. 리드는 테드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비행기가 날기 위해선 모터가 두 개가 필요합니다.” 테드는 말했다. “전 그걸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좋은 코드도 잘 써야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도 잘 써야 합니다. 둘 다 잘 하는 게 넷플릭스죠.” 


전세계 최대의 글로벌 TV 네트워크

지난 1월 6일이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제품 전시회엔 CES 2016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서 리드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130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가 진출한 국가는 이로써 190개 국가로 늘어났다. 지도만 살펴봐도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거의 전세계에서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전세계 최대의 글로벌 TV 네트워크다.


사실 리드는 이런 비전을 진작부터 갖고 있었다. 2011년 퀵스터 사태만 터지지 않았다면 더 빨리 이뤄졌을 일이다. 리드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넷플릭스를 3단계로 발전시킬 비전을 갖고 있었다. 1단계가 DVD였다면 2단계는 스트리밍이고 3단계는 해외 진출이었다. 넷플릭스는 이제 3단계에 돌입한 셈이다. 덕분에 전세계 7000만 가입자들이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들인 <마르코 폴로>와 <나르코스>와 <제인 더 버진>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게 됐다. 그 숫자는 조만간 1억 명을 돌파할 공산이 크다. 조만간 “넷플릭스하자”란 표현이 만국공통어가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넷플릭스의 취향 저격 능력도 전지구적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는 빅데이터들 덕분에 넷플릭스는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꿰뚫어보는 기업이 돼가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전지전능한 권능이다. 넷플릭스는 장차 전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흥행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500억 원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다. <옥자>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프리미어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옥자>가 어느 나라 시장에서 얼마나 흥행할지도 데이터를 갖고 있을 공산이 크다.


넷플릭스 비버리힐스 오피스 취재를 끝내고 LA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미 한국에선 초읽기에 들어간 넷플릭스의 국내 상륙이 미칠 파장을 전망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방송 시장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과장된 우려부터 찻 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다양했다. 넷플릭스가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누구는 넷플릭스를 글로벌 인터넷 방송사라고 불렀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흥행시킨 대박 제작사라도 정의했다. 정작 직접 인사이드에서 들여다본 넷플릭스는 그 이상이었다. 넷플릭스는 기술과 예술의 균형 속에서 미래를 창조하고 있었다. 다음번엔, 리드 헤이스팅스가 타주는 취향 저격 카푸치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이노베이터> 매거진에는 매주 월, 화요일에 혁신경영인과 혁신기업에 관한 인사이트를 연재합니다. 다음화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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