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의 값

‘가짜 거위털’ 논란보다 중요한 새로운 ‘선택’의 문제

by 인사이트뱅크

두 개의 뉴스와 하나의 질문

유난스러웠던 지난여름의 무더위와는 다르게 봄날처럼 포근한 겨울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극강의 한파가 몰려온다는 예보가 들려온다. 사실 한여름과 한겨울의 최고, 최저 온도 차가 무려 4~50도에 이르다 보니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옷차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아주 현실적인 문제기도 하다.

때마침 서로 다른 방향의 뉴스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구스다운 사용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동물권과 기후 부담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다. 더 이상 거위의 깃털로 따뜻함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우리의 오래된 선택에 조심스러운 쉼표를 찍는 듯 보였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불거진 ‘가짜 거위털’ 논란이다. ‘거위털 100%’, ‘프리미엄 구스’라는 문구로 판매되는 패딩들의 거위털 함량 표시가 실제와는 달랐다고 한다. 고가의 제품임에도 겨울철이면 어린 학생들이 마치 교복처럼 즐겨 입는 패딩 브랜드여서 더욱 실망이 크다.

다음날 출근길을 대비하기 위해 옷장 한구석을 그득하게 차지하고 있던 다운 점퍼를 꺼내 들었다. 여전히 가볍고 포근한 느낌이다. 그러나 두 개의 뉴스가 동시에 스치는 순간, 이 옷의 온기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동안의 ‘선택’에 대한 ‘대안’과 무너진 ‘기대’와 ‘신뢰’의 문제가 같은 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따뜻함을 당연하게 여겨왔을까.


깃털 뒤에 숨겨진 풍경을 떠올리는 일

거위의 가슴털을 충전재로 넣은 구스다운은 오랫동안 겨울 의류의 정답처럼 여겨져 왔다. 가볍고, 따뜻하고,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모든 영역의 제품과 서비스가 그러하듯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는 이 모든 장점을 상징적으로 요약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단어가 너무 쉽게 신뢰를 대신해 왔다는 점이다.

이번 허위 표기 논란은 그 신뢰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효용성을 따져보기 이전에 브랜드와 가격이 모든 걸 증명해 주길 기대하는 우리의 소비 습관이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구스다운의 생산 과정은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살아 있는 거위의 털을 반복적으로 뽑는 잔인한 방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동물의 생명은 관리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될 뿐이다. 물론 모든 다운 제품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증 제도도 있고, 개선된 사육 환경도 존재한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그 차이를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그동안 동물 깃털의 보온성에는 민감했지만 그 깃털의 출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동물권’이라는 개념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창한 철학과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풍경을 연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식탁으로 이어지는 불가능한 연상

이렇듯 불가능에 가까운 연상은 옷장에서 멈추지 않고 식탁으로 이어진다. 고기 소비 역시 이미 수렵 시대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오랜 습관이자 생존 방식이다. 그래서 이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뿐더러 간간이 들려오는 비건이나 대체육 이야기가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단 동물권 문제뿐만 아니라 동물 사육에서 비롯되는 메탄 가스 배출 등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포 배양 기술로 식용 고기(대체육)를 대량 생산하는 일이 곧 현실화되고, 산업화될 모양이다. 이제 고기 소비도 새로운 차원에서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짜’보다 중요한 ‘선택’의 문제

구스다운을 대신하는 비건 충전재나 화학 소재의 섬유, 실제 동물 고기를 대신하는 대체육은 사실 ‘대안’이 아니라 ‘가짜’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의 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선택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거위털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볍고 따뜻할 수 있다면, 실제 고기가 아니어도 맛과 식감은 물론 영양까지 충족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이렇듯 새로운 일상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분명 자연과 생명을 덜 해치는 생태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구호처럼 날 선 ‘윤리적 결단’을 강요하는 방식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사실 모두가 비건이 될 필요도 없고, 모든 다운 제품을 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새로운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균형이 중요하듯 그동안 인류가 구축하고 유지해 온 관습과 산업 생태계의 안정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극단적인 결단이 아니라 결국 방향의 문제다. 덜 사고, 더 오래 입고, 더 나은 선택을 통해 끊임없이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문명의 진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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