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보트’ 논란이 던진 ‘진짜 친환경’에 대한 질문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정리한 버킷리스트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자연스레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소소한 취미나 여행 계획을 적어두며 일상 속의 기쁨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인생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거대한 목표나 오랫동안 품어온 열망을 담아 두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버킷리스트라는 상상 속 미래는 오늘의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영감이 되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다독여 주는 힘이 된다.
‘크루즈 여행’은 내 버킷리스트에 올려 둔 즐거운 상상 중 하나다. 특히 유럽 지중해의 반짝이는 물길을 따라 하얀 섬과 유서 깊은 해안 도시 들을 둘러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즐겁다. 선상에서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파티를 즐기는 장면이 인상 깊은 어린 시절의 TV 외화 시리즈 <사랑의 유람선(The Love Boat)>은 그런 낭만을 나의 마음속에 더욱 짙게 새겨 주었다.
굳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여행이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크루즈 여행이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단거리 노선이나 비교적 저렴한 상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덕분에 크루즈는 더 이상 일부 계층만의 특별한 여행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일상의 여행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환경재단에서 운영하는 ‘그린보트’는 이러한 크루즈의 낭만에 환경을 주제로 한 학습과 교류의 의미를 더한 새로운 형태의 공익 프로젝트다. 선상에서는 환경 관련 전문가들의 강연과 문화예술 공연, 국제 연대 프로그램 등이 일정 내내 이루어진다. 참가자들은 바다라는 열린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지구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승선해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린보트의 매력을 더해 준다. 익숙한 얼굴들과 같은 공간에서 강연을 듣고, 식사를 나누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은 참가자들에게 잊기 힘든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린보트는 한동안 내 버킷리스트의 현실적인 실행 도구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기사 한 줄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크루즈는 움직이는 초거대 탄소 배출원
크루즈가 일반 여객선은 물론 비행기보다 훨씬 더 많은 탄소와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는 내용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냉난방, 오락 시설, 대형 수영장, 식당, 공연장과 같은 시설들이 항해 내내 가동되면서 에너지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그동안 내가 동경해 온 낭만의 바다 뒤에 이처럼 거대한 환경 비용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곧 그린보트 논란으로 확산됐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크루즈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교통수단인데 이를 환경 프로젝트로 포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라고 비판했다. 여행에 초대되었던 몇몇 셀럽들은 탑승을 취소했고, ‘그린보트는 그린워싱인가, 아니면 새로운 환경 교육 플랫폼인가’라는 논쟁이 사회적 공방이 되었다.
기업 경영의 새로운 국제표준으로 제시된 ESG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 즉 환경(E) 보호, 사회(S) 공헌, 지배구조(G) 개선을 중요한 경영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환경 문제에 민감해지면서, 어느새 친환경과 탄소중립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제 기업들은 ‘돈을 잘 버는 것’만큼이나 ‘지구를 잘 지키는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ESG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의무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친환경 트렌드를 악용하는 그린워싱 또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 노력은 뒷전인 채 겉으로만 친환경적 이미지를 내세워 녹색으로 위장하는 행위는 결국 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생산 과정에서는 여전히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면서도 포장지만 재활용 소재로 바꾸어 ‘친환경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경우가 있고,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고 강조하면서도 기준 연도와 계산 방식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실제 효과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기업은 제품에 소량의 식물성 원료를 넣고서 ‘자연 유래’, ‘에코 프렌들리’라는 문구를 크게 내세우지만 정작 나머지 성분은 환경에 유해하거나 분해되지 않는 원료로 구성된 경우도 있다. 일부 패션 브랜드는 재활용 원단을 사용한 ‘친환경 컬렉션’을 선보였다며 홍보하지만, 전체 생산량 중 해당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수건을 재사용하면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비용 절감을 위한 포장일뿐, 오히려 에너지 과다 사용이나 불필요한 시설 확장으로 더 큰 환경 부담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친환경을 흉내 내는 그린워싱 사례들은 소비자가 ‘착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지만, 실질적인 환경 개선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친환경 담론이 마케팅 언어가 되어가면서, ‘기업의 선의’를 믿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선의’를 마케팅 자산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보트의 그린워싱 논란이 커지자 환경재단은 반박을 내놓았다. 2,500여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각자 항공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할 경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고려하면 크루즈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주장과 함께, 환경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이 얻게 되는 인식 제고 효과는 단순한 탄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근거의 타당성을 따지고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결국 이 논란은 단순히 크루즈가 친환경인지 아닌지를 묻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쉽게 소비하고 또 얼마나 손쉽게 믿어버리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실 이러한 논란이 단체나 기업의 문제로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들 역시 일상에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린워싱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겠다며 자주 쓰지도 않을 텀블러를 여러 개 구입하거나 세척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물과 세제를 소비하는 경우, 친환경 소재의 옷과 가방을 구매하며 스스로 환경보호 실천자로 여기지만 사실은 ‘덜 소비하는 것’이 더 친환경일 수 있는 경우,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친환경 감성을 더한 고가의 디자인 제품을 선택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우 들이 대표적이다.
친환경은 어느새 우리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지만, 때로는 인간의 욕망과 ‘착한 소비자’로 보이고 싶은 심리가 뒤섞이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린보트 논란을 계기로 나는 지금 현실적인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크루즈가 지닌 환경적 부담을 알게 된 이후에도 동일한 선택을 고집하는 게 맞은 일인지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푸른 지중해를 크루즈로 누비는 화려한 풍경을 상상하다가도 그 뒤를 따르는 어두운 탄소 그림자를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생태적인 삶이란 결국 낭만과 현실,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더 나은 선택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인 태도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조금씩 방향을 조정하려는 성찰의 태도가 아닐까.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이 바다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도 변함없다. 동시에 바다를 여러 방식으로 즐기고 싶은 욕망 또한 여전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낭만 속에 숨어 있는 책임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며 실천하는 용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