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바늘에서 배우는 생태모방과 청색기술
이즈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옷에 달라붙은 풀씨를 떼어내는 게 적잖이 번거로운 일이다. 스웨이드 소재의 운동화는 물론 바지 밑단과 양말, 심지어는 언제 스쳤는지 모를 소매나 등까지 납작하고 뾰족한 모양의 도깨비바늘이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쓸어내면 잘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손끝에 상처가 생기기 쉬운 탓에 손가락으로 일일이 떼어내야만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늘 반복하는 일이지만, 손톱 끝으로 작은 씨앗 하나를 집어 들고 가만히 바라보니 ‘도깨비바늘’이라는 이름이 정말 그럴싸하게 다가온다. 짙은 갈색의 납작한 씨앗 머리에는 정말 도깨비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뾰족한 바늘이 솟아있다. 그런데 그 바늘 끝을 자세히 살펴보면 잔가시처럼 생긴 수많은 갈퀴가 역방향으로 붙어있다. 마치 낚싯바늘과 같은 구조여서 어딘가에 한번 바늘이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다. 실 한 올, 털 한 가닥에도 정확히 걸릴 만큼 정교하다.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풀씨 하나에 이렇듯 정교한 구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놀랍기만 하다.
이런 구조 덕분에 도깨비바늘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어쩌면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는 번식의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과 동물의 몸을 빌려 수많은 생명을 나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존 영역을 넓힌다. 동물 입장에서는 귀찮고 번거롭게만 느껴질 이 집요함이야말로 생존을 향한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는 1940년대 스위스의 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라는 사람이 사냥을 나갔다가 옷에 붙은 도꼬마리 열매(창이자)의 갈고리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벨크로란 명칭도 벨벳 천을 뜻하는 프랑스어 ‘벨루르(velours)’와 갈고리를 뜻하는 ‘크로셰(crochet)’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고 한다.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는 비슷한 숙명과 전략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여서 옛사람들은 이들을 뭉뚱그려 ‘도둑놈’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성가신 도둑놈을 그냥 허투루 넘기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도둑놈이 주는 불편함의 원인에서 착안해, 오늘날까지도 인류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발명품으로 그 생명력을 확장시켰다. 자연이 보낸 불편한 초대장은 그렇게 인간의 도구로 번역되었다. 문제를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 숨어 있던 구조를 읽어낸 결과였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가 겪는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는 설계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실패한 방식은 버리고 생존을 위한 효율적인 구조만 남기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해법들을 본능적으로 모색해 온 결과다. 인간은 이제야 그 답안지를 조심스레 들춰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연의 해법을 읽어내는 방식을 우리는 ‘생태모방(biomimicry)’이라 부른다. 흔히 자연의 모양을 그대로 흉내 내는 기술쯤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생태모방의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자연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순서로 해결하며, 어디까지 진화하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생태모방이 자연의 설계도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기술적 수단의 출발점이라면,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은 그 아이디어를 통해 인류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철학적 결과물이다.
병원에서 맞는 주사의 바늘은 모기 주둥아리의 기다란 대롱을 연상하게 한다. 모기의 침은 놀라울 만큼 가늘고 정교하다. 피부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해 통증을 줄이는 구조다. 이 원리를 본떠 만든 무통 주삿바늘은 자연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해법을 뒤늦게 모방한 사례다.
연잎이나 토란잎 위의 물방울도 마찬가지다. 물이 잎에 스며들지 않고 동그란 구슬처럼 굴러다니다가 먼지를 데리고 떨어진다. 일부러 닦지 않아도 연잎이 늘 깨끗한 비결이다. 창문이나 자동차 유리의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세제와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만, 자연은 애초에 오염이 머물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는 애초에 매끄러운 유선형 몸매를 가졌지만, 그 피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날카로운 이빨 같은 미세 돌기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 반전을 품고 있다. ‘리블렛(riblet)’이라 불리는 이 정교한 홈들은 물의 저항을 잠재워 상어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가장 빠르게 헤엄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자연의 설계도는 기록을 앞당기는 전신 수영복과 비행기의 연료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재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화학 약품 없이도 세균 번식을 막는 항균 필름이 되어 우리 일상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상어의 거친 피부는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깎아낸 완벽한 정답지이며, 이를 모방하는 청색기술은 인간의 혁신이 어떻게 생태계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유행하던 ‘녹색기술’이 환경오염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청색기술은 자연처럼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만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만들어도 되는지를 묻는 기술이다.
자연의 형태를 복제하는 단계를 넘어 그 순환 원리를 통째로 이식한 청색기술의 정점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 센터’에서 찾을 수 있다. 건축가 믹 피어스는 외부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도 서늘함을 유지하는 흰개미 집의 비밀에 주목했다.
흰개미는 뜨거운 공기가 위로 솟구치는 대류 현상을 이용해 집 꼭대기에는 환기 굴뚝을, 바닥에는 찬 공기 흡입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이 시스템을 건축 구조에 응용하여 전기를 소모해 찬바람을 만드는 대신 자연의 숨통을 열어주는 환기 시스템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동일 규모 빌딩보다 에너지를 85% 이상 절감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기능 모방을 넘어, 자연의 저에너지 순환 방식을 인간의 삶에 완벽히 통합시킨 청색기술의 상징으로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현관 앞에서 옷소매에 붙은 도깨비바늘을 바라본다. 나의 평온한 산책길에 끼어든 불청객의 민낯과 자연의 오래된 지혜가 응축된 작은 설계도의 위용이 절묘하게 포개져 있다. 떼어내야만 하는 번거로움과 배워야 할 지혜가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오래 버티는 길을 택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기에 앞서 흐름을 바꾸고 구조를 조정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도깨비바늘이 달라붙는 방식도, 흰개미 집이 숨 쉬는 방식도 모두 같은 원리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힘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청색기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기술의 진보란 결국 무엇을 더 갖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덜 해도 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더 강한 냉방 장치를 만드는 대신 공기의 길을 바꾸는 것처럼 이미 작동하고 있는 자연의 시스템에 더욱 세밀하게 집중하는 관점의 전환이 중요하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삶도 마찬가지다. 생태모방과 청색기술은 연구소 안에 머무는 어려운 이론이기 전에,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태도일 수 있다. 불편함을 즉시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한 번쯤 들여다볼 질문으로 남겨두는 일, 문제를 덮어버리기보다 그 안에 숨은 구조를 읽어보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산책길에서 무심코 지나친 풀 한 포기와 옷소매에 붙은 작은 씨앗 속에 어쩌면 가장 혁신적인 미래 기술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답안지를 내밀고 있었다. 바쁘게 재촉하는 발걸음과 늘 앞서가는 시선 탓에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