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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Feb 14. 2019

천사는 어쩌다 날개를 갖게 되었나?(2)

천사가 등장하는 그림 감상하기



신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나 그리스도교 그림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아기는 하나일 때 푸토(putto), 여럿일 때는 푸티(putti)라 불린다(왼쪽 그림 E). 푸토가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면 이는 신화 속의 큐피드일 테고.


뿔고동을 불며 비너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푸티들이 관능적인 비너스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맨 가운데 푸티계의 일진처럼 보이는 녀석의 표정이 재미있다. 마지못해 천사의 소임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천사도 직업이면 힘든가 보다.




고대 작품에서 천사는 일반적으로 성인 남성으로 묘사되어왔지만 12세기에 처음으로 아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경엔 어디에도 아기 천사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천사의 순수함을 극적으로 드러내는데 아기만큼 적절한 대상이 없었기에 화가들이 창조해 냈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더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15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여성의 이미지로도 묘사된다.


지금까지 보았던 신화 그림 속의 큐피드, 성서화 속의 대천사인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그리고 푸티들은 비교적 우리가 가진 일반적 천사의 모습과 가깝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 이전에 그려진 천사들은 우리의 인식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서기 4세기 후반 무렵 천사도 계급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이후 약 6세기 초반경에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자에 의해 천사 계급론(De Hierachia Celesti)이 완성된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디오니시우스라는 필명을 쓴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계급론을 주창했는데 천상의 천사들이 총 세 개의 품계와 각각의 품계에 3개의 하위 계급, 총 아홉 개의 위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The Assumption of the Virgin(1475-6) by Francesco Botticini / National Gallery London


천사의 계급은 하느님 가장 가까이에 서는 최고 서열인 1품 천사 세라핌으로부터 케루빔, 쓰론, 도미니온, 파워, 오토리티어즈, 프린시펄리티, 아크엔젤, 엔젤로 이어진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보티치니는 천사 계급론의 영향을 받아 <성모의 피승천>에 천사의 계급을 세 개의 계단으로 나누어 표현하였다.


워낙 생소하고 복잡해서 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상급]

제1계급: 치품 (熾品, 치천사, Seraphim, 세라핌)

제2계급: 지품 (知品, 지천사, Cherubim, 케루빔)

제3계급: 좌품 (座品, 좌천사, Thrones, 트론즈)


[중급]

제4계급: 주품 (主品, 주천사, Dominions, 도미니온즈)

제5계급: 역품 (力品, 역천사, Virtues, 버추즈)

제6계급: 능품 (能品, 능천사, Powers, 파워즈)


[하급]

제7계급: 권품 (權品, Principalities, 프린시펄러티즈)

제8계급: 대천사 (大天使, Archangelus, 아크엔젤스)

제9계급: 천사 (天使, Angelus, 엔젤스)


앞서 이야기한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린 가브리엘을 포함한 대천사 미카엘, 라파엘이 바로 아크엔젤의 위계다. 대천사라고 해서 높은 계급일 거라 생각했지만 디오니시우스의 천사 계급론에 의하면 총 9계급 중에서 8번째 순서다. 군대로 치면 이제 막 작대기 하나 추가한 일등병인 거다.


그리고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천사의 계념은 가장 하위의 아홉 번째 계급인 말 그대로의 천사다. 엔젤은 지상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이기 때문에 하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반대로 사람들의 청원을 하느님께 상달하는 일을 한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친밀감을 주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고, 대천사의 명령을 실행한다. 그렇기에 천사들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사들은 매일 아침 신이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밤이슬'처럼 만들어진다 하고,  탈무드에 의하면 한 명의 유대인이 탄생할 때마다 이를 수호하라는 명령을 받는 천사가 1만 1천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한 미국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천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왠지 엄청난 위안을 받았던 장면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 한 미국영화 <시티 오브 엔젤>속 천사들



마지막으로 맨 처음 소개한 그림 중 네 번째 그림 속 천사(F)가 남았다. 1460년 고촐리 베노초가 그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뒤로, 파랗고 빨간 천사가 교차되어 그려져 있다. 붉은색의 천사는 세라핌, 푸른색의 천사는 케루빔이다. 가장 높은 서열의 천사들이다.


원래 세라핌과 케루빔은 성서 속 선지자 에스겔의 환상을 묘사하며 어떤 때는 사람의 형상으로 네 개의 날개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거나 네 개의 얼굴, 즉 사자, 소, 독소리, 사람의 얼굴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거나, 바퀴의 둘레에 눈이 가득한 형태로 표현되다가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아기천사의 얼굴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왼쪽)네명의 천사와케루빔과함께있는 마리아와예수/1490/ 안드레아 만테냐     (오른쪽)케루빔과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1485/지오반니 벨리니


 

아기의 얼굴을 한 빨갛고 파란 천사. 심지어 몸뚱이는 없다. 이 정도 되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아니 호러의 경지로 보인다.(물론 지금의 관점을 적용하면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서며 천사 계급설과 그 이론에 따른 특정 도상들은 사라지게 되고, 유럽의 미술관을 가면 대부분의 천사가 등장하는 그림은 아름답다.


사실 기독교의 천사가 등장하기 전 날개 달린 존재들의 묘사가 정점에 이른 시기는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였다.

꿈의 신 모르페우스, 승리의 여신 니케, 활과 화살을 든 에로스, 전령의 신 머큐리(헤르메스)는 날개 달린 모자와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있다. 기독교 이전 문화의 날개 달린 존재들은 기독교의 날개 달린 존재처럼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성서적 배경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천사의 개념은 전달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영적으로 순수함의 의미가 더해지며 세상을 구원할 특별한 존재로의 기대감이 더해지고 이런 기대감은 다양한 문화를 거치며 차츰 개별적인 특징을 가진 구체적인 형태로 변해왔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은 승리의 여신과 같은 고대의 이미지로부터 천사의 포즈와 모습에 관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2000년 전 그리스인들이 제작한 승리의 여신 니케로부터 비롯된 천사의 날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노라니, 유럽 예술의 모든 근원인 그리스 시대로 시간여행을 가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긴다. 소크라테스와 만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던 스티브 잡스. 그러나 뭐 나는 딱히 버릴 것이 없으니 그저 이룰 수 없는 아름다운 꿈으로 간직해야겠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야기를 보려면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93



이수정 ㅣ 예술 여행에서 만나는 통찰의 순간을 담는 인사이트래블러 (insigh-t-raveler)

기업 구성원의 인문-예술력 향상을 위해 강연을 하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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