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새로운 일상’의 생태학

<일상의 생태학> 연재를 마치며

by 인사이트뱅크

도둑처럼 찾아온 새로운 일상

‘뉴노멀’이라는 말이 이제는 흔한 일상어가 되었다. 최근 들어 뉴스에 등장하는 빈도 역시 확실히 늘었다. 환율이나 기름값, 금값 등의 새로운 흐름을 설명하며 이 표현을 언급하기도 하고, 새로 시행되는 제도나 정책 앞에 수식어처럼 붙기도 한다.

뉴노멀은 코로나 시기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비대면 수업, 재택근무, 언택트 소비처럼 갑작스럽게 달라진 생활 방식과 기준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이 단어를 인용했다. 그리고 뉴노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말들은 정말 마법처럼 우리의 새로운 일상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이제는 기후 재난도 뉴노멀’이라는 식의 부제를 단 기사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표현은 마치 시대의 유행어처럼 소비되었다.

그런데 폭염과 폭우, 산불과 홍수가 반복된다는 이유에서 재난까지 ‘새로운 일상’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마뜩지 않다. 기후 재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원인을 묻기보다 그 결과에 순응하는 쪽으로 무기력하게 기울고 말 것이다.

뉴노멀은 코로나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찾아온 듯 보이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결코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다. 모든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있었고, 언제 현실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었다.


팬데믹은 ‘연결의 과잉’이 만든 균열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주변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멈춰 서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이동과 만남이 제한되고, 공장과 상점의 불이 꺼지고, 물류가 끊겼다. 처음에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이 예고도 없이 우리 삶을 침범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다른 그림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마치 인간과 자연 사이의 안전망이 무너진 자리에 드러난 환부처럼 보였다. 야생과 도시, 생태와 시장, 지역과 세계를 무분별하게 연결해 오면서도 그 속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연결의 취약성’은 세계 산업 구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곳곳의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섰고, 희토류처럼 특정 지역에 의존하던 자원의 공급이 흔들리면 전 세계 산업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은 겉보기에 아주 정교했지만, 작은 충격과 변수에도 전원이 꺼지는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다.

바이러스의 확산과 산업의 붕괴는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원리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촘촘해진 연결망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바이러스와 경제적 충격을 순식간에 증폭시켰다. 물론 백신 개발과 치료제 보급 과정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연결망은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연결 그 자체가 아니라, 연결을 설계해 온 방식에 있었다. 인류가 속도와 효율을 앞세워 성장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동안, 생태적 적응과 회복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팬데믹은 결국 이러한 성장 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린 경고였다. 뉴노멀 또한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인 이후 변화된 일상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뉴노멀은 절대 유행어처럼 가벼울 수가 없다.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일상에 스며든 변화, 당신의 태도를 묻다

지금까지 약 6개월 동안 이어진 서른 편의 <일상의 생태학> 연재글은 뉴노멀이라는 이름 아래 흩어져 있던 변화의 장면들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거대한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온 우리의 식탁과 옷장, 정원의 꽃과 나무, 마을과 하천, 골목길 풍경,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일상적인 순간을 담고자 했다.

연재의 한 갈래는 먹고 쓰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간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 라면 한 그릇, 고등어 한 토막, 못난이 사과 한 조각과 여름에 도착한 귤 한 상자, 그리고 프리미엄 구스다운에 이르기까지. 단지 무엇을 먹고 입을 것인가를 넘어, 우리가 어떤 속도와 기준으로 자연을 소비해 왔는지를 묻고 있다.

또 다른 갈래는 삶의 공간과 생활 방식에 대한 탐색이다. 살아 숨 쉬는 집으로서의 한옥, 사라진 전파사, 대물림하며 쓰던 고가구와 같이, 편리함과 효율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존재들에 대하여 살피고 있다. 이는 단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조건이 어디에서 무너졌는지를 되짚는 일이다.

그리고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도 주목해 왔다. 도시 비둘기와 고라니, 길고양이와 풀벌레, 귀신새와 반딧불이, 사라진 부들과 다시 밝아진 골목길은 모두 인간 중심의 공간 설계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생명들의 삶을 밀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들은 생태 위기가 먼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공간에서 이미 진행 중인 현실임을 드러낸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연결과 그 비용을 다룬 이야기들을 더했다. 희토류와 반도체, 디지털 공해, 크루즈 관광과 그린워싱 논란은 뉴노멀과 산업 기술이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 모든 소재를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결국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

새로운 기준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과연 불가피한 조건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과 대안이 가능했는지를 따져볼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흘려보낸다. 코로나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마저 어느새 아득한 과거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는 생태적 삶을 이야기할 때 거창한 윤리나 과학적 근거의 해법부터 떠올리기 쉽다. 물론 친환경 기술과 대체 에너지, 새로운 제도와 정책들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일상의 생태학>이 반복해서 확인해 온 사실은 조금 다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거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일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생태적 삶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해지겠다는 다짐은 또 다른 부담과 위선을 낳기 쉽다. 그래서 <일상의 생태학>은 그동안 ‘정직한 선택’을 강조해 왔다. 결국 생태적 삶이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일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 연재는 손쉬운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그 기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의 삶 한가운데로 되돌려 놓고자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개한 서른 가지의 이야기들은 변화의 시대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기록이다.

이 글을 덮는 순간에도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잠시 멈춰 서서 같은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태적 삶이란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을 어제와 다르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가는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믿어보고자 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일상의 생태학>을 읽고, 정성껏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여주신 많은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저 역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더 고민하고 더 깊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새로운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인사이트뱅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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