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고라니에 대한 작은 묵상
겨울 저녁 어스름은 유난히 빠르고 짙다.
몇 년 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퇴근 무렵이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느슨해진다. 뜨거운 바람으로 차갑게 식은 자동차 앞유리를 데우며 라디오를 켜자, 때마침 하루의 끝자락을 정리하듯 낮고 느린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온몸의 감각을 소리에 집중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이윽고 마을 어귀를 지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흠칫 놀란 나는 반사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앞을 살폈다. 그런데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고라니는 오히려 헤드라이트 불빛을 등지고, 내가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를 완전히 멈춰 세운 뒤 헤드라이트를 껐다. 좁은 시골길에 환한 불빛이 사라지자 팽팽하게 조여 오던 긴장도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고라니는 얼마간 더 앞으로 내달리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도로 옆 산비탈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몇 번의 가벼운 도약에 이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질 때까지 나는 불 꺼진 차 안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겨울은 생명들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푸른빛이 사라지고, 열매마저 자취를 감추면 특히 야생동물들은 더 멀리, 더 오래 움직여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 인간의 문명과 부딪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공간과 공간을 잇는 도로는 이들의 삶 앞에 놓인 높고 넓은 단절의 벽과도 같다. 심지어 수많은 생명들이 이곳에서 뜻하지 않는 죽음을 맞기도 한다.
‘로드킬’이라는 단어와 함께 최근 들어 자주 언급되는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예고 없이 도로 위로 뛰어들어 운전자를 놀라게 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며, 밤마다 울려 퍼지는 기괴한 울음소리로 묘한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고라니 앞에 ‘유해야생동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았다.
그런데 시선을 넓혀 보면 이 작은 사슴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인류가 보호해야 할 귀한 존재라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한때는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살던 종이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남획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는 고라니가 야생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보통 ‘고라니’라는 토박이말로 부르지만, ‘물사슴(Water deer)’이라는 예쁜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주로 물가와 습지 주변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뿔이 없는 대신 송곳처럼 길게 자란 송곳니는 방어를 위한 생존 전략의 흔적이라고 한다. 번식력 또한 매우 강해 봄이면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문제는 이 강한 생명력이 인간의 개발 속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시작된다. 습지가 논으로, 논이 다시 도시로 바뀌는 과정이 거듭되면서 공간은 무수한 도로를 경계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들의 삶 또한 점점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소통과 연결의 상징인 ‘길’이 누군가에게는 단절과 죽음의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도로와 그 위를 지배하는 방향 그리고 속도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다. 우리는 그 도로를 가로질러, 끊어진 야생의 공간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라는 이름의 다리와 굴을 만들기도 한다. 이 또한 인간의 기준에 따른 처방이기는 하나 그나마 야생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것 같아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로드킬은 의도하지 않은 ‘작은 사고’에 지나지 않지만, 실상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문명과 자연의 ‘거대한 충돌’이기도 하다. 그 어느 쪽도 악의가 없는 탓일까? ‘거대한 충돌’을 대하면서도 사람들의 태도는 무심하기만 하다. 그러나 무심함이 반복되면 구조가 되고, 구조는 곧 일상이 된다. 그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늘 말이 없고, 우리는 그 침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행 중 야생동물을 발견해도 급하게 핸들을 틀거나 급제동을 하기보다는 그대로 충돌하는 편이 2차 사고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운전자의 안전만 놓고 보면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마음 한편은 오래도록 불편했다. 그저 도로 위에서 ‘그런 만남’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넓은 국도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새로 설치한 교통표지판을 발견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날마다 오가는 길이고, 밤이면 전광판처럼 환한 불까지 들어오는데도 그동안 ‘무심했던 탓’에 정확히 언제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삼각형에 빨간색 테두리를 한 표지판은 경고의 신호다. 그 속에는 고라니로 보이는 동물이 앞다리를 들고 도약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로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다. 처음에는 사슴을 떠올렸지만 나도 모르게 고라니를 의식해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고라니의 모습이다.
이 표지판이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를 야생동물을 보호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그들로부터 운전자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라는 경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표지판 앞을 지날 때면 어느 겨울밤, 헤드라이트 불빛을 등지고 달리던 고라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브레이크 페달을 지긋이 밟으며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로드킬은 어쩌면 동물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속도가 남긴 잔인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빨라서 보지 못한 것, 너무 바빠서 돌보지 못한 것들이 길 위의 생채기로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잠시 멈추거나 느리게 가면 새롭게 보이고 달리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라니가 멸종위기종에 희귀종이라며 귀한 대접을 받는 모양인데, 한국고라니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들 이민이라도 가려고 줄을 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