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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사과 한 조각

푸드 업사이클링과 지속 가능한 식탁의 이야기

by 인사이트뱅크

자연의 신선함이 가득한 청송 사과

아내가 새로 주문한 햇사과를 아침 식탁에 올려놓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볕에 물기 맺힌 빨간 껍질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자, 계절의 신선함과 자연의 숨결 한 조각이 그대로 식탁 위에 놓인 듯하다. 사과를 채 베어 물기도 전에 달콤한 향이 먼저 올라왔다.

몇 년 전 경북 경주에서 시작해 영주와 청송 일대를 며칠간 둘러본 적이 있다. 경북 사과가 유명한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국도변에 줄줄이 늘어선 사과 농장들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청송의 한 농장에 들러 사과를 사 먹은 뒤로, 우리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택배로 사과를 주문해 집에서도 편하게 가을의 맛을 즐기고 있다


최상품 사과 VS 못난이 사과

그런데 아내는 이번에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이왕이면 좋은 걸 먹어보자는 심산에 그동안은 색이 곱고 알이 굵은 ‘최상품 사과’만을 고집해 왔는데 올해는 ‘못난이 사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모양이 고르지 않고 크기가 제각각인 사과를 주문한 것이다. 처음 박스를 열었을 때는 살짝 낯설기도 했지만, 이내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그러하듯 과일 또한 겉모습이 전부일 리 없다.

기분 탓일까? 막상 먹어보니 향이 더 짙고 과즙도 더 풍부한 느낌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작은 차이들을 두고 ‘못난이’라고 부르며 결점처럼 여기는 세태가 야속하기만 하다. 특히나 요즘에는 이런 차이를 인정하며, ‘다른 것’을 두고 결코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다양성의 시대 아닌가.

들리는 말로는 최근에 일부러 못난이 과일을 고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구매평을 찾아보니 ‘못난이 과일이 더 맛있다’거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철 과일을 즐길 수 있다’며 외형보다 내용, 모양보다 가성비를 우선하는 합리적인 소비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는 듯하다.

덕분에 농산물 구독 서비스나 산지 직송 플랫폼에서는 못난이 과일이나 채소를 별도 상품 카테고리로 운영하며 수요를 넓혀가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 하나가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버려지는 과일의 양을 줄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더 이상 결점으로 바라보지 않는 생태 감수성이 착한 소비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음식물 쓰레기

못난이 과일과 채소는 그냥 버려지거나 주스와 잼을 비롯한 가공식품의 원료로만 사용되었다. 모양이 유통 기준에 맞지 않고,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식탁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쓰임새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잘못된 인식과 소비 습관 탓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예전 어른들은 끼니때마다 “먹는 거 버리면 죄받는다.”고 밥상머리 교육을 하며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지금은 냉장고에 들어온 음식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일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며 풍요와 편리함 속에서 음식을 대하는 가치와 태도가 분명 달라졌다. 이제는 버리는 데 대한 죄책감마저 사라진 듯하다.

자연이 주는 수많은 선물 중에서도 먹거리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먹이사슬은 생태계를 이루는 근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태계의 최정점에 우뚝 선 인간의 이기심은 음식물 쓰레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세상 어떤 존재도 인간만큼 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자연의 수용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소비 방식은 결국 자연의 순환을 교란시키고, 우리가 속한 생태계 전반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를 사는 오늘날, 음식물 쓰레기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무거운 현안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막대한 양의 음식물이 버려지고, 이를 처리하는 데 큰 비용과 에너지가 든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가 분해될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한 온실 효과를 일으키며 기후 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 어른들이 밥상머리에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결국 자연에 대한 존중과 감사였던 것이다.


‘푸드 업사이클링’으로 선순환하는 새로운 먹거리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업사이클링’은 이제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플라스틱이나 종이, 금속 같은 비유기적 자원에만 적용되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음식물도 충분히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푸드 업사이클링’은 버려질 운명이었던 식재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맥주와 두부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맥주박과 비지를 과자나 빵 등의 원료로 다시 사용하거나, 높은 영양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쉽게 버려졌던 과일과 곡물의 껍질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가공식품을 만드는 식이다. 특히 유통이 어려운 규격 외 농산물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일은 푸드 업사이클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푸드업사이클링.jpg 미국에서는 푸드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인증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푸드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가업과 스타트업 모두 식품 폐기물 감소와 친환경 제품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업사이클링 식품 시장 규모는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푸드 업사이클링 시장 규모는 무려 11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친환경과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숫자는 현실로 증명될 것이다.

이처럼 푸드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소비 경험과 비즈니스 모델, 나아가 지속 가능한 식품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전이다. 아직은 낯설지만, 먹거리 소비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바꾸는 이러한 시도는 사람과 자연을 모두 살리는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선택이 만드는 지속 가능한 식탁의 미래

못난이 과일 한 알을 소비하는 일은 아주 소소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치가 담겨 있다.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버려지는 과일의 양을 줄이며, 생태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까지 모두 포함된다. ‘먹기 좋은 떡’, ‘이왕이면 다홍치마’와 같은 기존의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식탁은 조금 더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아침 햇살 아래 한입 베어 문 못난이 사과의 상큼함과 달콤함은 우리가 어떤 소비자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자연의 질문처럼 다가온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선택은 결국 자연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다. 자연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을 우리의 식탁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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