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고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함께 말할 수 있다면”
조직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원래 그래”
“다들 불편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는 그냥 지나칩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지금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해봤 자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일이 엉키고, 관계가 틀어지고, 성과가 흔들릴 때 비로소 우리는 되묻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쳐버린 후입니다. 그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 만들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그걸 함께 말할 수 있는지, 그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가 우리에게 있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마케팅 팀의 상황
S사 온라인 마케팅팀에서도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겉보기엔 별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온라인 광고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세일즈 프로모션도 계획대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채널 별 SNS 캠페인도 정기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직문화 진단 결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서적 신뢰, 심리적 안전감, 수평 소통, 팀 효과성 모두 전사 평균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이에 조직개발팀은 나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익명 보장을 전제로 팀원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마케팅실의 팀장님끼리는 소통이 되는데, 우리는 맥락을 잘 모른 채 일을 시작해요.”
“역할이 애매해서, 내 일이 아닌 걸 해도 보상도 인정도 없어요.”
“서로를 존중하기 어려워요.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느낌이에요.”
본부장은 말했습니다. “프로세스는 정비했는데, 왜 연결이 안 되는 걸까요?”
팀장은 말했습니다. “소통이 안 되고, 감정의 피로가 쌓여 있습니다.”
구성원은 말했습니다. “일은 잘 굴러가는데, 점점 무력해집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간극이, 조직을 멈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기술적 문제와 적응적 도전
하버드대 리더십 연구자 론 하이페츠(Ron Heifetz)는 조직이 겪는 문제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기술적 문제(Technical problems)는 복잡은 하지만 원인도 해법도 명확하며, 기존의 절차나 전문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시스템 장애, 데이터 오류, 업무 매뉴얼 미비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반면 적응적 도전(Adaptive challenges)은 문제의 정의 자체가 엇갈리고, 해석과 감정,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정해진 해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뢰 부족, 협업 갈등, 감정적 소진, 일의 의미 상실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오늘날 조직이 마주한 많은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얽힌 복합적 상태입니다. 성과는 창출하고 있지만 사람은 지치고, 회사 차원의 ‘함께 일하는 방식’도 있지만, 서로 지지하고 협력하는 행동의 약속은 문서에만 존재할 뿐, 작동하지 않습니다.
S사 온라인 마케팅팀도 그랬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관점과 감정을 들을 수 있는 구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멈춰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회의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한테 배우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 협업할 수 있을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듣고 싶어요”
그 순간, 한쪽 방향이었던 보고와 피드백이 서로 배우는 대화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새로운 과제
이 책은 대화의 기술을 다룹니다. 단순한 말하기 스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
기존 피드백은 '가르치고-배우는' 일방향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로 배우는' 양방향 관계를 제안합니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대화 말입니다.
이 책이 다룬 것은,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진심을 나누는 말의 태도와 관점, 그리고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입니다. 말은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기대를 전제로 질문하기,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요청하기, 조언과 비판을 배움으로 바꾸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소통 스킬 향상을 넘어서,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관계로 변화하는 실천을 위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팀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팀 전체가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서로 배우는 대화가 조직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구조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일부 챕터(예: 피드백을 잘 구하는 법)에서 그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팀 전체가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 대화’를 설계하고, 지속 가능한 문화로 가져갈 것인가까지는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건 다음 책에서 대화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이제, 당신의 대화가 다음을 바꿉니다
우리는 일로 연결되고, 협업은 프로세스로 이루어지지만, 관계는 대화로 만들어집니다. 말은 반복될수록 팀의 일하는 방식이 됩니다. 구성원 간의 기대와 이해도, 결국 말의 흐름 속에서 형성됩니다.
그렇게 대화는,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바람직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적응적 도전 앞에서는, 누군가 답을 주는 대화가 아니라, 모두가 질문하고, 서로를 듣고, 함께 의미를 다시 구성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 시작은 특별할 필요 없습니다.
주저하던 질문 하나,
꺼내지 못한 감정 하나,
한 번 더 기다려주는 침묵 하나,
이런 작고 조심스러운 말들이 반복될 때,
그것은 조직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연결이 됩니다.
문제를 고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모습을 말할 수 있는 대화,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서로에게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는 그보다 훨씬 오래 일의 방식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의미를 창조하게 합니다.
이제, 그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
당신의 질문이 연결을 만들고,
그 연결이 누군가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